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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by 카를로 로벨리 (tistory.com)
2018. 4. 9
쌤엔파커스
Carlo Rovelli
뉴턴은 자신이 도입한 것이면서도 바로 이 떨어져 있으면서 끌어당긴다는 생각에 관해 당혹스러워했습니다. '지구가 어떻게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걸까? 태양은 어떻게 지구와 접촉하지도 않고서 끌어당길 수 있는 걸까? 뉴턴은 친구 벤틀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무생물인 물체가 비물질적인 다른 어떤 것의 중재 없이 다른 물체에 작용을 가하고, 상호 간의 접촉 없이 다른 물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네.
편지를 더 읽어 내려가면 이런 얘기까지 있습니다.
중력이 물질에 고유하게 내재하는 본질적인 것이어서 물체의 작용과 힘을 전단해줄 다른 어떤 것의 중개 없이도 한 물체가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물체에 진공을 통해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내게는 정말 터무니없는 부조리라 생각되네. 철학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충분한 사고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런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나는 믿네. 중력은 어떤 법칙에 따라 항상 작용하는 동인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어야 하네. 그러나 이 동인이 물질적인지 비물질적인 것인지는 독자의 생각에 맡겨 두었네.
뉴턴이 답을 찾지 못하고 남긴 문제를 풀 독자는 바로 패러데이였습니다. '장'이라는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면서 패러데이는 뉴턴의 우아하고 단순한 존재론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납니다.
맥스웰은, 자신의 방정식에 따르면 패러데이의 역선들이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물결칠 수 있음이 예측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패러데이의 역선들의 파동이 움직이는 속도를 계산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빛의 속도와 정확히 같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밝혀냈을 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빛이 무엇인지도 일거에 알아낸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색으로 차 있습니다. 그런데 색이란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해, 빛이라는 전자기파의 주파수(진동의 속도)입니다. 만일 빛 파동이 더 빨리 진동하면 빛은 더 파랗게 됩니다. 조금 더 느리게 진동하면 빛은 더 붉게 됩니다. 우리가 지각하는 색은 서로 다른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식별하는 우리 눈의 수용체가 생성해낸 신경신호의 심리물리적 반응입니다.
양자 1 : 정보는 유한하다
우리가 어떤 물리계에서 측정을 했는데, 그 계가 특정한 상태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예를 들어 전자의 진폭을 측정하고 그것이 5센티미터와 6센티미터 사이의 어떤 값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봅시다. 양자역학 이전이라면 우리는 5센티미터와 6센티미터 사이에 무수히 많은 가능한 값들이 있으니까, 진자의 가능한 운동 상태도 무한히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반면 양자역학은 5센티미터와 6센티미터 사이에는 진폭의 가능한 값이 유한한 수로만 존재한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자에 관해서 알지 못하는 정보도 유한한 것입니다. 한 체계 내에 존재할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는 것, 즉 존재할 수 있는 가능한 상태들의 수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한에 한계를 지운 것, 데모크리토스가 엿보았던 자연의 이러한 근본적인 입자성이 이이 이론의 첫 번째 핵심측면 입니다.
양자 2 : 비결정성
양자역학은 자연의 심부에 기본적인 비결정성을 도입합니다. 미래는 정말로 예측 불가인것이죠. 이것이 양자역학이 두 번째 근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비결정성 때문에 양자역학이 기술하는 세계는 사물들이 끊임없이 무작위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세계입니다. 마치 작은 규모에서 모든 것이 언제나 진동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변수는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어디에나 있는 이러한 요동을 보지 못합니다. 너무 작아서 우리가 거시적 물체를 관찰할 때처럼 큰 척도로 볼 때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돌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글나 우리가 그 돌이 원자들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쉬지 않고 진동하면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특정한 초기 위치 A에 있던 한 전자가 일정 시간 뒤에 최종 위치 B에서 다시 나타날 확률은 어떻게 계산할까요? 아서 언급한 리처드 파인만은 1950년대에 이런 계산을 하는 아주 요긴한 방법을 발견합니다. A에서 B까지 가는 가능한 모든 경로들을, 즉 전자가 따라갈 수 있는 모든 경로들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계산의 세부 사항을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으 전자가 A에서 B로 가기 위해서 마치 모든 가능한 경로를 지나가는 것 같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구름 속으로 퍼져 나갔다가는 신기하게도 B지점에 모여서 다른 것과 다시 충돌한다는 겁니다.
