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요즘 산에 가보셨능게라? 고사리가 겁나게 많이 올라옵디다요. 사모님 데불고 싸게싸게 가보시씨요, 외지 사람덜이 다 뜯어가불기 전에."
황 권사님의 산책길에 동행했다가 귀가 길에 허 집사님이 교회 앞을 지나가시면서 한 마디 던지셨다. 황 권사님은 6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가 반신 마비가 되신 분이시고, 허 집사님은 그런 권사님의 아내가 되신다. 두 분 다 교회의 보배 같은 분들이다. 권사님 내외는 화창한 날이면 으레 운동 삼아 해안도로를 따라 큰끝까지 산책을 다녀오시는데 말이 산책이지 그야말로 오체투지나 다름없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왕복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산책길을 다섯 시간 정도를 쓰면서 다녀오신다. 사지 불편한 권사님의 보폭에 맞추어야 하니 사지 멀쩡한 집사님은 산책길이 여간 심신한 게 아니셨을 거다. 때로는 고사리도 뜯고, 때로는 원추리도 뜯고, 때로는 커다란 동백나무 밑에 움튼 동백묘목도 캐다가 집 뜰에 심는 낙으로 권사님의 산책길을 수발하신다. 권사님을 따라 걸으며 길가에 올라온 고사리만 뜯으셨을 테고, 산속은 외지사람들이 헤집고 다녔을 테니, 집사님은 애가 타셨을 것이다. 고추모종을 심기 위해 한창 밭을 일구고 있는 나를 향해 저리도 성화이신 것을 보면.
"집사님, 어디 봐요. 얼마나 뜯으셨는지."
열어 보이는 륙색 속에는 굵고 실한 고사리가 제법 두툼하게 갈무리되어 있었다. 일부 꺼내놓으시려는 것을 겨우겨우 뜯어 말렸다.
"밭 일구는 일도 거의 끝나가니 저희 식구도 산나물 뜯으러 갈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마시고 그냥 가져가세요. 집사님의 마음만 고맙게 받을 게요."
밭일을 서둘러 끝내고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녹색 사원에 들었다. 사원은 그야말로 씨앗창고였다. 파릇한 새순들이 불쑥불쑥 말끔한 얼굴을 내밀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사원은 초록의 분만실로 변해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녹색 울음이 우렁찼다. 고사리를 많이 꺾지 못해도 좋았다. 그저 녹음에 안겨 흠뻑 녹색 은총의 세례를 받는 것으로도 족했다. 아내는 분취를 뜯느라 열을 올렸고, 두 아이는 파릇한 것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름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어댔다. 나는 아는 만큼 일러주었다. "요건 은난초, 저건 금난초, 저쪽 것은 나리꽃, 이쪽 것은 바위취, 이것은 맥문동, 저것은 그늘에서 잘 자라는 풀솜대, 여기 모데미풀도 있구나, 세신이라 불리는 섬족도리풀도 있고…" 그러면 아이들의 눈과 입은 우리 꽃의 특징을 살피고 이름을 외우느라 분주했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우리 꽃의 이름을 알려주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데 갑자기 어머니와 함께 산나물을 뜯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석탄 캐는 광부이셨다. 지금은 시(市)라고 불리지만 당시에는 읍이라 불렸던 태백의 철암이라는 곳에 탄광이 있었다. 어렸을 때 듣기로 그곳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찾는다는 인생 막장이라고 했다. 정선의 사북 탄광촌으로 이사하기까지 우리 가족은 그곳의 한 골짜기(밤장골이라 불렸다)에서 4년을, 그러니까 내 나이 열한 살 때까지 살았다. 인생 막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살았지만 우리 다섯 식구는 정말 소박하고 단란한 행복을 누렸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계셨고, 내 아래로 어여쁜 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북으로 이사하고 한 해가 지나서 어머니가 지병으로 돌아가셨으니, 그 이후의 삶은 내 어린 나이로는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다. 아버지는 줄 끊어진 연처럼 비틀거리셨고, 삼남매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어머니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다가왔다. 당시 상영된 영화 [엄마 없는 하늘 아래]를 보면서는 한동안 눈물샘이 마를 줄 몰랐다. 나를 껴안아주던 어머니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철암에서의 행복했던 시절만은 내 마음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다. 봄이면 집 앞에서는 또르르 계곡물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에 이 산 저 산에서 뻐꾸기가 맞대꾸하고, 밤이면 소쩍새들 깊이 울어 어둠은 더욱 짙었다. 그러면 밤하늘에는 땅에 활기를 불어넣어 무성한 나뭇잎과 열매를 몰고 오는 처녀좌와 그 옆의 천칭좌가 오롯이 반짝였다. 처녀좌의 손짓에 화답이라도 하려는 듯, 산야의 초목들은 푸른 때때옷을 부지런히 지어 입었다. 어머니는 대지가 푸른 옷을 차려 입기 시작하면 으레 나를 데리고 초록빛 깊은 산으로 자주 들어가셨다. 산나물을 뜯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어머니와 산행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어머니에게서 산에 사는 식구들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사근사근하게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잎사귀가 이렇게 생긴 것이 참나물이란다. 자세히 보아라, 잎의 가장자리가 톱니 같지? 참나물은 이렇게 높은 산에서만 자란단다. 나물 가운데 으뜸이라고 해서 참나물이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아하, 그렇구나! 엄마, 이건 또 뭐예요?"
