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4)
(열왕기상 8장 63-66절)
63-64.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의 봉헌식을 행하였는데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제물(핫셜라밈:쉘렘)을 드렸으니(와이즈바:자바흐)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화목제의 희생제물은 자바흐 쉘렘인데, 이 용어는 제사 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제사에만 쓰였다. 신명기 27장7절에서, "또 쉘렘(화목제)을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레위기 7장 15절에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 희생의 고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쉘렘을 드리는 동기는 즐거움과 감사인 것을 알 수 있다.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는 숫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 일부 학자들은 본절의 기록을 과장 또는 오기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목제와 달리 성전 낙성식이라는 역사적 대사건을 위한 제사일 뿐 아니라, 이 제상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전 국민으로 나타나고 있고, 원래의 번제단만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성전 앞뜰 가운데를 구별해 특별히 사용해야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의 봉헌식(하나크)을 행하였는데”
하나크는 가옥이나 성전 등을 완공한 후 이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예식을 의미한다. 후대 유대인들은 하눅카(수전절)란 절기를 지켰는데,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하여 더립힌 것을 재건하고 성결케 하여 재봉헌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카다쉬)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카다쉬는 거룩의 기본 의미가 구별이기 때문에 이처럼 번역한 듯하다.그런데 본래 사람이든 장소, 물건이든 그 자체의 거룩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련 때문에 거룩하게 된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성전 앞뜰, 곧 제사장의 뜰을 거룩히 구별하여 임시적인 제단 장소로 삼았는데, 이는 본래 거룩히 구별된 번제단만으로는 봉헌식 때의 많은 희생 제물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5-66.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과 칠 일 도합 십사 일간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과 칠 일 도합 십사 일간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14일은 성전 봉헌 절기 7일과 초막절 7일을 가리킨다.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하맛 어귀에서, 하맛 왕국의 남쪽 경계는 곧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였다. 이 나라는 후에 앗수르의 살만에셀 2세에게 정복된다.
애굽 강은 창세기 15장 18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의 남쪽 경계선으로 등장한다. 애굽강은 나일강을 가리킨다.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덟째 날은 첫번째 절기인 성전 봉헌절기 7일이 끝나고 두 번째 절기의 팔일째 되는 날, 즉 초막 절기 7일이 끝나고 난 다음 날을 말한다. 백성들은 폐회 축제가 끝난 저녁 또는 다음 날, 곧 7월 23일에 각각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장막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이동식 거처로 이스라엘이 광야 유량 시절에 사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시대 당시는 가나안 정착 이후로도 400여년이 지난 때로, 이 때는 이스라엘도 집을 짓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막으로 돌아가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집으로 돌아가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관습화된 언어 표현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성전 봉헌식을 마루리 짓는 상황에서 솔로몬 대신 특별히 다윗의 이름이 거론된 것은, 성전 건축은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실질적인 성전 건축자는 다윗이었기 때문이다. 즉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단순히 다윗의 계획과 이상을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감당했을 뿐이다.
(요약 정리)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드렸는데,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였다.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의 봉헌식을 행하였는데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제사는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헌신과 감사를 나타낸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화목과 교제를 상징하는 제사로, 공동체적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참여한 국가적 예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광대한 성전의 봉헌식을 보며, 성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성전은 언약 백성들이 하나로 모이는 곳으로, 예배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성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장막에서 돌로 만들어진 성전, 이민족에 의해 무너진 성전, 그리고 다시 재건한 성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성전은 이제 옛성전이라고 말씀하시고, 새성전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바로 자신의 몸을 의미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새성전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성도의 심령 속으로 성령으로 들어오셨으며, 그래서 성도가 성전이 되는 것이다. 죄인이었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어 성도가 되었으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그의 주인이 되시고, 성전이 되시며,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