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흥사를 품은 두륜산에서의 들풀사랑 김영두 이야기 -
두륜산을 직원 겨울연수로 다녀온 십일 후 다시 찾았다. 전북교원연수원에서 1.2급 정교사 연수강의를 하고 나니 오후 4시다. 시간도 있고 하여 전라도에 왔으니 지난해 초에 소식을 알게 된 30년 전 제자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목포에 사는 제자에게 전화를 했더니 빨리 오라는 것이다. 지난해 두 차례나 고향의 맛인 김치와 젓갈을 택배로 보내와 이웃들에게 자랑하면서 같이 나누며 정을 흠뻑 느꼈는데, 목포 mbc에 근무하다 요즘은 개인 사업을 한단다. 금방 달려가 인사 들여야 하는데 일이 많아서 그렇지 못함을 항상 아쉬워 했던 제자다. 아무래도 시간이 있을 나에게 목포에 내려오라는 전화와 메일이 잦았던 그다. 내가 들꽃과 우리자연을 연구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들과 부부가 함께 등산을 하면서도 예전에는 많이 보았으나 요즘은 산 깊숙한 곳에서나 보는 정감어린 들꽃사진을 찍었다며 가족 이야기를 담아 보내오곤 했다.
선생님이 술을 좋아하시니 목포에서 술을 한 잔 하자는 것이다. 세발낙지철, 쭈꾸미철, 병어철, 홍어에 돼지고기와 배추김치를 합하여 세 가지를 합해 먹기에 삼합이라는 이 지방 특유의 향토 맛을 느낄 수 있는 한해를 다 보냈다고 성화를 부리던 김영두다.
1974년 초등학교 동창인 제자 임유숙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도 3개월 전부터 서울에서 친척 결혼식이 있기에 부산에서 올라올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며칠이 멀다하고 그리움으로 가득한 메일을 보내 오더니 지난 11월에는 이들 동창인 대우일러트로닉스 과장으로 있는 김환규와 함께 서울의 회집에서 만나 세월의 흔적을 느낀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건강을 챙긴다며 오빠 사슴농장에서 가져온 녹용과 자연산 크나큰 전복 그리고 해삼 선물까지 준비하여 왔었다. 한 달 뒤에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사를 다녀오는 길에 부산에서 남편과 내 친구인 그의 오빠 임현채 얼굴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이때도 하루를 함께 보냈으면 하고 술로 두 시간을 보내다 ktx열차 출발시간 2-3초전에야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던 적도 있다. 유숙도 가족이 전남에서 부산으로 이사하여 고향을 그리움으로 생각하고 친구들 또한 만나기가 어렵단다. 지금은 생활이 넉넉하고 남편과 하루의 피로를 같이 풀면서 행복한 시간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단다. 모두가 옛 정이 그리워 질 나이 인가 보다. 정신없이 달리다가 여유를 찾는 시간이 오면 고향 산천을 그리워하는 모습들이다.
30년 만의 사랑과 따스한 이 두 만남은 이들의 어린 시절과 나의 젊음이 묻어나는 세월의 타임머신을 타고 돌려놓은 세월 이였다. 이들과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빛바랜 사진첩을 찾아 나의 바램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는 들꽃사진을 함께 담아 cd를 선물로 주려고 만들면서 옛날의 묻어나는 그리움도 느꼈다. 그들의 동심과 어른이 되었을 지금의 모습을 흑백 영상으로 번갈아가면서 아련히 그려도 보았다. 오랜 세월 속 추억의 시간을 갖는다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아내도 그들의 어린 모습을 정확히 그려 낸다. 30년 전 농촌 어려운 현실에서 오직 자식들 공부에 매달렸을 부모님들 그러면서 당신들의 고생을 오직 희망 하나에 모두 묻어 두었던 시절 이였다. 영두를 공부 시키려고 광주로 이사 했다는 소식을 오래 전 듣기는 했으나 이렇게 성공한 모습을 볼 수 있다니 나 또한 행복한 순간 이다. 이런 오랜 만남에서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를 즐거운 시간 이였다.
회를 먹다 말고 목포에 왔으니 세발낙지를 맛보아야 한다면서 큰 회집이나 세발낙지가 없다며 친구를 불러 목포를 뒤져서 제일 부드럽고 맛있는 낙지 한 접을 가져왔다. 이곳에서 사는 친구 한명과 함께 바로 앞에 호텔까지 예약 해두고 술이 취하도록 마셨다. 나와 집사람은 오늘 밤 이곳에서 보내고 내일은 지난번 학교 직원들과 둘러본 해남과 보길도의 고산 유적지를 다시 돌아 보기로 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큰 아들까지 목포로 밤에 내려오도록 했었다. 새벽 1시에 도착한단다. 내일 계획을 말하니 제자는 자기도 친구들과 부부가 내일 등산을 함께 하기로 했다면서 아름다운 주작산을 안내 하겠단다. 보여주고 싶은 산이란다. 내가 잘 아는 여정을 바꿔서 자랑을 아끼지 않는 등산을 하기로 하였다.