양자 3 : 실재는 관계적이다
양자론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물들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는지를 기술합니다. 그것은 입자가 어디에 있는지 기술하지 않고 입자가 어떻게 다른 것에게 자신을 드러내는지를 기술합니다. 존재하는 사물의 세계는 가능한 상호작용의 세계로 환원됩니다. 실재는 상호작용으로 환원됩니다. 실재가 관계로 환원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상대성을 아주 급진적으로 확장한 것일 뿐입니다. 양자역학의 세계는 대상들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기본적 사건들의 세계이며, 사물들은 이 기본적인 사건들의 발생 위에 구축되는 것입니다. 양자역학은 세계를 이런저런 상태를 가지는 사물로 생각하지 말고 과정으로 생각하라고 가르칩니다. 과정은 하나의 상호작용에서 또 다른 상호작용으로 이어지는 경과입니다. 사물의 속성은 오직 상호작용의 순간에만, 즉 과정의 가장자리에서만 입자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것도 오직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 속성들은 단 하나로 예측할 수 없으며,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인지는 모르지만, 140억년 전에 대폭발로 탄생한 굽은 시공이 있고, 그것은 여전히 팽창중입니다. 이 공간은 실재하는 대상으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의해 역학적으로 기술되는 물리적 장입니다 공간은 물질의 질량에 의해 휘고 굽으며, 물질이 너무 집중될 때에는 블랙홀 속으로 꺼져듭니다. 물질은 각각 천억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천억 개의 은하에 분포되어 있으며 양자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자장은 전자와 광자 같은 입자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텔레비전 영상과 태양빛과 별빛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전자기파 같은 파동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양자장이 원자, 빛 그리고 우주의 모든 내용물을 형성합니다. 그것은 이상한 대상입니다. 양자장을 이루고 있는 입자는 다른 어떤 것과 상호작용할 때에만 나타납니다. 따로 있을 때에는 확률 구름 속에 퍼져 있습니다. 세계는 파도처럼 출렁이는 커다란 역학적 공간의 바닷속에 잠겨 있는 기본적인 양자 사건의 무리입니다. 세계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와 그것을 공식화한 몇 가지 방정식이 있으면 우리ㅏ 보는 거의 모든 것을 기술할 수 있습니다. 거의입니다.
뉴턴은 지구상에서 물체들의 운동을 설명하는 갈릴레오의 물리학과 천체에 관한 케플러의 물리학을 종합하여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맥스웰과 패러데이는 전기와 자기에 대해 알려져 있던 것들을 모아 전자기 방정식을 찾아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 사이의 명백한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상대성이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뉴턴의 역학과 자신의 특수상대성이론 사이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처럼 이론 물리학자들은 이론들 사이의 충돌을 발견하면 아주 좋아라합니다. 특별한 기회인 것이죠.
우리는 일반상대성이론 덕분에 공간이 단단하고 고정된 상자 같은 것이 아니라 전자기장처럼 역동적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들어있는 우주는 움직이는 거대한 연체동물과도 같아서 늘려지고 비틀리고 합니다. 양자역학은 그러한 모든 장이 양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즉 섬세한 입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물리적 공간도, 장이기 때문에, 양자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이 곧바로 따라나옵니다. 다른 양자들을 특징짓는 것과 똑같은 입자 구조가 양자중력장을 특징짓고, 따라서 공간도 특징짓습니다. 그러므로 우린 공간이 알갱이로 되어 있다고 예상합니다. 우리는 빛의 양자, 전자기장의 양자가 존재하고 기본입자가 양자장의 양자로서 존재하듯이, 공간의 양자가 존재한다고 예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간은 중력장이므로 중력장의 양자가 공간의 양자, 즉 공간의 입자적 구성 성분인 것입니다. 따라서 루프이론의 핵심 예측은 공간이 연속적이지 안다는 것입니다. 가장 작은 원자핵의 10억분의 10억분의 1보다도 작죠
루프 이론은 공간의 원자적이며 입자적인 구조를 정확한 수학적 형식으로 기술합니다. 이 수학적 형식은 디랙이 쓴 양자역학의 일반 방정식을 아인슈타인의 중력장에 적용하면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부피는 임의로 작을 수가 없습니다. 최소 부피가 존재하는 것이죠. 이 최소 부피보다 더 작은 공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피의 최소 양자가 존재하는 겁니다. 공간의 기본 원자인 것이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들을 담고 있는 무정형의 용기로서의 공간은 양자중력과 더불어 물리학에서 사라집니다. 사물들(양자들)은 공간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사물이 다른 사물의 부근에 있는 것이며 공간의 사물들이 근접하는 관계의 조직입니다. 우리가 공간을 불변의 용기로 생각는 것을 버린다면, 시간을 실재가 펼쳐지는 불변하는 흐름으로 생각하는 것도 버려야 합니다. 사물들을 담고 있는 연속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이 사라지듯이, 현상들이 발생하고 흐르고 있는 연속적인 시간이라는 생각도 사라지는 것이죠. 어떤 의미에서 공간은 기본 이론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력장의 양자는 공간 속에 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본 이론에서는 시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력의 양자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지 않습니다. 그 양자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것이 시간입니다. 휠러-드위트 방정식이 보여주듯, 기본 방정식에는 더 이상 시간 변수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시간은 공간과 같이 양자중력장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입니다.
