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홍혜선의 불발탄 예언 ‘한국전쟁날짜’는 유튜브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다. |
홍혜선의 불발탄 된 ‘한국전쟁예언’ 파장은 지금도 진행중 ①
2014년 12월 14일 오전 4시 30분. ‘한국전쟁이 일어난다’는 홍혜선 전도사의 예언은 불발탄이었다. 그러나 홍 전도사의 주선에 따라 태국으로 급히 떠났던 피난민들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교회와신앙>은 공동취재팀을 꾸려 그들을 찾아 나섰다. 탐문 끝에 태국 매홍쏜에서 만난 피난민들을 여전히 전쟁공포에 떨며 한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난 1월 초 필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인 P 집사가 홍혜선 전도사의 한국전쟁설을 믿고 태국으로 피난 갔는데 소재를 알 수가 없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제보자는 서울 강남에 소재한 한 대형교회 소속의 K 집사.
K 집사는 필자에게 “지난 해 11월 말, 아내가 홍혜선 전도사의 전쟁설을 다룬 유튜브를 보고 대전 H교회에서 열린 홍혜선 전도사의 집회에 다녀온 후 태국으로 피난가야 한다며 재촉함으로 아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아내의 말대로 두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이 태국으로 피난을 갔었다.”고 말했다. “처음엔 여행하는 마음으로 갔었다. 그리고 직장 관계로 저는 일주일 만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아내와 두 아이는 태국에 그대로 머무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 아내와 계속 카톡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가운데 홍 전도사가 전쟁이 일어난다는 12월 14일 새벽 4시 반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홍 전도사의 예언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아내는 자기 말을 도무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면서 “그제서야 아내가 전쟁설을 확실히 믿고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아내의 상황이 생각이상으로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K 집사는 “아내를 태국에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되어 강제로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태국으로 다시 갔다. 그리고 아내와 치앙마이에 있는 A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한국에서 전쟁이 진행 중이라면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아내에게 손찌검을 했다. 그러자 아내가 자기 가방을 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두 아이만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한국에 돌아온 K 집사는 “어린 두 아이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긴 후 직장 일을 하면서 아내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며 필자에게 전화를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속내를 밝혔다.
때마침 태국 치앙마이와 인근 지역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S 목사가 잠시 귀국했다. 필자는 S 목사를 통해 태국 현지 상황에 대한 제반 설명을 듣고 태국으로 가서 현지 취재 및 P 집사의 소재를 찾고 나아가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강구하기로 했다.
태국 현지 상황을 종합한 결과 홍혜선의 전쟁설을 믿고 피난길에 오른 다수의 사람들이 태국 치앙마이와 미얀마 국경 지대인 ‘매홍쏜’이라는 지역에 머물고 있다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워낙 오지이고 국경 인근인지라 안전이 염려되었다.
다행히 SBS <그것이 알고 싶다>(담당PD 주시평)와 공동취재가 성사되었다. 전쟁설로 인해 단란한 가정들이 무너지고 가족이 생이별을 하는 등 사회문제화에 따라 피해 확산 방지와 피난민들의 안전과 조속한 귀국을 도모하기 위해 현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기로 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와 필자로 이루어진 공동취재팀은 1월 18일 오후 5시 5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했다. P 집사의 친정어머니인 L 권사도 동행했다. L 권사의 태국행은 갑작스런 결정이었으나 P 집사를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남편인 K 집사보다 친정어머니가 가시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에 의해서였다. 6시간 넘게 걸려 태국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이튿날부터 본격적인 취재에 돌입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K 집사의 부인인 P 집사가 피난을 간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매홍쏜의 방정열 선교사가 운영하는 신학교라는 사실이었다. 방정열 선교사는 2009년 9월 <교회와신앙>의 보도로 후원들이 끊어져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 선교사의 취재협조는 고사하고 P 집사의 소재 파악조차 결코 쉽지 않을 것이 예견되었다.
