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대의원총회에 참석했습니다.
사회복지사협회,
이런 저런 자리를 고사하고도 아직 버리지 못한 지위와 헛된 이름 때문에,
이러 저러한 관계 때문에,
사회복지 지도자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사회복지 전문직.전문가 논쟁이나 사회복지 세속화 비판으로
그분들과 다른 지평에 서있습니다.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합니다.
만나면 깎듯이 예우하고 서로 칭찬하고 감사합니다.
종종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다름을 느끼는 탓인지 서로 침범하지 않고 매우 삼가고 공경합니다.
저는 협회 활동에 적극 동참하지는 못하지만 존중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거나 확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선한 뜻과 희생적인 수고에 감격하며 고맙게 생각합니다.
협회가 애써 이루어놓은 것들의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회복지사협회에 나가거나 사회복지 지도자들을 만날 때면
한편으로는 반갑고 고맙고 정겹지만 한편으로는 죄송합니다.
동참하여 적극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고 물러나 초야에 묻히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분들과 함께 하는 뒤풀이 주석酒席에서 느끼는 양가감정은 더 심합니다.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짓인지 다양성의 조화 혹은 균형 있는 처세인지,
박쥐같은 회색분자인지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인지.
제 마음에 생겨나는 이 양가감정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첫댓글 '사금파리 한조각'(린다 수 박지음) 주인공 묵이에게..(줄포에서 송도까지 도자기를 감도관에게 가져가야되는 부담감을 지닌)...너가 가려는 곳을 몸이 알지 못하게 해라. 그럼 너의 몸은 지쳐버릴거야. 하루에 언덕하나, 고개하나 넘는다고 생각하렴...라고 아저씨(이름?)께서 말씀하셨죠.
단지 주의일을 한다는 것으로 교회옆으로 이사하는 것이 이번처럼 힘들게 느껴진적은 없습니다. (전혀 기쁨이 없을만큼 문제가 자꾸 생기네요) 그러나 한가지만 생각합니다. 이사를 가야만 되는 이유! 그것만 생각하면 복잡한 마음이 단순해집니다.
모순된 것이 삶이라면 어찌해야 할까요, 선생님. 사는 것과 죽는 것이 한 몸이라면 어찌해야 할까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