기본 방정식에 시간 변수가 없다는 것이,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거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도리어 변화가 도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기본적인 과정들을 순간들의 연쇄에 따라 순서를 매길 수 없을 뿐이죠. 공간의 양자들의 극도로 작은 규모에서 볼 때, 자연은 보편적인 시간을 지휘하는 단 한 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 리듬에 따라 춤을 추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과정은 이웃과는 독립적으로 그 자신의 리듬에 따라 춤을 추지요. 시간의 흐름은 세계에 내재되어 있고, 세계이면서 그 자체로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양자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세계 속에 태어납니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답은 간단합니다. 입자는 양자장의 양자입니다. 빛은 장의 양자에 의해 형성됩니다. 공간은 장에 지나지 않으며, 이 또한 양자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바로 이 장의 과정들로부터 태어납니다. 달리 말하면, 세계는 오로지 양자장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장들은 시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말하자면 하나 위에 다른 하나가 얹혀 있는 거것, 장 위에 얹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시적 규모에서 지각하는 공간과 시간은 이러한 양자장들의 하나인 중력장의 대략적인 흐릿한 이미지입니다. 시공이 바탕에서 지탱할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 존립하면서 시공 자체를 생성할 수 있는 장들을 공변 양자장이라고 부릅니다. 세계의 실체는 최근에 극적으로 단순화되었습니다. 세계, 입자, 빛, 에너지, 공간과 시간, 이 모든 것은 단 한 가지 유형의 존재자가 드러난 것일 따름입니다. 바로 공변 양자장이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연속적인 굽은 공간과 양자역학의 평평하고 균일한 공간 속에 있는 불연속적인 양자들 사이의 분리는 이제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더 이상 모순은 없습니다. 시공연속체와 공간의 양자 사이의 관계는 전자기파와 광자 사이의 관계와 같습니다. 전자기파는 광자를 큰 규모에서 어림하여 본 것입니다. 광자는 전자기파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고요.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은 중력의 양자들의 역학을 큰 규몽모에서 어림하여 본 것입니다. 중력의 양자는 공간과 시간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고요. 동일한 수학이 일관되게 양자중력장과 다른 양자장들을 기술합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공간과 시간이 세계의 틀이 되는 일반적적인 구조라는 생각을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공간과 시간은 큰 규모에서 나타나는 근사적인 것들입니다.
성서의 외경 가운데 하나인 <집회서>는 굉장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누가 바다의 모래와 빗방울과 영원의 날들을 셀 수 있으랴? 누가 하늘의 높이와 땅 넓이를, 심연과 지혜를 헤아릴 수 있으랴?
그 누구도 바닷가 모래알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 글이 지어진 뒤 오래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위대한 문헌이 만들어집니다. 그 첫머리는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겔론 왕이여, 어떤 사람들은 모래알의 수가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르키메데스의 <모래알 계산>의 첫머리입니다. 이 책에서 고대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는 모래알을 셉니다. 그는 모래알의 수가 유한하며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합니다.
양자중력은 <모래알 계산>의 탐구를 이어가는 많은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이루고 있는 공간의 알갱이를 세고 있습니다. 광대한 우주지만, 유한합니다. 오직 우리의 무지만이 무한할 뿐입니다.
열 시간
우주의 기본 방정식에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일상적 개념들이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위와 아래, 뜨겁다와 차갑다와 같은 개념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기본 물리학에서는 일상적인 개념들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주 이상하지는 않은 것이죠. 하지만 일단 이런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또 다른 문제가 명백히 드러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에서의 시간 개념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 걸까요?
예를 들어 위와 아래의 개념은 물리학의 기본 방정식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압니다. 아래는 행성과 같이 가까이에 있는 질량이 큰 물체가 중력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방향을 가리키고, 위는 그 반대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뜨겁다와 차갑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시적인 수준에서는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많은 수의 미시적 성분들을 한데 모으고 그것들을 평균값으로 기술하면 뜨거움이라는 개념이 나타납니다. 뜨거운 물체란 개별 성분들의 평균 속도가 높은 물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나 뜨겁다의 의미를 적절한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까이에 질량이 큰 물체가 있는 상황이거나, 우리가 많은 분자들의 평균값만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과 같은 경우에 말입니다.
