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방수공사 외 1편
최수일
지붕 누수 부위를 손본다 빗물에 처질 때마다 종이를 덧댔는지 천장 반자가 켜켜이 쌓인 가난 만큼 두껍다 부위를 도려내자 이 집에 살았던 한숨 울음 고함소리가 묵은 먼지와 함께 와락 쏟아진다 손전등을 켜고 반자 안을 살핀다 콘크리트 슬래브 하부가 오줌자국처럼 군데군데 얼룩져 있다 한때 팍팍한 삶을 독주로 견뎌낼 때 어쩌다 내시경으로 들여다봤던 너덜너덜 헐었던 내 위벽 같다 상한 위벽을 점막보호제로 치료했듯이 빗물이 비치는 데를 방수 모르타르를 발라 치유하기로 한다 시멘트 모르타르가 잘 들러붙도록 딱따구리가 나무 둥치를 톡톡톡, 쪼듯 정으로 슬래브 바닥을 오돌토돌 쪼아낸다 모래 시멘트 그리고 방수제를 물로 개며 바람에 실려오는 국화꽃 향기 한 줌을 섞어 넣고 풀벌레 노랫소리도 한 소절 슬쩍 함께 비빈다 도려낸 부위를 막기 전에 반자 안으로 코스모스길을 달려온 싱그런 바람 한두 자락을 불어넣는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해 새벽하늘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도 대여섯 개 따서 천장에 매단다 고가도 아래
고가도로 밑 길바닥에 납작 들러붙은 비둘기 한 마리 허겁지겁 허기를 채우다가 달려드는 자동차에 치여 사지를 쭈욱 펴고 아스팔트 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고 있다 마지막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뭔가 있었을까 허공을 더듬는 시선 끝에 어두컴컴한 고가도 슬래브 밑에 한쪽 발을 잃고 웅크리고 있는 제 짝이 언뜻 어렸다 사라지고 고가도 밑으로 하나둘 모여드는 지친 동료들의 모습이 비친다 다시 날아오르려는지 여린 두 발로 간간이 허공을 툭, 툭 찬다 초점 잃은 눈동자 위로 눈꺼풀이 서서히 덮인다 한 가닥 작은 돌개바람이 식어가는 몸을 휙, 스치고 허공으로 치솟는다
고가도로 밑에서 폐지를 줍던 등이 휜 노인이 보이지 않는다
「착각의 시학」 2023년 봄호
최수일 시인 경북 김천 출생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호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한국바이오플랜트(주) 감사 호서대학교 교수 역임 시사문단으로 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