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부러진 화살』의 개봉이 다가왔다. 이 영화의 개봉에 맞추어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나는 2주쯤 전에 이미 『부러진 화살 논란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로 이 영화를 다룬 바가 있다. 하지만 그 이후 추가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른 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한번 정리를 하고자 한다. 워낙 재판과 관련된 문제가 종종 그러하듯이, 이 글의 내용이 100% 팩트인지는 나도 자신할 수 없다. 그래서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가장 사실에 가까울 것으로 보이는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하지만, 최종 판단은 역시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이 글은 자신의 판단을 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생각하기 바란다.
1. 김명호 교수는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였다. 그런데 성균관대 입학 본고사에서 잘못된 문제를 사후에 발견하여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성균관대는 김명호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2. 김명호 교수는 뉴질랜드와 미국으로 이주를 하는 등 다른 방도를 모색하다가 결국 성균관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3. 이 민사 재판의 항소심 재판부는 3인으로 구성되는 합의재판부였는데 이 재판부의 부장판사는 박홍우 판사였고 이 재판의 주심판사는 이정렬 판사였다. 부장판사가 리더의 역할이고 주심판사는 해당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로 보면 된다. 참고로 이정렬판사는 얼마전 가카새끼짬뽕 이미지를 페이스북에 올려 논란이 된 진보적 성향의 판사다.
4. 이 재판에서 재판부는 김명호 교수가 학자적으로는 훌륭하나 교육자적으로 문제가 있는 모습이 있었기에, 비록 성균관대가 김교수의 잘못 지적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재임용 탈락을 시켰다는 의심은 들지만 그렇다고 재임용 탈락 자체가 확실히 부당하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와 관련해 이정렬 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5. 최종 판결 당시 김교수는 재판장에 나오지 않았고, 박홍우 판사의 집으로 석궁을 들고 찾아가 문제의 석궁 사건이 발생한다.
6. 석궁 재판은 당연히 민사 재판이 아니라 형사 재판이었고, 이 재판에 이정렬 판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7. 석궁 재판에서 김교수가 박홍우 판사를 겨누고 석궁을 발사했느냐의 여부, 박홍우 판사가 실제로 큰 상해를 입었느냐의 여부 등 몇 가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박홍우 판사가 입었던 내의와 자켓에는 피가 묻었는데 와이셔츠에는 혈흔이 없었고, 혈흔에 대한 감정도 재판부가 거부했다는 등의 논란이 있다. (자켓 부분은 제가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8. 이 밖에도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부러져 있었다고 했다가 다시 멀쩡한 화살이 등장하고, 이런 이상한 재판 과정에서 피고 김명호 교수 측의 이의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주장이 있다.
9. 김명호 교수 측은 지금도 이 형사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 이 일련의 사건이 『부러진 화살』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가 됐다. 이 영화를 본 한겨레 신문 허재연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 해당 형사 재판의 재판 기록과 일치한다며,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영화화로 봐줄 것을 당부했다.
이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기에 김명호 교수가 티끌만한 잘못도 없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위에 링크한 이정렬 판사의 글에서도 김교수가 자신의 억울함을 소명할만한 기회를 포기한 적이 있고, 일종의 피해의식이나 아집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김교수가 민사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지도 않은 채 박홍우 판사를 찾아갔을 가능성도 이정렬 판사에 의해 재기되었고, 이것 역시 그가 지나치게 성급했을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3자의 추측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것만 가지고 그를 욕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이런 입장에 처하게 되면 경솔하게 행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교수가 석궁을 들고 박홍우 판사를 찾아갔다는 사실은 100% 팩트로 보인다. 그가 부러진 화살을 갖고 있었건 멀쩡한 화살을 갖고 있었건, 그는 무기를 소지하고 판사를 찾아갔으며, 그가 위협을 했건 실제 발사를 했건 그가 잘못을 한 건 사실이다. 또한, 자기가 쏘려고 했던게 아니라 몸싸움 과정에서 발사됐다는 주장도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게 고의적이건 실수건간에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게된 것도 결국 김교수의 책임이다.
하지만, 문제는 김교수가 어떤 죄를 저질렀느냐에 따라 죄질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그에게 내려질 판결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판사에게 위해를 가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죄보다 더 무거운 판결을 받았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 형사재판을 담당한 재판부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석궁 재판의 핵심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단순히 영화적 감동이나 메시지에 너무 몰입하거나, 혹은 언론 플레이나 타인의 주장에 휩쓸려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이 일련의 사건에서 이정렬 판사나 박홍우 판사, 김명호 교수의 개인적 문제 및 재임용 민사 재판은 본질이 아니다. 이 일련의 사건의 본질은 석궁 사건 형사 재판이다. 그리고, 이 형사 재판에서 사법부의 제 식구 감싸기가 실제로 존재했느냐, 그래서 김명호 교수가 자신의 죄질보다 무거운 벌을 받았느냐, 그리고 그가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할 수 있었고 재판부가 그가 억울하지 않도록 충분히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했느냐가 바로 문제의 본질이다.
이 글이 이 사건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