| | | ▲ 태국 매홍쏜은 치앙마이 보다 마얀마 쪽 국경 인근에 있다. |
태국 치앙마이에 도착한 이튿날인 19일(월)부터 시작된 취재일정은 먼저 치앙마이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숙박업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두 게스트 하우스를 방문, 전쟁설과 관련하여 태국에 피신해온 사람들이 있는가를 탐문하는 것이었다. B 게스트 하우스 사장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나타냈으나, C 게스트 하우스 사장은 한국에서 전쟁이 났다며 태국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있다고 증언했다. 취재팀이 C 게스트하우스 사장과 인터뷰를 하는 중에 마침 한국에서 피신왔다는 목회자 가정을 목격, SBS 카메라 촬영기자가 뒤를 따라갔지만 골목골목을 지나는 바람에 아쉽게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취재팀이 20일(화) 오전에 매홍쏜에 들어가 취재를 마치고 22일(목) 오후에 치앙마이에 돌아와서 다시 C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을 때, 지난 월요일에 다녀간 목회자 가정과 함께 교회 성도로 보이는 10명의 사람들이 다녀갔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만나기 위해 23일(금)에 또다시 C 게스트 하우스를 취재팀이 탐방했으나 이들의 행적을 찾는데 실패해 만나지 못했다.
문제의 매홍쏜 취재. 1월 20일(화) 오전, 취재팀은 11인승 차량을 렌트하여 취재장비 등을 싣고 매홍쏜으로 향했다. 렌트 차량엔 매홍쏜 상황을 잘 아는 현지 가이드와 한국말로 통역해줄 현지 선교사인 W 선교사, 그리고 L 권사가 함께 탑승하여 동행했다.
치앙마이에서 매홍쏜까지의 차량이동시간은 대략 6시간. 강원도 산길보다 더 꼬불꼬불한 차도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태국의 무성한 숲과 나무들이 스쳐지나갔지만 차량에 탑승한 일동 대부분은 자연의 정취를 느낄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오직 매홍쏜에서 어떤 상황들이 전개될 것인지에 촉각이 곤두설 뿐이었다.
P 집사가 과연 매홍쏜에 머물고 있는지, 머물고 있다면 어머니의 설득으로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할 것인지, 그리고 전쟁을 피해 매홍쏜으로 피난온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되는지, 들리는 소문으론 50~60명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지 등의 생각으로 첫 태국 땅을 밟은 필자이지만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무거운 그림자가 가시지 않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필자를 비롯하여 함께 한 일행들은 여러 가지 정보들을 공유하며 매홍쏜에서 일어날 다양한 변수들에 대해 검토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등의 논의를 계속했다.
취재팀의 계획은 매홍쏜에 도착하여 먼저 주변 상황들을 체크하는 것이었다. 즉 사전에 충분히 매홍쏜의 여러 동태와 상황들을 알아본 후 피난민들이 모여 있다는 매홍쏜신학교를 방문하여 취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렌트 차량 운전기사가 매홍쏜에 도착하자마자 일행을 모두 태운 채 곧바로 매홍쏜신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신학교 관계자들이 정문을 향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갑작스런 일에 SBS 취재팀장인 주 피디가 즉시 차를 신학교 밖으로 빼도록 해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자칫 취재팀의 신분과 정보가 노출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프닝이 오히려 매홍쏜 취재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신학교 밖으로 나온 우리 일행들이 잠시 마음을 정리하며 취재 일정에 대해 논의하고 있을 때 신학교에서 병원 응급 차량이 나와 우리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인근 병원을 찾았다. 놀랍게도 신학교 안에서 한 어린아이가 팔을 다쳐 매홍쏜에 있는 규모가 큰 병원으로 옮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 | ▲ 매홍쏜신학교 안에서 다친 한국인 어린아이가 치료 받은 병원 Ⓒ<교회와신앙> |
우리 일행들은 큰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선 SBS 취재팀만 병원에 들어가 팔을 다쳤다는 아이와 어머니를 만나기로 했다. 혹 다수가 찾아갔을 때 아이 어머니가 마음의 문을 닫음으로 인해 취재 문이 막히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다녀온 SBS 취재팀에 의해 아이 어머니가 파주에서 전쟁설로 인해 피난 온 L 집사라는 것과 L 집사의 아이가 철봉에서 떨어져 팔을 다침으로 병원에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L 집사는 SBS 취재팀에게 “전쟁설 때문에 피난온 것이 맞다.”고 솔직하게 심경을 밝혔으며, 그날 저녁에 있을 저녁 집회에 초청했다. 그래서 신학교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SBS 취재팀이 떠났다.
