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보다 오래 남는 것
― 문학의 길에서 만난 또 하나의 나
작가에게도 빛나는 순간이 있다. 화려한 무대에 서거나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 순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 홀로 문장을 다듬던 손끝에 작은 보람 하나가 내려앉을 때, 그 순간 작가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대구문인협회 출판기념식이 열린 행사장이다. 단상에 올라 상장을 받는다. 건네는 손과 받는 손 사이로 따뜻한 마음이 오간다. 객석에서는 박수가 이어진다. 고개를 살짝 숙이며 웃는다. 그 짧은 순간, 마음속에는 수많은 문장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의 박수보다 오래 기억되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간들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때로 자신과의 긴 싸움이다. 한 문장을 얻기 위해 밤을 지새우고,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 하나를 지우기 위해 몇 번이고 원고를 다시 펼친다. 세상에는 쉽게 쓰이는 글이 있는 듯 보이지만, 진정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은 결코 쉽게 태어나지 않는다. 삶을 통과하지 않은 문장은 아름다울 수는 있어도 깊어지기는 어렵다.
나는 종종 길 위에서 문장을 만난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에서 삶의 인내를 읽고, 오래된 나무의 주름에서 세월의 표정을 발견한다. 사람들의 뒷모습에서도 이야기를 건져 올린다. 그렇게 모은 작은 풍경들이 내 글의 뿌리가 된다. 작가는 특별한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세상에서 남들이 지나치는 것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작가에게 포스가 있다고 말한다. 문득 웃음이 난다. 포스란 무엇일까. 근사한 옷차림이나 당당한 자세에서 풍기는 분위기일까. 나는 그것이 살아온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흔들리면서도 자신의 길을 놓지 않는 마음, 세월 앞에서도 꿈을 접지 않는 자세가 사람을 빛나게 한다.
회색 모자를 쓰고 행사장을 나선다. 모자 아래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어깨를 스친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 낯설다. 세월은 얼굴에 흔적을 남겼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젊은 날의 나는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고, 지금의 나는 좋은 문장 하나를 더 남기기를 꿈꾼다. 꿈의 모양은 달라졌어도 글을 향한 마음은 그대로다.
상장은 언젠가 서랍 속에 들어갈 것이다. 행사장의 박수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오늘 느낀 마음만은 오래 간직하고 싶다. 그것은 잘했다는 칭찬보다 앞으로도 성실하게 쓰라는 조용한 당부에 가깝다.
작가의 품격은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로 완성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글을 발표했느냐보다 한 편의 글에 얼마나 진실한 마음을 담았느냐가 중요하다.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사람의 마음을 오래 바라볼 수 없고, 아픔을 모르고서는 위로의 문장을 쉽게 쓸 수 없다. 행사장을 나서자 가을빛이 발끝에 내려앉는다. 문득 새로운 글을 쓰고 싶어진다. 오늘 받은 상장보다 더 오래 남을 문장 하나, 누군가의 외로운 저녁에 작은 등불이 되어 줄 글 한 편을.
나는 다시 길 위에 선다. 아직 쓰지 못한 이야기가 많다. 가야 할 길도 남아 있다. 어쩌면 작가의 진정한 포스는 빛나는 무대 위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책상 앞에서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박수는 멈추어도 문장은 계속된다. 오늘도 나는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다. 화려한 이름보다 오래 남을 것은 결국 내가 살아낸 삶의 문장들일 테니. 작가는 상장을 받는 순간보다 다시 펜을 드는 순간 더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