호텔로 들기 전에 한 잔 더하자며 술과 안주를 사오다 집사람과 제자의 부인을 호텔입구에서 만났는지 만류로 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올라왔단다. 낙지 5마리는 밤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아들을 주라고 바닷물이 담긴 그릇에 담아 가져와 호텔방에 놓아 두었더니 낙지가 그릇 밖으로 나와서 방바닥을 기여 다니는 기염도 보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등반길에 나섰다. 우리가 힘들어 할까봐 대륜산으로 바꿨단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해안에 인접한 나무들의 특성을 볼 수 있었다. 진달래와 소사나무가 해풍에 견뎌내려는지 키가 작고 땅에 가까이 분재처럼 예쁜 모습으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겨울 산을 오르면서 벌거벗고 서있는 나무들을 보면 더 여유롭고 품위가 느껴진다. 나무 원줄기에서 하늘을 향하여 쭉쭉 뻗은 가지들 하늘빛을 골고루 받도록 잘 배분하여 어우러진 가지들의 조화와 균형이 있다.
사람들은 겨울잠을 잔다고 하지만 들여다 보면 봄을 기다리면서 잎과 꽃을 피울 봉오리들을 키우고 줄기와 가지도 녹색의 빛이 날마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생명의 돌기를 멈추지 않는 매끄러운 나무들에게서 오직 흙만이 품어 낼 수 있는 경애를 본다. 겨울나무들도 흙 속에 뿌리를 박아서 삶의 기운을 불어 넣어 주는 햇빛과 공기, 물, 바람의 간지럼으로 열심히 내면을 다듬고 있을 것이다.
대흥사 쪽에서 오를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산을 감상 할 수 있었다. 대흥사가 부드러운 산으로 둘려 쌓여 분지의 중심에 포근히 어머니의 따뜻한 젖가슴에 앉긴 것처럼 자리 잡고 있다. 산등성으로 이어진 등산로는 바위에 밧줄을 설치하여 등반을 할 수 있도록 된 연속이다. 몇 고개를 넘으면서 세상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지난 세월의 보람들을 들려주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 천년수와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의 만남 만큼이나 오랜 세월의 만남이다. 신라시대에서 고려로 넘는 세월의 오층석탑 주변에 산죽이 자연적 울타리를 만든 사이에서 점심을 준비하여 펼쳐 놓았는데 온밤을 준비 했는지 정성이 묻어난다.
오층석탑 바로 아래는 이 산뿐 아니라 다른 산에서도 보기 어려운 큰 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바로 천년수다. 느티나무 괴목인 이 나무는 수령 1200-1500년에 흉고 9.6m, 수고 22m 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가 사는 천상에 천동과 천녀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천상의 계율을 어겨 하늘에서 쫓겨나는 무서운 벌을 받게 되었단다. 이들이 다시 하늘로 돌아갈 방법은 한 가지 있었단다. 그 방법은 하루 만에 불상을 바위에 조각 하는 일이다. 천상과 천녀는 하루 동안에 불상을 조각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해가 지지 못하도록 이 천년수에 해를 끈으로 메달아 놓고 천녀는 북쪽 바위에 좌상의 불상을 천동은 남쪽바위에 입상의 불상을 조각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천녀는 앉은 모습의 불상을 조각하였기 때문에 서있는 불상을 조각하는 천동보다 먼저 불상을 조각 하였단다. 천녀는 한참을 기다려도 천동이 오자않아서 빨리 올라가고 싶은 심정으로 끈을 잘라버리고 혼자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한다. 이로 인해 천동은 하늘로 영원히 올라가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나무다.
大興寺 北彌勒庵 磨崖如來坐像(보물 제48호)이 거대한 자연 암벽을 다듬어 불상을 도드라지게 새긴 뒤 나무로 방을 만들어 보호하고 있다. 높이 4.2.m의 고려시대 불상이다. 풍만하게 표현된 얼굴은 둥글고 넓적하며 동시에 우아하게 처리 되었다. 특히 눈과 입, 귀부분이 비교적 세밀하게 처리 되었다. 두꺼운 옷에 싸여 있으나 몸의 굴곡이 대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불상의 아랫부분인 하체가 빈약하게 처리되는 등 비례가 잘 맞지 않아 안정감이 떨어진다. 손은 힘이 없고 결과 부좌한 발의 표현도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불상은 고려시대 전기 불상조각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고 특히 통일 신라 불상에서 고려시대 불상으로 옮겨오는 시대상을 볼 수 있어 큰 의미를 지닌단다.
제자들과 30년의 긴 세월의 흐름 속에 어려운 질곡桎梏 다 넘기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숲 자연의 덕분이라 생각 한다. 손불서초등학교에서 공부하다 지치고 힘들어 할 때면 뒷산에 올라서 들꽃으로 머리를 장식하고 숲속의 산새들과 노래하며 솔바람과 동시짓고 풀벌레와 숨바꼭질 하면서 보낸 추억들을 몸에 담고 자라왔을 것이다. 요즘은 며칠이 멀다하고 보내는 전화와 메일 편지답장으로 담아 보내는 들꽃 사진에서 자연의 기를 받아 희망의 가지를 퉁퉁히 키워 가리라 기대한다. 너희들을 만난 뒤로 한 점 구름을 보아도 고마운 마음이고 아침에 눈 뜸에 감사를 느낀단다. 너희들은 한 구루의 나무다. 한 송이의 꽃이다. 한 마리의 새이다. 한 포기의 들꽃이다. 제자들아! 사랑한다.
www.school1004.net 이영일의 생태교실에서 [2005.1.18. 들풀/이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