"으응, 그건 고비라는 거다."
"생김새는 고사리 같은데 솜털이 많이 났어요.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럼, 네가 들고 있는 것은 참고비라는 거야."
"엄마, 저기 가시 달린 나무에 파릇한 것은 뭐예요?"
"그건 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두릅이란다."
"엄마, 이것은요?"
"그건 수리취라는 건데 네가 좋아하는 떡을 해먹을 수 있어서 떡취라고도 해. 잎사귀 뒷면을 보면, 요렇게 흰색이란다."
"엄마 말씀을 듣고 보니 이 산이야말로 보물창고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 맞아, 보물창고지. 이 즈음의 산속에는 온갖 먹을거리들이 숨어 있지. 엄마 어릴 적에는 네 외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산나물을 뜯어다 자주 죽을 쑤어 먹었단다. 쌀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지.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곰취라고 하는데 죽을 쑤어먹으면 맛이 참 좋단다. 엄마는 곰취 죽을 참 많이 먹고 자랐단다. 그렇게 봄철의 산은 허기진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식량창고 역할을 톡톡히 했고, 지금도 그러하단다. 그러니 산을 소중히 여기고, 그 속에 깃들여 사는 식구들에게 고마워해야겠지?"
"네, 그럴게요.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그 많은 나물의 이름을 익히셨어요?"
"네 외할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익혔지. 외할머니는 그 어머니에게서 익히고. 너도 이다음에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산으로 들어가거라. 아이들에게 나무, 야생화, 산나물, 산짐승을 눈으로 직접 보게 하고, 손으로 만져보게 하면서 이름을 일러주어야 해. 그들의 고마움을 일깨워주어야 해. 네가 내 젖을 빨았듯이, 우리 인간은 너나할 것 없이 자연의 젖을 빠는 아이들이기 때문이야."
그렇게 다래순, 음나무순, 삽추나물, 더덕, 미역취, 꿩의다리, 원추리, 밀나물, 비비추, 단풍취, 분취, 잔대 등 실물을 일일이 지목하며 나물 이름을 일러주신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나는 수많은 식물의 이름과 우리가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는 태초부터 전수된 교육방법, 곧 하느님의 교육방법으로 나를 가르치신 것 같다. 문명세계가 제시한 교육방법은 딱딱한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아이들에게 실물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동식물의 이름을 따라 부르게 하는 것이었지만, 태초에 하느님은 아담에게 먼저 동물과 식물들을 보여주신 다음에 그들의 이름을 지어 부르게 하셨다. 요즘의 아이들은 교과서나 도감에 실린 그림을 보고 동식물의 이름을 익히지만, 아담은 우주의 식구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직접 듣고, 코로 맡아보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구체적으로 이름을 익혔다. 하느님이 태초의 인류에게 허락하신 직업은 에덴을 관리하는 동산지기였다. 요즘 말로 하면 정원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산의 동식물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이름을 불러주는 정원사의 길! 그것은 하느님이 손짓하여 부르시는 길이며, 하느님이 공들여 차려내신 우주적 성찬에 손님의 자격으로 참여한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원초적인 길이다. 그것은 자신을 자연에 비추어 보고, 자연의 리듬을 익히며,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모든 생명과 조화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그 길을 걸으셨던 것이고, 내게도 그 길을 일러주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오래 전에 가셨고, 그때의 아이는 자라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이렇게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길을 일러주고 있지만, 나는 그 시절이 못내 그립다. 봄철 갈매빛깔 창창한 산속을 찾으면 찾을수록 북미 인디언 같았던 어머니의 숨결, 봄날의 대지처럼 따스한 어머니의 온기, 산처럼 깊고 아늑한 어머니의 품이 더더욱 그립다.