필자도 함께 나서고 싶었지만 방 선교사가 <교회와신앙>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상황인지라 섣불리 나서기가 어려운 입장이어서 추이를 살피며 SBS 취재팀의 협조 속에서 취재를 펼쳐나가기로 했다.
SBS 취재팀이 신학교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필자는 취재가 잘 이루어지는가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신학교에 갔다가 돌아온 SBS 취재팀이 전해준 얘기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방 선교사와 만나긴 했지만 SBS 취재팀이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저녁집회를 중단했으며, 취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자세였고, 사전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사실에 대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에서 만났던 L 집사의 경우 방 선교사로부터 질책을 받았는지 주눅이 들어있는 표정으로 낮에 봤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SBS 취재팀은 P 집사가 신학교 안에 있느냐고 질문했으며, 이에 대해 방 선교사는 단호한 어조로 “P 집사는 신학교 안에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번 취재가 결코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이 난관을 어떻게 뚫고 P 집사를 찾아 한국으로 데려갈 것이며, 신학교 안에 몇 명의 피난민들이 있는지 그들이 전쟁설 때문에 피난 온 것이 맞는지, 그리고 왜 매홍쏜으로 오게 되었으며 방 선교사가 이 일에 어떻게 연관되어졌는지 등을 취재할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P 집사가 방 선교사의 말처럼 진짜 신학교 안에 없는지, 이 부분이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왜냐하면 P 집사가 신학교 안에 있는 것이 확인되기만 한다면 신학교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어떤 구실이나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P 집사의 소재파악을 위해 머리를 맞대며 지혜를 모았다.
그 순간 필자의 머리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필자가 치앙마이에 도착하여 우리나라 돈을 태국 화폐로 교환하기 위해 은행에 갔을 때, 은행 직원이 필자의 여권을 보자고 했던 기억이었다. 즉 매홍쏜에 있는 은행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은행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분명히 P 집사의 소재파악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었다. 필자의 이 생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으며 이번 취재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다음날 필자와 SBS 취재팀이 매홍쏜에 있는 은행을 찾아가 P 집사의 사진을 보여주며 다녀갔는지를 탐문했다. 그랬더니 하루 전에 일행과 함께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매홍쏜신학교 안에 P 집사가 있음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 | | ▲ 은행에서 P 집사의 행적을 탐문 중인 공동취재팀 Ⓒ<교회와신앙> |
그런데 우리가 매홍쏜에 있는 은행을 탐문하고 있을 때 마침 매홍쏜신학교에 있던 트럭 한 대가 시내에 주차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이 트럭을 보자마자 주 피디가 신학교 안으로 들어가자고 제의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신학교 정문을 지키는 남자들이 시내에 나온 것 같다.”면서 “지금이 신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타이밍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곧장 매홍쏜신학교로 향했다.
신학교에 도착하여 신학교 가까운 곳에 자동차를 주차하여 먼저 신학교 주변 상황을 살핀 후에 일행 모두 정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미 예상한 대로 쇠문으로 된 정문은 닫혀 있었으며, 자물쇠도 걸려 있었다. 정문에 도착한 필자는 정문을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런데 자물쇠로 잠겨 있는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쇠문을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쇠문이 열렸다. 그래서 필자는 L 권사를 데리고 신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SBS 취재팀과 W 선교사가 따라붙었다. | | | ▲ 매홍쏜신학교의 전경 Ⓒ<교회와신앙> |
정문에서 신학교 건물까지는 50미터 정도 걸어가야 했다. 신학교 건물에 가까이 이르러 건물 안으로 들여다보니 휑한 바닥에 은박지를 하나 깔아놓고 생활한 것으로 보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진 강의실에서 사람들이 모여 교육을 하고 있는지 소리가 들렸다. 강의실 안으로 그대로 들어갈까 하다가 옆으로 돌아서 맞은 편 쪽으로 갔다. 들키게 되면 쫓겨날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서 쫓겨나기 전에 먼저 P 집사가 신학교 안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맞은 편 쪽에 이르니 서너 명의 태국 현지인들이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한국에서 온 P 집사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중에 한 사람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따라갔더니 강의실 쪽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학교 복도를 지나가다가 도중에 우리를 머물게 하더니 혼자 가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자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도 뒤따라갔다.
