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불교를 자기 마음의 평화만 얻으면 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처음 하셨다는 말씀, 즉 ‘'천상천하 유아독존’' 만 기억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 말씀 뒤에 한 구절이 더 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
'천상에서나 땅에서나 나 홀로 존귀하다. 온 세상이 모두 고통에 잠겨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
부처님 께서는 이 두 구절을 함께 말씀하셨는데, 사람들은 첫 번째 구절만 기억하고, 두 번째 구절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두 구절의 연결에 집중해야겠군요.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과 ‘남을 행복하게 하는 것’ 을 같이 해야 합니다.' 자타불이 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대승불교 에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 이라고 해서 항상 같이 해야 하는 것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회 정의와 깨달음은 같이 가는 것입니다. 붓다 담마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당연히 불교는 참여불교 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은 괴롭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적은 돈. 작은 집. 작은 차. 낮은 지위 등등 에서 찾으며 뭔가 세상일이 자기의 뜻대로 안되어서 괴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처님이나 하느님. 즉 힘있는 어떤 존재에게 구걸하고 애걸하고 부탁해서 자신들이 원하는 걸 얻으려고 합니다.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자신이 원하는 걸 응답해주고 성취해 주는 대상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문제는 그렇게 부처님께 하느님께 부탁한다고 그 원이 이루어 질까요? 부처님.하느님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분일까요? 내 병을 고쳐주고. 내 문제를 해결해 주고.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되게 해줄까요? 아프면 병원가야 하고 잘 살려면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야지요. 아니 부처님.하느님이 의사이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이고 마술사 인가요?
왜 부처님께 하느님께 애걸복걸 구걸합니까?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기복화된 이 ''기복신앙''이 큰 문제입니다. 자신이 믿는 종교를 통해 그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종교의 본래 본질을 크게 빗나간 것입니다. 정말 종교계에 자기성찰 참회운동이 절실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종교계의 리더들은 종교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갑니다.
아마도 미래사회에서는 더 이상 의식주가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경제가 과거와 같이 고속성장은 없을 것입니다. 코로나 여파의 이유도 있겠지만 글로벌 세계경제는 이미 마이너스 경제에 진입했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지금과 같은 종교적 행위는 점점 줄어 들어서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종교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행복을 갈망하고 행복하고 싶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붓다 담마의 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어서 붓다 담마의 가르침은 사회적으로 점점 수요가 늘어날 거예요.
아마도 그것은 종교를 뛰어 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붓다 담마의 가르침은 불교가 교단화 되고 종교화 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우리는 불교라는 울타리 카테고리 안에서만 전법을 할 것이 아니라 종교를 뛰어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법을 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다운 행복은 절대로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내 마음안의 깨달음의 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