시간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세상의 근본적인 기술의 한 부분이 아니라면, 시간의 흐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열 시간이라는 아이디어로 대답을 얻으려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시간의 기원은 열의 기원과 유사합니다. 시간은 미시적으로 변수들의 평균으로부터 나옵니다.
시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앞으로만 가고 뒤로는 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죠. 기계적 현상들, 즉 열이 수반되지 않는 현상들은 언제나 되돌릴 수 있습니다. 그 현상을 촬영하고 거꾸로 영사하면 완벽하게 현실적인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돌이 땅에 멈추었다고 하면 그 에너지는 어디로 간 걸까요? 바로 그 땅을 데우는 겁니다. 열로 바뀐 거죠. 열이 생성된 바로 그 순간 되돌릴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정방향의 필름을 역방향의 필름으로부터, 과거를 미래로부터 명확히 구분 짓는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과거를 미래로부터 구분짓는 그것은 언제나 열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일입니다. 타오르는 촛불은 연기로 변하지만 연기는 촛불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촛불을 열을 만들어내죠. 뜨거운 커피는 식어가지, 더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열을 발산하는 것이죠. 우리는 살아가고 나이가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열을 만들어 내죠. 자전거도 시간이 갈수록 낡아갑니다. 마찰로 열을 만들어내죠. 달도 언제나 똑같이 지구 주위를 돌로만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달이 조수를 일으키로, 조수가 바다를 미미하게나마 데우면서, 달과 에너지를 교환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현상이 벌어질 때마다, 언제나 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열은 많은 변수들을 평균화한 것이죠.
우리는 언제나 평균과 관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평균은 언제나 평균으로 작용하죠. 열을 분산하고 그 자체로 시간을 생성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파악하기 어려운 까닭은 우리가 시간이 없는 세계와 시간의 형성에 대해 대충이라도 생각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현실을 오직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죠. 시간 속에서 생활하고 시간을 먹고 살아가죠. 우리는 미시적 변수들의 평균값이 만들어낸 이 시간성의 효과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사물들의 물리적 미시 상태를 간과한 효과일 따름입니다. 시간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입니다. 시간은 우리의 무지인 것입니다.
실재와 정보
실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실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세계를 이루는 관계들의 연결망에, 즉 상호적 정보들의 연결망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 주위의 실재를 여러 대상으로 쪼갭니다. 그러나 실재는 대상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흐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변성에 경계를 지음으로써 실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다의 파도를 생각해보세요. 파도 하나는 어디에서 끝나나요? 어디에서 시작하나요? 산을 생각해보세요. 산 하나는 어디에서 시작하나요? 어디에서 끝나나요? 땅속 어디까지가 그 산일까요? 이는 모두 의미없는 물음입니다. 파도 하나, 산 하나는 그 자체로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이야기를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우리가 세상을 나누는 방식입니다. 그것들의 경계는 자의적이고 관습적이며 편의적입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가진 정보를 조직하는 방식들, 아니 그보다는 우리가 가진 정보의 형식입니다.
유기체를 포함한 모든 대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라낸 손톱이 여전히 나인 건지 아니면 이미 내가 아닌 건지를 묻는 것이나, 소파 위에 떨어져 있는 고양이의 털이 여전히 그 고양이의 일부인지 아닌지, 정확히 언제 아기의 생명이 시작되는지를 묻는 일이 무의미한 것입니다. 심지어 물리학의 많은 분야가 의지하고 있는 물리적 체계라는 개념도 그저 하나의 이상화, 실재에 대한 우리의 유동적인 정보를 조직하는 하나의 방식이 따름입니다. 살아있는 체계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형성하며 외부 세계와 그치지 않고 상호작용하는 특별한 체계입니다. 따라서 존재하는 체계들은 그것들의 생존에 알맞은 속성들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살아 있는 체계를 지향성과 목적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생물학적 세계에서 목적이란 생존에 효과적인 복잡한 형태들의 선택의 결과입니다.(이것이 다위의 중대한 발견이죠) 그러나 어떤 환경 속에서 존속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즉 정보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정보를 수집, 저장, 전달, 처리하는 것입니다. DNA와 면역체계, 감각기관, 신경계, 복잡한 두뇌, 언어, 책,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컴퓨터, 위키디피아 등이 존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정보 관리의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이죠. 즉 상호관계에서 관리의 효율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