조금 전에 지나쳤던 강의실에 이르니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우리를 인도한 분이 방 선교사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아마도 한국에서 P 집사를 만나러 왔다는 내용을 전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L 권사가 열려진 문 사이로 P 집사가 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대로 뛰어가서 ‘아무개야’ 하고 부르며 그냥 얼싸안았다. 앉아 있는 사람들이 무슨 영문인가 하여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방 선교사 역시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했는지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 | | ▲ 매홍쏜신학교 안에서 L 권사와 P 집사 모녀가 극적으로 상봉했다. Ⓒ<교회와신앙> |
P 집사는 L 권사를 제외하고 우리 모두에게 나가 달라고 요구하며 강의실 밖 복도까지 따라 나온 P 집사는 사진도 찍지 말고 촬영도 하지 말라며 언성을 높였다. 곧이어 뒤따라 나온 방선교사가 우리 일행들을 사무실로 인도했다.
방 선교사를 따라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후 대화를 나누려고 자리에 앉았는데, 방 선교사가 필자더러 누구냐고 물었다. 필자는 <교회와신앙> 사장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그랬더니 방 선교사 하는 말, “교회와신앙, 나가세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취재를 위해 비행기타고 6시간, 렌트 차량을 타고 6시간, 도합 12시간을 걸려 매홍쏜까지 왔건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쫓겨났다. 한국에서 예상했던 대로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SBS 취재팀은 방 선교사와의 대화가 성사되었다.
사무실을 나온 필자는 신학교 안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살펴보니 재정적 후원이 확실히 미흡하다는 것을 여러 가지 정황으로 알 수 있었다. 썰렁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모습들이 신학교 안 여기저기에서 목격되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방 선교사에 관해 취재한 바에 의하면 예전엔 한 달에 1200만원에서 1500만원까지 후원이 이뤄졌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소속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김용두 목사(인천 주님의교회)의 영향을 받아 신비주의 사역을 펼치면서 후원이 끊어져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 | | ▲ 매홍쏜신학교의 수업장면 Ⓒ<교회와신앙> |
필자는 방 선교사의 문전박대로 사무실에서 나와 신학교 건물 밖 여기저기를 돌아보다가 다시 신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치앙마이에서 매홍쏜으로 함께 온 W 선교사가 전쟁설 때문에 남편과 아이를 대전에 두고 혼자 매홍쏜까지 피난왔다는 한 여자 집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 집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갱도 갱차 소리가 다 잡히는 데요, 지하에서. 유튜브를 통해 다 들었어요. 녹음하신 거 다 들었어요. (홍혜선) 선교사님이 윤여길 박사님을 데리고 와서 들려주시는 것 다 들었다구요. 채취 녹취한 것 다 들었다니까요. 한국에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도로가 얼마나 다 파손된지 아세요? 땅굴 있는 곳마다 다 깨어져 있어요. 얼마나 불안한지 아세요? 그리고 서울역이요. 서울역이 무너지지 않도록 서울역 계단에 지지대를 세워놨어요. 지나가는 곳이니까요. 제가 눈으로 봐도 불안 하더라구요. 싱클홀이 1년 만에 40개나 발견됐어요. 그전까지는 없었던 것이 왜 갑자기 발견됐냐구요. 땅굴이 올라왔으니까 그렇겠죠. 그런데 롯데 제2월드가 눈에 보기에도, 육안으로도 영화관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는데 내 백성들, 우리 식구들이 그냥 거기 살고 있으라고 못하지요. 데리고 나와야지요. 저희라도 먼저 나와서 ‘제발 와라 제발 와라 전쟁이다 진짜 전쟁이다.’ 말씀만 펴면 전쟁이라는데요. 이사야서 41장부터 계속 읽구요. 예레미야 1장부터 36장까지 계속 읽고요. 말씀만 펴면 전쟁의 위력이. 불타오르나 사방에서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그러면서 도시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고 거리는 황폐해지고 도시는 불에 타고 아이들은 잡혀먹고. 홍 선교사님이 예언하신 게 말씀에 다 있는데 어떻게 안믿어요. 제가 홍 선교사님 얘기만 듣고 온 게 아니예요. 늘 말씀을 읽으면서 검증했어요. 여기와서 환상보고 대언하게 됐어요. 홍 선교사님 유투브를 들으면서 방언통역이 오더라구요. 이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나 여기 와서 제게 그날그날 주시는 말씀만 신뢰해요. 말씀을 신뢰하면서 현지사역자들하고 (방) 선교사님 안수받고 기도하면서 성령터치가 왔어요. 어느 순간 찬양을 하면 방언찬양이 나오면서 대언이 되면서 바로 예언이 되는 거예요. 눈감고 현지사역자들하고 손 붙들고 우리 한국전을 위해 얼마나 많이 기도했는지 몰라요. 제가 기도하면 환상을 볼 수 없는 육이 두꺼운 사람-이 말은 홍혜선 씨가 쓴 표현이다-이거든요. 그런데 (이젠) 기도하면 환상이 보여요.”
