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3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1장 18절 - 25절 - 복음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며 주의 뜻에 순종하여 주의 구원과 능력을 경험하며 살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오늘은 어제보다 덜 추운 아침이지만 여전히 몸은 추위를 느끼며 시작합니다.
추운 날씨에 마음까지 얼지 않게 하시고 주님과의 관계에서 따뜻함을 누리도록 인도하옵소서.
어제는 아내의 검진을 크게 아프지 않은 가운데 마치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검사의 결과도 긍정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하며 영육의 강건함을 얻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오늘도 죄와 부정함으로 더러워진 마음과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드립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새 영과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옵소서.
인생의 갈 길을 주님과 같이 걷게 하시고 주와 교제하며 생명의 길로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의 지체들도 주 안에서 강건한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이끄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연약한 지체들을 기억해 주사 주 안에서 강건하게 서도록 은혜와 사랑으로 붙들어 주시기를 소망하며 날마다 은혜와 진리로 생명의 길을 가게 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과 주해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는 결혼 전에 약혼을 했으며 약혼의 기간은 대략 1년 정도였다. 이 기간이 지난 후 정식으로 결혼하고 동거하는 문화였기에 마리아와 요셉은 약혼 후 결혼하기 전까지 동거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 기간에 마리아는 성령을 통해 임신을 하게 되었다. 마태가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는 이유는 마태복음을 기록할 당시 유대인들이 마리아가 요셉이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 예수를 낳았기에 서출 또는 사생아라고 비방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이 성령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창조의 사건으로 제시하면서 예수님의 신적기원을 증거 하고 있다.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이 혼외 관계에 의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기에 많은 고민 끝에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파혼하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는 요셉이 마리아를 배려하여 큰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파혼이 진행되도록 했음을 의미한다.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주의 사자는 가브리엘 천사로써(눅1:26)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는 천사로 볼 수 있다. 천사가 다윗의 자손 요셉으로 부른 것은 다윗의 계보를 통해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성취의 의미가 담겨 있다. 요셉의 두려움은 부정한 아내를 취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볼 수 있다.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고지하는 이유는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오해를 벗고 아이의 신적, 영적 기원을 알려줌으로써 마리아와 정혼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보여준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로 죄로부터의 구원의 의미가 담긴 이름이었다. 이러한 이름은 예수님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가져다주고 있다.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는 예수님 탄생의 사건은 과거 악한 왕이었던 아하스에게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한 성취임을 증거 한다.(사7:14) 아하스는 아람의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유다를 긍휼히 여겨 아하스에게 승리의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징조를 구하지 않았다. 이에 하나님은 스스로 징조를 선포하셨는데 그것은 처녀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며 그 이름이 임마누엘이 될 것을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신앙의 죄를 책망하시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주도적인 승리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을 의미했다.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요셉은 천사의 명령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했고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음으로써 마리아는 동정녀의 상태였음을 증거 한다. 그리고 이후 요셉은 마리아와 정상적인 부부로써 자녀를 낳게 되었고 그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이었다.
나의 묵상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시도록 하셨다.
마리아는 자신이 결혼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당시 문화로써는 죽음에 이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특별히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약혼을 한 여인이 다른 남자와 동침하게 되면 그것은 간통죄에 해당하기에 돌에 맞아 죽게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험과 사람들의 비난, 그리고 오해와 갈등의 문제가 마리아에게 주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기꺼이 고난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녀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의 탄상의 역사를 진행하신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이 진행되는 가운데 마리아가 죽지 않고 살도록 이끄셨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선한 결과로 이어지게 만드신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대한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셨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3,24)
구원의 진리는 자신을 버리는 일에서 시작하고 생명을 얻는 것으로 열매를 맺는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리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 때 생명의 풍요함을 얻고 누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는 사람들의 생각과 의지를 따라 드러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구원과 진리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ㅎ라는 자들에게 나타나며 그들이 그 구원과 진리를 전하는 자가 될 수 있다.
마리아가 그러했으며 요셉이 그러했고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보여주었다.
반대로 자기의 생각과 의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아닌 심판이 임한다.
마태는 그리스도의 탄생 사건을 과거 악한 왕이었던 아하스기에 하나님이 선포하신 메시지가 성취된 것임을 증거 한다.
아하스는 유다의 악한 왕으로써 하나님께서 구원의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으나 자신은 하나님께 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아하시는 이방의 우상을 섬겼던 왕이었으며 하나님을 거부한 왕이었던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징조를 선포하신다.
그것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이름이 임마누엘이 될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포는 인생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함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될 것을 의미했다.
죄와 허물로 죽을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손길이 구원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생의 거부와 외면에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역사는 진행 될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의를 기울이고 바라보게 되는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비밀이요 능력의 사건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벧전1:10~12)
천사들도 알지 못했던 구원의 비밀과 섭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 시작이 성육신의 사건이었으며 하나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생명을 드리며 맡기고 의지하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동일한 모습으로 세상을 이끌고 계시며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신다.
인간의 의와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하심을 통해 그 일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결국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 복음을 통한 자기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주의 음성을 따라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오늘도 주님은 그러한 삶으로 부르시고 주의 뜻 가운데 거하도록 독려하신다.
여전히 주님 앞에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자요 부끄러움만 가득한 자이지만 또 다시 기회를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겸손히 자기를 부인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주님의 탄생은 기이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통해 행하심을 고백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삶을 사는 자가 아니라 겸손히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주의 백성 되게 하옵소서.
인생의 지혜는 처세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는 것에 있습니다.
땅의 상황에 흔들리고 땅의 요구에 따라 마음을 바꾸는 자가 아닌 주님 앞에 나아가 주의 음성을 듣고 분별하여 순종하는 것에 마음을 두는 자 되게 하옵소서.
연약한 인생이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리석음의 인생을 긍휼히 여겨 주시고 바른 길,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가는 자가 되도록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오늘의 삶에도 선한 길로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