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영어 죽은 시인의 사회(http://cafe.daum.net/engdps
게 시 판 : { 우수-영시 }
번 호 : 651
제 목 : <font color="#000000">Poppies in October- Sylvia Plath</font>
글 쓴 이 : cheezelol
조 회 수 : 198
날 짜 : 2001/09/25 22:11:11
내 용 :
어제 잠깐 올렸다가 추가로 집어넣을 부분이 생각나 삭제하고 지금 다시 올립니다.
Poppies in October
Even the sun-clouds this morning cannot manage such skirts.
Nor the woman in the ambulance
Whose red heart blooms through her coat so astoundingly-
A gift, a love gift
Utterly unasked for
By a sky
Palely and flamily
Igniting its carbon monoxides, by eyes
Dulled to a halt under bowlers.
O my god, what am I
That these late mouths should cry open
In a forest of frost, in a dawn of cornflowers.
By Sylvia Plath
10월의 양귀비
오늘 아침 해구름도 그런 자락들을 창조해 낼 순 없다.
그 빨간 심장이 정말 깜짝 놀라도록 그녀 외투를 통하여 피는
구급차 안의 그 여인도 할 수 없다-
선물 하나, 사랑의 선물 하나,
하늘에 의해
전혀 청해지지 않은.
창백하게 그리고 타는듯하게,
중산모 밑에서 정지상태로 둔해진 눈들에 의해,
그 일산화탄소는 태워지니.
오 신이여, 나는 무엇입니까
저 늦된 입들이 벌려 울어야 하도록,
서리의 숲에서, 수레국화의 새벽에서
실비어 플래스 作
<Note>
저는 이 시의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하염없는 고요와 침착, 짙게 깔려진 절망과 우울, 안개 속에 감추어진 비수. 어리석은 단어 몇 개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을 그 묘한 공기.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그려지는 아름다운 영상. 실비어 플래스의 많은 시 안에 떠돌고 있는 그 기운과 향내는 항상 모체인 단어 하나 하나들로부터 빠져나와 읽는 제 주위를 둘러싸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국어로 번역하려면 그 전에 일단 원어로 그 시의 전반적인 주제와 철학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지요. 그래서 저는 마치 고수 스승이 던져준 과제를 두고 씨름하는 풋내기 제자 처럼 이 시를 가지고 한동안 고심했습니다. 그 후 몇몇 인터넷 포럼 사이트에 시를 올리고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했는데- 참, 한가지 시에 대한 여러사람의 해석이 정말로 다양한 것을 이번에도 절실히 느꼈지요.그 많은 해석 중, 내 개인적인 해석과도 대충 일치하는 것들을 가려서 서로 이치가 안 맞는 부분을 채우고 하다 보니 대강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은 Poppies in October, 곧 10월의 양귀비입니다. "Poppies" 라는 단어는 제목에서만 언급되며 실제 시에서는 양귀비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양귀비 물이라도 들인 양 시 전체에서는 양귀비의 빨간 아름다움이 강렬하게 풍기지요. 뜻은 모른채 그저 뇌리에 그 이미지만 떠올리면서 읽어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입니다.
시는 아침 해가 구름 사이로 떠오르는 장면의 묘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 해를 둘러싼 구름사이로 해의 붉은 빛이 마치 치마자락 처럼 넓게 퍼지지요... (솔직히 해 뜨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은 없으나 그렇게 상상하고 있습니다..^^ ) 이 부분의 "such skirts"라는 단어는 양귀비 꽃잎의 은유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양귀비 꽃잎과 아침 해 구름 사이의 빛을 서로 비교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지요. 시인에 따르면, 해구름은 그 색과 강렬함에 있어서 양귀비 꽃잎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네요.