필자가 물었다. “어떤 환상이요?” “지상에서 폭파되고 그런 것이 보였어요. 어린아이들이 파편 때문에 눈을 못뜨고 장님이 되어 있고, 북한 부상병들이 아군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거기서도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메시지. 거기서도 목회자들이 걸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북한 원수한테도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메시지. 그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는데 그 아이를 누군가가 껴안아 줘야한다는 그 메시지.”
“지금 혼자 오셨어요? “예.”
“그럼 아이들하고 아빠하고 빨리 나와야 되겠네요.” “제가 설득을 그렇게 했었어도요...”
그때 W 선교사가 말을 가로막고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가 문제예요. 지금 진행 중이라면서요. 전면전이요” “당장 터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방 선교사님하고 엄청 고민했어요. 그런데 결론이 뭔지 아세요?”
“뭔데요?” “주님의 자비 때문에. 요나가 니느웨에 가서 40일 지나면 멸망된다고 선포하니까 회개했잖아요. 그래서 하나도 안 일어났지요. 그 당시엔 안 일어났잖아요. 그러니까 ‘요나가 왜 안 일어나요 주님.’ 그러니까 주님이 넝쿨을 보이시면서 ‘내가 자비를 베푸는데 네가 왜 그러냐. 내가 주권자라는 것을 알지 못하냐? 이들이 회개해서 내가 그것을 듣고 내가 계획을 바꾼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 제가 여기 와서 깨달은 주님은요 변화무쌍하신 분이예요. 우리의 기도에 따라서 어떤 재앙이 면해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보혈을 의지하니까요. 주님의 보혈을 여기서 계속 바르는데요. 식구들한테 바르고...” 이때 W 선교사가 또 질문을 던졌다. “계시 차원에서 해석이 되고 깨달음이 와서 홍혜선하고 방 선교사하고 가르쳤던 얘기이지요? 저도 유튜브를 통해 들었네요.”“홍선교사님한테 배웠지만 거기선 전체적인 집회만 들었기 때문에 몰랐어요. 깊이 몰랐는데...” “방 선교사가 그 자리에서 질문도 하고 그러던데요.” “그런데 방 선교사님이 왜 질문하셨느냐면 홍 선교사님의 성령사역에서 터치 받아서 맞는 사역인지 확증 받고 싶으셨데요. 그런데 대언해보니까 똑같아요. 저희가 여기 와서 보니까 홍 선교사님한테 성령터치, 더 내적치유 받았으면 좋겠네 했는데 기회가 없었어요. 너무 큰 분이잖아요. 만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기와선 매일 받아요.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필자가 질문을 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나요?” “대전 J 교회 집회에서 만났어요. 홍혜선 선교사님이 대전에서 두 군데 집회를 했어요. 그때 방 선교사님이 그전부터 전쟁난다고 하니까 친척들에게 가서 복음전해야지 해서 한국에 오셨는데 식구들에게 가지 않고 성령님께 이끌려서 오신 곳이 J 교회였어요. 거기서 만났어요. (그곳에서 홍 선교사가) 전쟁이 나면 어떤 사람은 ‘당신은 추수될 겁니다. 가장 먼저 죽을 겁니다.’ 어떤 분은 아무 얘기도 안 해요. 진짜 제일 답답하지요. 어떤 분은 저처럼 피난 나가라 했어요. 이렇게 세 가지 부류였어요. 피난 나가라는 사람이 반 이상이 되었는데 ‘그럼 선교사님 우리 어디로 나갑니까. 우린 해외로 나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그때 ‘방 선교사님 이리 나오세요. 