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바늘
김선태
낚시를 하다 보면
물고기가 제 위장 깊숙이까지
낚싯바늘을 삼켜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낚싯바늘을 빼지 말고 방생해야 한다
평생토록 낚싯바늘을 품고 살아야겠지만
어쩔 수 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시라는 낚싯바늘에
제대로 걸린 적이 없다 한 번도
황홀하게 목숨 걸지 못했다 한 번도
나를 낚지 못했다 오늘도
허탕이다
--애지, 2026년 가을호에서
산다는 것은 먹이활동이고, 이 먹이활동이 자유롭고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그는 이 세상의 삶의 찬가를 부르게 된다. 언제, 어느 때나 사랑의 집을 짓고 정의로운 ‘도의 길’을 가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자기 행복을 향유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 먹이활동이 자유롭고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는 비탄에 빠지게 되고, 이 세상에 대한 원한 맺힌 저주감정으로 이 세상의 삶의 비가를 부르게 된다. 그는 사랑의 집을 짓지도 못하고 정의로운 ‘도의 길’을 가지도 못하며 자포자기적인 체념의 삶을 살게 된다.
먹는 자가 먹히는 것이고, 먹히는 자가 먹는 것, 이것이 대자연의 먹이사슬의 법칙인 것이다. 물고기를 낚는 자가 물고기에게 낚이는 것이고, 물고기에게 낚이는 자가 물고기를 낚는 것이다. 이 적대적 공생관계가 대자연의 법칙이고 보면, 이 세상의 삶의 행복이란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즉, 낚시바늘을 물고 몸부림 치다가 죽는 것이다. “낚시를 하다 보면/ 물고기가 제 위장 깊숙이까지/ 낚싯바늘을 삼켜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땐 낚싯바늘을 빼지 말고 방생해야 한다.” 왜냐하면 “평생토록 낚싯바늘을 품고 살아야겠지만” 그 삶의 의지와 도전 정신이 더없이 거룩하고 고귀해 보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이것저것 따지거나 눈치 보지 않고 낚시바늘을 무는 것이고, 이 삶의 황홀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의 집을 짓고 정의로운 ‘도의 길’을 가는 것이지만, 그러나 “나는 시라는 낚싯바늘에/ 제대로 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것이다. 이것저것을 따지고 그 기회주의적인 처세탓으로 단 한번도 “황홀하게 목숨을 걸지” 못했고, 그 결과, 나의 인생은 허탕이자 전면적인 실패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타인의 성공을 이해하면 자그만 자기 발전의 역사를 쓸 수가 있지만, 자기 자신의 실패를 반성하고 성찰하면 만인들의 찬양과 존경을 받는 대성공의 신화를 쓸 수가 있다.
실패는 늘, 항상 있는 일이고, 이 실패를 성공으로 변모시키는 힘은 그 무엇보다도 반성과 성찰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반성과 성찰은 모든 성공의 아버지이자 그 모든 문화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자, 보아라! 나는 단 한 번도 시라는 낚시바늘을 제대로 물지도 않았고, 나의 목숨을 걸지도 않았다는 자기 반성과 자기 성찰이 김선태 시인의 [낚시바늘]을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최고급의 시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탐미주의와 순수예술의 극치----. 제일급의 장인 정신이 김선태 시인의 [낚시바늘]을 살아 숨쉬게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