그 다음 구절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 부분 입니다. 직역을 하면 '빨간 심장이 옷을 통하여 피어난다' 는 이 구절은, 우선 구급차 안의 이 여인이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고 있고, 이 피가 그녀의 외투를 적시고 있다- 라는 상황의 묘사로서 해석될 수 있지요. 실비어 플래스의 이전 경력(?)으로 보았을 때도 친밀한 해석이구요. 두번째 가능한 해석은... 아마도 이 구급차 안 여인이 적십자라던가 아니면 병원 소속의 응급 간호원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여인의 빨간 심장은 그러므로 상처입어 피흘리는 심장이라기보단 돕기를 희망하는 그런 열의가 흐르고 있는 심장이지요. 사족이지만, 실비어 플래스는 이 빨간 심장이라는 표현을 좋아했던 것 같네요. Daddy에서도 예쁜 빨간 심장이라는 구절이 나오지요. 어쨌든 저는 좀더 '플래스 다운' 첫번째 해석을 선택하겠습니다. 상처입어 피흘리는 여인의 가슴조차 양귀비 꽃잎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다음 연의 give, a love gift 또한 양귀비를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그 연에 따르면, 시인에게 있어 양귀비는 사랑의 선물, 그러나 전혀 청해진 적이 없는 선물입니다. 하늘 또한 그 것에 공헌하기에는 역부족이구요.
이쯤되면 플래스가 양귀비 꽃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이 입니다. 죽음? 사랑? 절망? 저는 절망을 양귀비 꽃잎에 끼워 맞추어 보았습니다. 플래스의 인생에서 절망은 그녀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복될 수 없었던 어떤 것이었지요. 그 뛰어넘을 수 없는 짙은 절망의 강력함이 1연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더욱 정확히 말하면 이는 단순한 절망보다 더욱 강력한 어떤 것일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절망, 고통, 회의, 자기파멸, 예민함, 혼돈, 그 모든 것들이 한데 뭉쳐진 덩어리라고 하는 편이 낫겠군요. 그 부정적인 덩어리가 그녀에게 무수한 고통을 주었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녀가 태어난 10월의 하늘, 곧 그녀의 nature, 본성을 뛰어넘을 만큼 강력하고, 그녀의 "pretty red heart"보다도 진한. 1연에 나오는 스커트의 감싸는 듯한 느낌과, 실제로 꽃잎들이 층층이 두텁게 속을 감싸고 있는 양귀비의 모습 등도 이 것이 그녀를 어떤 식으로 지배했는지에 대해 작은 아이디어를 줍니다. 그러나 또한 그 고통스러운 것을 플래스는 2연에서 "선물" 또는 "재능"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gift"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지요. 그녀가 전혀 원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든 어떠한 의미로 보면 그것은 하나의 선물입니다. 아무리 그것이 그녀를 괴롭게 했다고 해도- 플래스를 플래스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것도, 그녀에게 뛰어난 시들을 쓸 발단을 제공해 왔던 것도, 결국은 거의가 그것의 힘이었다는걸 부정할수 없으니까요.
3연은 국어로 번역하기가 좀 난감했던 부분입니다. 음... 일단 일산화탄소를 태운다는 말은 쉽게 죽음을 뜻하는 거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요. '중절모 밑의 둔하게 멈춰선 눈들' 에 의해 그 일산화 탄소가 태워진다고 시인은 이야기 합니다. 이 눈들 역시, 실비어 플래스의 다른 시에서 종종 묘사되곤 하는 둔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주의 없는 그런 무리들을 가리키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요컨대 Lady Lazarus에서 묘사되는 crowd와 일맥상통하는 존재가 바로 그 눈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왜 하필 중절모 밑일까 생각해보았는데... 대개 장례식에서 중절모를 쓰지 않나요? 어쨌든 이 연은, 그 무관심하고 무던 눈들이 일산화 탄소를 태움으로서 결국은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말하고 있네요.. 게다가 그 일산화탄소는 다른 어떤 곳이 아니라 바로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가스입니다 (its carbon monoxide). 결국, 그것이란 '선물인 동시에 자신의 죽음을 불러오게 될 잠재적 요인' 이 될거라는 것도 플래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이겠지요.