방 선교사님 혹시 태국갈 수 있습니까.’ ‘저희 300명 수용 가능합니다.’ ‘그럼 생활비는 어떻게 됩니까?’ ‘저희 한 달에 10만원이면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 여기 들어와서 생활하면 일주일에 100바(1바트=한국돈으로 33원 정도) 씩 내고 밥 먹어요. 그거 내고 잘 먹고 잘살고 있어요. 사실 저는 돈이 없이 왔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가게라도 알아봐야 되지 않겠나 했는데 방 선교사님이 ‘아무 것도 하지 마라. 그저 하나님 마음만 구해라. 그리고 나서 성령 안에서 여러분이 하실 일을 하십시오.’ 그래서 방 선교사님의 사랑 안에서 수고 안에서 저희들이 품 안에 안겨 있는 거예요.”
W 선교사가 물었다. “상식적으로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하게 되면 일차적으로 재산 정리거든요. 금전적인 것, 금융적인 것. 그걸 해결하고 온 분이 있고 사채도 있고, 집 정리도 있고. 그러나 그걸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한 분도 계신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 와서 현금이 없어 빌려서 오신 분도 있고...” “그 분은 특별히 계시를 받았대요.”
“전체가 그러신게 아니고?” “우리는 바삐 오느라고 그런 거 할 여유도 없었구요. 돈도 없었구요. 너무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진짜 출애굽하는 게 뭔지 알겠다 싶을 정도로 그냥 가방 하나에 쑤셔가지고. 왜냐하면 집에서 뜯어 말리니까요.”
“지금 결과적으로 보면 조금 여유 있게 자금도 준비하고 피난왔으면... 결과적으로 후회가 안 되나요. 이 정도 안정적인 상황이면...” “저희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시한을 정해놓았으니까 시간이 촉박했겠지요.” “엄청 촉박했고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가 너무 지나쳤기 때문에 돈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어요.”
“하나님의 자비가 진행되면서 조금은 안전한 무렵이 있었잖아요. 대통령도 살아 있고, 정치인들도 살아 있잖아요. 게릴라전이 일어났다할지라도 적어도 이런 자비의 신호는 못 받았냐구요. 조금은 뭔가 챙기고 나올 수 여유 정도, 없었어요.” “없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여유가 생기잖아요. 한국에 있는 못 오신 분들도 있고.” “못 오신 분들에 대해서 그건 돈의 문제도 아니고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저흰 기도만 할 뿐이예요. 돈이 없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돈이 필요가 없어요. 여기선.”
“돈이 상당히 많은 분도 계신다든데...” “그분은 가셨어요. 사업하는 분이신데 마음이, 목적이 사업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우린 그분이 그렇게 되길 원치 않았어요.”
필자가 물었다. “여기오신 분들이 거의 급히 나오신 분들이군요.” “예.”
“아까 보니까 방 선교사 우측에 남자 분들이 너 댓 분이 계신 것 같은데 목회자들은 없으신가요.” “한 분은 목사님이시고 나이 드신 분은 선교사님으로 오셨구요. 은퇴하신 목사님도 계시구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여기계신 분들을 방 선교사님이 다 먹여 살리시는 거네요?” “현지인들이 저희들을 엄청 도와요. 우리가 고기는 못 먹어요. 100바 가지고 고기를 먹을 순 없잖아요.”
