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집고] 금융 당국이 사실상 대출총량제를 부활시키는 등 은행 대출을 전방위적으로 조이면서 시중은행이 직접 한도와 대상 줄이기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다음달 3일부터 전세대출 한도를 증액 범위 내로 제한한다. 임대차계약 갱신 시 전세대출은 한도를 임차보증금 증액 범위 내에서 취급한다.
하지만, 정작 대출 폭증을 불러온 주범은 정부의 정책 주택담보대출인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꾸준히 쏟아 낸 저리 대출 정책이 시장의 주택 매매 수요를 자극하면서 가계 대출이 급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땅집고] 2024년 1~7월 은행권 주담대 및 정책 대출 증가액 추이. /김서경 기자
28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올해 1∼7월 32조1000억 원 늘었다. 이 중 은행 재원으로 나간 디딤돌(매입), 버팀목(전세), 신생아 특례 등 정책 대출금은 22조3000억 원 규모다. 은행권 주담대 중 약 70%는 정책 대출이었다.
올 1월 출시된 신생아 특례대출이 대표적이다. 9억 원 이하 주택을 살 경우 최대 5억 원을 최저 1%대의 초저금리로 빌려준다. 디딤돌 대출도 부부 합산 연 소득 8500만 원 이하인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2∼3%대 금리로 빌려주는 정책 대출이다.
대출금이 대거 시장에 흘러들어도면서 부동산 매매 수요를 자극했으나, 가계부채 상황에 맞는 조치는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 당국은 지난 달 3일 가계부채 폭증을 우려해 은행권 현장점검을 예고했으나, 8일 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집값이 추세적 상승은 아니다”고 말했다.
연구원 김지민 정책 대출 소관 부처가 국토교통부(디딤돌, 버팀목 등), 금융위(보금자리론 등) 등으로 찢어져 있어 즉각 대응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
[땅집고]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아파트 전경. 송파구는 최근 30대 매수자가 많았던 지역이다. /강태민 기자
시장은 정부의 엇박자 시그널을 ‘집을 사라’는 신호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 폭이나 신규 취급액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6일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잔액이 전달보다 7조5975억원 증가한 559조7501억원이다.
이는 은행들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6년 1월 이후 월간 최대 증가폭이다. 지난 2020~2021년 0%대 초저금리 시기보다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 규모가 더 커졌다.
[땅집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24년 8월 25일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가계부채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KBS 뉴스 캡처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더 강한 대출 규제를 통해 은행권 개입을 강화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금융감독원장은 “정부는 수도권 집값 상승 등 최근 부동산 시장에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면서 “9월 이후에도 대출 증가세가 나타나면 더 강력한 규제 방안을 마련할 것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통상 정부가 은행권을 압박해 대출 금리가 올라가면 주택담보대출 증가세 완만해진다.
다만, 여전히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길 변수는 있다. 정부는 올 하반기에 이어 내년까지 두 차례의 신생아특례대출 소득기준 완화를 예고했다. 아직 구체적 일정은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4월 신생아 특례대출의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을 애초 1억3000만원에서 3분기 중 2억원으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소득 기준을 한 차례 더 완화해 2025년부터 2027년 사이 출산한 가구에 대해선 부부 합산 소득 기준을 2억5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가로 내놨다. /김서경 땅집고 기자 westseoul@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