4연에서 플래스는 신에게 절실히 묻습니다. 지금까지의 페이스로 시를 해석해오다 보면 4연에서 플래스가 신에게 이 질문을 하는 의도의 본성이 절로 느껴지지요. 아마도 플래스는 진실로 자신이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지..아니면 그녀는 자신이 이미 죽은 것은 아니냐고 묻고 있는 지도 모르지요. late mouths는 10월에 늦게 핀 양귀비들, 바로 자신과 그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싶군요. 양귀비 꽃의 핀 모양이 여자의 입술을 연상시킬수도 있다는 사실은 시 안의 mouths가 실비어 자신과 결부되는 것 일거라는 해석에 더욱 타당성을 줍니다. 울부짖고 있는 그 늦된 양귀비들이 서리의 숲에서 있는지, 수레국화의 새벽에 있는지. '서리의 숲'는 이미 그 단어만으로도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지요. 식물, 특히 양귀비 같은 꽃들에게 서리란 치명적인 것이니까요. '수레국화의 새벽'은...... 새벽은 하루의 시작, 희망의 은유라는 그 상징적인 의미만으로도 어딘지 "서리의 숲"과는 반대의 위치에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4연에서 그녀는 자신이 이미 서리의 숲에 있는지 아니면 새로 시작할 가능성이 있는 수레국화의 새벽에 있는지를 묻고 있는 듯 하네요.
가끔 실비어 플래스의 시를 읽다보면 그녀가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쓰는 법라던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정도가 너무나 절박하면서도 또한 정확해 섬뜩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보니 이 시도 그런 느낌이 드네요. 결국 이 여자는 다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말이에요. 전체적 분위기가 고요하고 침착하기 때문에 끝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이 더욱 날카롭지요.한 연씩 각각 이어지는 이 주제들이 효과적으로 잘 링크되어있고, 다른 의미는 제쳐두고라도 시 전체에 깔려있는 붉고 풍성한 양귀비 꽃의 imagery 자체가 강렬하고 아름답습니다. 테크닉 면으로나, 의미 면으로나, 좋은 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지배하는 그 강력한 어떤 것에 대한 인식, 대항보다는 이미 그것의 본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자세, 그러나 떨어지지 않는 최후의 물음...... 그리고 마지막 유력한 해답으로서의 죽음. 결국 플래스는 애시당초 서리의 숲에 있었던 게로군요.
가끔 그러한 혼란을 저도 느끼곤 하지요. 아마 누구든 다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괴로움들의 본성 자체가 근본적으로는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투적인 멘트이지만...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 "수레국화의 새벽"에서 다시 양귀비를 피우는 쪽이 바람직하겠죠. 서리의 숲에서 죽는 것 보다는야. 어떤 면으로 보면 일찌감치 서리의 숲에서 시들어 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겠고. 개인의 선택이겠지요?
다른 분들의 다양한 해석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어떤 분은 이 시가 플래스와 그녀의 어머니 관계를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시더군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어요.
그리고 위의 제 번역... 제 자신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더 새롭고 나은 번역을 해 주실 분 계시면 부탁드려요.
<IMG src="http://msrv.yahoo.co.kr/enc/image/22/70622.jpg">
붉은 양귀비 꽃 이미지.
"Let something happen. Something terrible, something bloody. Something to end this endless flaking snowdrift of airmail letters, of blank pages in library books. How we go waste, how we go squandering ourselves on air. Let me alk into PHEDRE and put on that red cloak of doom. Let me leave my mark.... I will bear pain."
Excerpts from the stories by Sylvia
'꿈의 샘도 마른
고독의 길은 험난한 것
그러나 믿으라!
네 길이 끝나는 곳에 고향이 있으리라.'
- 헤르만 헤세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