필자는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 매홍쏜으로 피난왔다는 여 집사의 이와 같은 얘길 들으면서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 결코 동의할 수 없는 황당한 얘기들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매홍쏜 신학교 안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도 피난을 온 사람들이다. 이들도 이러한 사실을 그대로 믿기 때문에 매홍쏜까지 오지 않았겠는가. 이 믿음을 우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물론 일차적인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 그렇기에 가정을 깨뜨리면서까지 하여 자기 혼자 살겠다고 외국에 피난온 사실에 대해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기 이전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말을 믿고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수 십 명이 짐 보따리를 싸서 태국으로 피난을 왔다는 이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 것인지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 대부분은 우리들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평신도는 물론이요 목회자도 있다.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한국에 두고 낯선 외국 땅에 와 있는 이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이들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이 또 한 번 뭇사람들로부터 짓밟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이들이 과연 알고나 있을까. 하나님의 직통계시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나머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양 받아들여 가족은 물론이요 그 누구의 말도 듣질 않고 행동에 옮기는 이들의 잘못된 신앙관은 결국 한국교회의 전도를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요인이 되고 말았다. 그 책임을 어찌 감당하려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다시 가정과 섬겼던 교회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각별한 관심과 이해심으로 길을 열어 주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기 보다는 애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중보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전쟁설을 퍼뜨려 한국교회와 사회를 혼란하게 만든 장본인들에 대해선 철저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법적인 제재까지도 병행되어야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그래서 또다시 이런 잘못된 계시로 가정을 깨뜨리고, 한국교회를 기망하거나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시간이 흘러 밖에 일보러 나갔던 남자 일행들이 돌아왔다. 필자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말도 붙이고 살갑게 대했다. 처음엔 필자가 누군지를 몰라서인지 적개심을 나타내진 않았다. 같이 웃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누군지를 안다면 180도로 태도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필자가 결국 방 선교사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인터뷰 중 신학교를 총괄한다는 한 남자가 방 선교사에게 다가와서 방송장비 등을 모두 빼앗아 버리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방 선교사가 괜찮다고 하여 다행히 취재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은 방 선교사가 필자에게 설명하여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 남자들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면 신학교 안에 들어오는 것조차 사실상 불가능했고, 따라서 P 집사를 만난다든가 취재를 하는 것 등이 상당히 어려웠을 것을 것이다. <계속> |
첫댓글 홍혜선 닮은...성도 같지 않은 ET(외개인, 골륨) 같은 것들.. 이곳 카페에도 아직 많이 남아 있죠?
홍 씨 주장을 퍼나르며 부화뇌동했던 분들... 아직도 사과 없이 활동 중이시죠. 물론 아무런 책임의식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양치기 소년들이 있어야.. 세상끝이 오긴 합니다..
입만열면 계시받는다며 거짓예언 퍼오면서 휴거 휴거 외치시는분들.. 휴거 탈락!!! 되십니다.......
정말이지 기독교 망신!!!!
http://www.dailymotion.com/embed/video/k6ht24ZwQ4YiUFa4LgF?syndication=165445&logo=0&info=0&autoPlay=0
지금도 땅굴로 협박하면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자들이
이영상을 봤스면 좋겠군요 특히 26분 20초 부터서 28분정도까지 는
신경써서 보고 깨달음이 왔음 참 좋겠습니다
미친 가시내한테 놀아나는 어리석은 기독인들이여/ 사람말을 믿지말고 성경말씀을 믿거라, 으쩜그리도 '영성과 영안'들이 콱막혀있는지,,,,신기하다 신기해/
목사님께서 이런글을 올리시다니 참으로 놀랐습니다.
땅굴 얘기와는 담 쌓으신 분인줄 알았는데요 하긴 이 카페에서도 전쟁설 지지했으면서도
사과는 커녕 오히려 더 뻔뻔 해진 사람도 있지요 목사님의글 감사합니다
한국은 전쟁설로..미국은 베리칩시작과 핵전쟁이 터지기 전에 떠나려고 나름대로에 도피성들이 다른나라에 준비되어 있다함을 들었습니다..어디로 간들 피하겠나요..차라리 여기 이자리서 주님을 만나지...
저도 피해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동안 주변에 마지막 시대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안그래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분들 많앗는데
홍혜선 전도사 카톡으로 무지 보내드렸는데
아...
이젠 이 방송을 계기로 저 완전 미친놈으로 찍힐듯 합니다.
이젠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안먹히게 생겻습니다.
사탄의 승리이지요.
새벽님. 그래도 님은 성공하신 것입니다.