수목원으로 가는 발걸음이 내내 분주한 한 달이었다. 나무 심기에 더없이 좋은 한 달이었던 까닭이다. 흙하고 노는 것이 재미지고 나무하고 노는 것이 마냥 신나서 글 한 줄 제대로 읽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은 죄스러움을 몰랐고, 영혼은 시들 줄 몰랐다. 황토 위에 씌어진 갈매빛깔 문장을 손으로 더듬어 읽으며 마음과 영혼을 시푸르게 하는 것만큼 좋은 독서가 있을까? 하루가 다르게 살아 움직이는 문장들을 읽는 것만큼 바람직한 독서가 있을까? 그런 독서에 빠져 자기의 마음과 영혼을 살필 수만 있다면, 출판사나 인쇄소에서 백지 위에 빼곡히 찍어낸 시커먼 문장들은 더 이상 읽지 않아도 좋으리. 그런 독서에 빠져 산다면, 몸도 마음도 온통 갈매빛깔로 물들리라. 입에서는 시금한 풀냄새, 어찔한 꽃향기, 싱그러운 솔잎 냄새, 깊고 아득한 흙냄새, 무엇보다도 그 문장들의 원작자이신 하느님의 생생한 체취가 무시로 풍겨 나오리라.
지난해 가꾼 화단 구석구석이 봄단장을 하느라 야단이다. 화단가에 줄지어 심어놓은 로즈마리들이 작은 숲을 이룬 채 바람 따라 일렁이며 깊고 서늘한 냄새를 풍기고, 털머위는 화창한 날이든 궂은 날이든 한결같이 우산을 여기저기 펼쳐든다. 매발톱이 부지런히 자기의 영역을 넓히고, 노루오줌, 노루귀, 금낭화, 옥잠, 원추리, 해국도 저마다 화단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몸피를 키우고 있다. 밭둑을 새로 쌓으면서 사이사이 심었던 철쭉들도 새순을 내밀며 만개할 채비를 하고 있다. 묘목으로 심었던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도 새순을 뻗어 올리며 키를 돋우고 있다. 그들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나무 한 그루 없이 쓸쓸하던 정원이 차츰차츰 풍성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바람결에 일렁이는 보리밭처럼 알 수 없는 풍요로움으로 출렁거린다. 해마다 나무를 심고 가꾸어본 사람은 알리라, 정원이든 밭이든 산이든 들녘이든 나무 심겨진 곳의 모습이 해가 다르게 풍성해짐을.
 화단에서 자라는 로즈마리
 돌산 자생식물 털머위, 국화과로 가을에 노오란 꽃을 피운다
 고목을 파서 만든 화분에 앉혀진 매발톱
 하늘매발톱
 우리 야생화 노루오줌
 돌산 자생국화 해국, 가을에 보랏빛 꽃을 피운다
 새 움이 터져나온 후박나무
 밭둑을 쌓으며 돌과 돌 사이사이에 심어 가꾼 철쭉
 돈나무(만리향)의 규칙적인 순배열
 파릇한 애기채송화
 허브식물 애플민트와 함께
지난해부터 시작된 녹색교회의 꿈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해 올 봄에도 어김없이 묘목을 제법 사다 심었다. 날씨도 초봄과 초여름을 오가며 나무 심는 일을 도왔고, 간간이 비도 흠뻑 내려주었다. 지난해, 교우 몇 분이 부쳐 드시는 바람에 나무를 심지 못했던 예배당 주위의 100평 남짓한 밭을 일일이 삽으로 파 엎어 매실묘목과 대봉 묘목을 심었다. 서른 그루 정도 심었으니, 서너 해가 지나면 매실도 따고 대봉감도 따먹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린이도서관을 찾는 동네 아이들 차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앞에는 제법 큰 단풍나무 한 그루를, 수돗가에는 느티나무와 단풍나무, 애기사과나무를 한 그루씩 심었다. 그들 모두 그늘을 드리울 만큼은 되어서 올 여름부터는 남녘의 따가운 햇살과 열기를 어느 정도 식혀줄 것이다. 수돗가에 잇닿은 밭둑에는 겨울바람막이용으로 호피향, 금목서, 은목서를, 그들 뒤로는 황금측백나무를 촘촘히 심었다. 평소 꽃과 나무를 사랑하는 주이엽 교우가 이따금 달려와서 나무 심는 것을 도왔다. 최씨 아저씨네 밭과 경계를 이룬 텃밭 가장자리에는 지난해 후배 목사가 구해다준 녹차나무 씨앗을 빙 돌아가며 심었다. 움이 제대로 터준다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녹차나무 울타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아내와 함께 쑥도 덖고, 로즈마리순도 덖기 시작했으니, 때가 되면 녹차도 덖어볼 수 있을 것이다. 텃밭의 한 귀퉁이에는 지난해에 주워 모은 동백씨앗과 겨울에도 푸른 잎이 지지 않는 붉가시나무 열매(도토리의 일종)를 가지런히 심었다. 자그마한 양묘장이 만들어진 셈이다. 올해 싹을 틔우고 3년 정도 잘 가꾸면 빈터에 옮겨 심을 수도 있고, 교우들에게도 나눠줄 수도 있을 것이다. 붉가시나무가 더 자라면 도토리를 줍기 위해 바닷가 방풍림을 찾는 다람쥐도 이따금 찾아올 것이다. 고추모종 170주를 심고 지주도 세웠다. 쌈을 좋아하는 까닭에 상추, 피마자, 양배추 같은 쌈 거리를 심고, 아이들 따먹으라고 방울토마토도 여러 그루 심었다. 가지와 호박 모종도 군데군데 심었다. 물 주고 거름 주면서 부지런히 가꾸면 교우들과도 나누고 손님들과도 나누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고추밭 두둑 만들기, 자갈을 골라내고 거름과 뒤섞다