미혹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그리고 님의 순수한 마음은 예수님이 접수하셨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임은 분명합니다...
맞아요
하도 미혹이 많아서 안믿어요
사탄이 좋아서 잔치 벌리겠죠 ㅠㅠㅠ
힘내세요
홍혜선씨는 전하라는 것을 전했을 뿐입니다. 홍보 능력이 잘 발휘되어 국가적인 화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누군들 전하라는 메시지가 오면 전하지 않겠습니까? 좌파에게도 우파에게도 기독교인 대부분에게도 적이 되는 상황이지만 양심적인 기독교인이 1%는 살아 있습니다. 훙혜선씨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게 생각해 주는 차원에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예언도, 환상도, 꿈도 꿔지지 않는 사람들은 조용히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예언을 받아도 분별 잘하셔야합니다
전하라고했다고 다 맞는 예언인가요.....
도피처는 주님입니다
닝좀 입벌리지 마세요
사탄의 음성을 분별하지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한것이고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교만하니
분별을 못한것입니다
결국 사탄의 속임수에 놀아난것입니다
그건 누구탓도 아니고 본인 탓입니다
믄제는 순진한 양들을 잘못된길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이 악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는데
뻔펀하게도 사과한번 안하는거 보먼 그녀도 악한영에 사로잡힌거
같네요
모든 피해를 그녀에게... 이게 얼마나 바보짓입니까? 방송이 일루미나티 계열이라는 것을 알면서 방송 하나 보고 길길이 날뛰니 한참 멀었습니다. 전쟁 날짜 지정에도 선기능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고 김정은이 생각하는 날짜를 우리가 매번 맞추므로 한국 기독교인들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다음 날짜는 2월 16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월 16일은 또 어디서 나온말인지 모르겠지만 고만좀 하셔요.
전쟁날짜를 정확히 맞춰서 안쳐들어왔다고 하는건 코미디입니다.
2월 16일 무사히 지나면, 또 정확히 날짜를 맞춰서 김정은이 안쳐들어온거라고 하실건가요?
이단에 빠지면 옳고 그름을 상실하게 되므로 홍혜선이는 최면술사가 되고 그를 따르는자들은 최면에 걸리게 됩니다.
최면에 걸리면 교주의 말은 신이 내린 말이돼고 성경 말씀은 이단들이 인용하기 유익한 도구가 되므로
영원구원과는 하등 상관이 없는 마귀의 씨았이 돼어버립니다.
홍헤선이 그 가시나 똄에 가정이파탄나고 ,"꽝" 으로 끝났는데도 아직도 정신 몬차리고 그 가시나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다니,,,기가 막힙니다,
에고.... 정말 너무 안타깝네요....ㅠㅠ 그리고 위에 K집사님이란 분은 아무리 그래도 아내분한테 손찌검은 너무했네요. 다른 방법으로 구슬릴수도 있었을텐데요.
아무튼 제 생각엔 홍혜선도 문제였지만, 홍혜선이나 그녀의 말을 믿고 피난 간 사람들이 정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게 만든 남굴사가 더 문제인 거 같네요. 홍혜선도 제가 집회하는 영상을 좀 봤지만, 진실성은 있어보였거든요. 그러니깐 스스로도 진심으로 그걸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거 같아요. 또 홍혜선이랑 그녀를 따르는 무리들, 피난가신 분들 전부 비슷한 예언, 환상을 본다는 것은, 다미선교회 사건 때에도 몇백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똑같은 환상을 봤단 얘길
들었는데 그거랑 비슷한 거라 생각합니다. 마귀가 그런 식으로 미혹하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 때일수록 환상, 예언 이런 것도 무조건 믿으면 안되고 더 분별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남의 체험이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체험했다고 해도 말씀을 통해 철저히 검증을 해야할 거 같네요
@Maranatha Maranatha님은 전부터 느낀거지만 마음이 정말 예쁘신 분 같습니다.
홍혜선이 단단히 미혹되어서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었는데 환상,꿈은 사단도 줄 수 있는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신것이라도 해석을 잘못하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수 있는것이라 주의해야 하는데, 보았다,들었다 하면 신령한 사람인줄알고 꿈뻑 죽는 사람들이 안타까워요.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을 통해 철저히 검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고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