 고추, 가지, 토마토, 쌈거리가 심겨진 텃밭
 쌈거리
 동백모종 식재한 곳
그렇게 대지의 이야기보따리를 풍성하게 하는 즐거움, 하느님의 몸에 푸른 옷을 입히는 즐거움으로 한 달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푸릇한 것들을 어루만지는 기쁨에 피곤이라는 단어가 감히 달라붙지 못했다. 아내는 봄볕에 얼굴 그을린다고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려 했으나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허여멀건 얼굴색을 포기하고 산지 오래이다 보니 얼굴색이 사시사철 가무잡잡하다. 그러면 어떠랴? 얼굴빛깔 허여멀건 예루살렘 아가씨들아, "나 비록 가뭇하지만" 속은 맑고 아리따우니, "가뭇하다고 깔보지 말아라! 봄볕에 그을린 탓이란다."(아가 1,5-6)
숲을 꿈꾸며 쑥쑥 걸음을 내딛는 정원의 식구들을 바라보며 내 안의 정원을 생각한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미리 나무가 심어지고 씨앗이 뿌려진 정원처럼 되어 태어난다." 나는 씨앗창고인가? 나는 파릇한 것들로 채워져 있는가? 루미는 "그대에게 생명을 주는 숲이 그대 안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 숲을 찾았는가? 겸손히 묻는다. 수목원 가는 길이 내 생의 여정이지만, 아직 마음속으로 그리는 수목원에 이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목원 가는 길이 나무 심고 꽃씨를 뿌리는 길이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나무가 되고자 힘써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렇게 부지런히 나무 심고 꽃씨 뿌리고 나무를 닮아가노라면, 내 안에도 내 바깥에도 뭇 생명이 보금자리를 치는 울창한 수목원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수목원 가는 길에 장애물을 놓는 자들이 있다. 만족을 모른 채 주위의 모든 것을 게걸스레 삼켜대고 쓰레기를 양산하는 자들, 각종 정책으로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숲, 갯벌, 습지를 파괴하는 자들, 지역개발의 적임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 돈지갑의 두께에 우주와 자연의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는 자들, 골프 같은 반자연적이고 반생명적인 스포츠에 미친 철없는 자들…그들 모두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아가 2,15)들이다. 내면의 숲이 황폐화되어버린 사람들, 남마저 사막화시키려고 안달하는 사람들, 상호의존의 그물로 짜여 있는 우주에서 혼자만 살겠다고 버둥거리는 사람들, 참으로 가련한 사람들.
왜 바깥에 숲이 있는가? 우리 안에 생명의 숲이 있음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왜 나무가 있는가? 우리가 나무처럼 되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왜 녹색 문장이 저리도 고맙게 펼쳐져 있는가? 그대의 영혼이 생명의 빛깔인 녹색으로 물들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그들과 내가 남이 아님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내면이 사막화되는 가련한 신세를 면하려면 부지런히 나무 심고 꽃씨를 뿌릴 일이다. 인류역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나무 심고 꽃씨를 뿌리신 하느님의 마음을 회복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자기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과 탐욕이라는 여우, 포도원을 망가뜨리는 여우를 내쫓고, 내면의 숲을 회복하고 볼 일이다. 바깥의 숲과 내면의 숲이 다르지 않음을 굳게 붙잡을 일이다.
수목원 가는 길에서 나무들과 들꽃들이 묻는다. 그대는 정원인가, 사막인가? 그대는 하느님의 몸을 헐벗게 하는가, 아니면 푸른 옷을 입히고 있는가? 그대는 여우를 내쫓았는가, 아니면 여우의 소굴이 되고 말았는가? →김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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