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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인간 by 캐슬린 매콜리프 (tistory.com)
2017. 7. 10
이와우
Kathleen McAuliffe
5장. 위험한 관계, 위험한 거래
말기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양성 환자들은 엄청난 성용에 휩싸인다고 한다. 이것을 입증하려면 누구도 감히 꿈꾸지 않았던 것을 해보는 수밖에 없다. 바로 건장한 사람에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것이다. 강력한 증거를 얻으려면 바이러스에 노출시키기 전과 후의 행동을 비교할 수밖에 없다. 대신에 활용한 것이 감기바이러스다. 독감 바이러스는 사람이 바이러스에 노출되고 2~3일 후에 전염력이 가장 강하다. 이때는 독감증세가 나타나기 전이다. 실제로 바이러스 배출은 이 좁은 시간대에 절정을 이룬다. 바꿔 말하면 당신이 파티에 놀러 갔다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따갑고 콧물이 줄줄 흐른다면, 전날 밤 포옹하고 악수를 했던 사람이 감기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가능성이 크다. 일단 기침을 하고 코를 풀기 시작하면 당신은 아마도 침대에 꼼작 않고 틀어박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병원체는 새로운 사람을 접할 기회가 줄어든다. 그때쯤이면 당신의 면역계도 최대로 가동되고 있을 때라 바이러스의 야망도 한풀 꺾여 있게 된다.
39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빙엄턴캠퍼스 진료소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받기 전후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추적해 봤다. 실험참가자들은 실험의 목적을 아무도 몰랐다. 참가자들의 행동변화는 놀라웠다. 변화는 너무도 확연했다. 바이러스의 감염성이 최대한 높아지는 시기인 예방접종 후 첫 3일동안, 실험참가자들은 접종을 받기 전보다 2배나 많은 사람을 만났다. 아주 단순하고 제한된 사회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술집이나 파티를 찾고,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실험을 하려면 가짜 백신을 맞은 대조군도 실험에 포함시켜야 하나 자금문제로 실험은 추가로 진행되지 못했다. 예방접종을 한 사람들이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린 것은, 백신을 맞았으니 독감에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한심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성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성욕을 부추긴다는 개념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지만 이런 의심을 하는 사람은 많다. 실험적인 증거는 없지만 천골신경절이 단순포진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경우 그 바이러스가 골반 영역의 신경 말단을 자극해서 성적 활동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그럼 또 다른 숙주로 옮겨갈 가능성도 크니까 말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전통적으로 성병이라 여겨지지 않는 감염원인 광견병 바이러스도 갑작스럽게 성욕을 촉발시킬 수 있다. 사람이 광견병에 걸렸을 때 성욕, 성적 흥분, 성적 쾌락이 갑자기 상승하는 것은 전형적인 증상은 아니지만 기록으로 충분히 입증된 증상이다. 지난 세기에 프랑스 사람들은 여성에게서 나타나는 이 통제 불가능한 욕망을 사람의 집착과 색광이라 불렀다. 남성의 경우는 발기와 사정이 몇 시간씩 이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오르가즘이 동반되기도 했다. 이런 증상들이 어찌나 극적인지 고대에도 이것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2세기의 고대 그리스의 의사 갈레노스는 광견병의 고통에 휩싸인 짐꾼이 사흘에 걸쳐 몇 번이나 불수의적인 사정을 했다고 기록했다. 물론 개 역시 이것에 걸렸을 때 지속적인 발기가 일어난다. 이런 개는 길을 가다 아무것에나 닥치는 대로 교미를 하려고 달려들기도 한다. 보건의료 체계가 잘 갖춰져 있는 사회에 사는 축복받은 사람들은 광견병을 마치 옛날 옛적 이야기로 취급할 때가 많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빈곤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광견병이 유행병 수준으로 널리 퍼져 있다. 광견병을 예방하기 위해 애쓴 노력은 1885년에 최초의 광견병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광견병에 걸린 개의 송곳니에서 타액을 채취했던 루이 파스퇴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전까지만 해도 이 두려운 감염을 치료할 방법은 동물에게 물린 자리를 뜨거운 것으로 지지거나, 물린 발과 손, 팔다리 등을 잘라내는 것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바이러스는 일단 몸에 들어오면 혈류로 침투하는 전략을 이용하는데, 광견병 바이러스는 이와 달리 뚫린 피부를 통해 들어온 후 신경섬유를 타고 하루에 몇 cm 정도의 느린 속도로 뇌까지 기어 올라간다. 뇌까지 도달하는 데 보통 2~4주가 걸린다. 하지만 일부 경우에는 잠복기가 몇 달, 심지어 1년 이상 길게 이어져 과학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감염된 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은 독감 증세와 비슷한 불쾌감이다. 이것은 감염이 뇌에 도달했다는 신호다. 바이러스는 곧 둘레계통에 침입한다. 둘레계통은 공격성, 성욕, 배고픔, 갈증 등의 기본적인 욕구를 통제하는 신경중추다. 피해자가 엄청난 성적 흥분을 경험하는 것은 이때다. 바이러스가 미친 듯이 복제를 하면서 신경회로의 세포들이 변덕스럽게 신경흥분을 하기 때문에 빛, 잡음, 냄새, 혹은 산들바람 같은 미약한 촉각만으로도 심각한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바이러스는 인후부의 근육들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고통스러워 비명을 지를 때 개가 짖는 것 같은 쉰 목소리가 난다. 침을 삼키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입안 가득 고여 있는 거품 낀 끈적한 침이 흘러나온다. 여기에는 감염원이 가득 들어 있다. 이 시점에서 감염자는 물공포증에 사로잡힌다. 바이러스는 목구멍을 엄청나게 고통스럽게 수축시키기 때문에 잔에 들어 있는 물이나 대야에서 첨벙거리는 물만 봐도 구역질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질병이 소위 맹렬기로 진입하면 안면근육에 불수의적인 경련이 일어나 감염자의 얼굴은 위협적인 표정으로 변하기도 한다.
광견병이 뱀파이어 이야기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뱀파이어에 대한 여러 전설, 특히 그중에서도 18세기 초반에 동유럽에서 나온 버전에는 뱀파이어들이 종종 개나 늑대의 형태를 하고 밤에 나타나서 이웃 사람들을 해치는 사람으로 등장했다. 가끔은 죽은 사람으로 나올 때도 있다. 이들은 사람의 살을 뜯어 먹고, 피를 빨아 먹고, 강간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뱀파이어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그런 포악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교수형에 처하거나 말뚝에 묶어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1897년 브램 스토커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 탄생한 드라큘라 백작은 이런 고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은 기생생물이 감연된 사람의 지능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이 기생생물 역시 우리가 아끼는 애완동물을 통해 우리에게 전파될 수도 있다.
이 기생생물의 이름은 톡소카라toxocara다. 개나 고양이, 혹은 돌다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톡소플라스마의 쌍둥이 악마로 여겨질 수 있다. 톡소카라가 사람에게 정신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강력한 단서는 바로 이 기생충의 유충이 인간의 뇌에 둥지를 틀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개회충의 변이에서는 이런 사실이 입증됐다. 북미와 유럽 사람 중 약 10~30% 정도가 이 기생충의 유충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가난한 국가에서는 감염률이 무려 40%에 이른다. 그러나 톡소카라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발표한 방치된 기생충 질환 목록의 5위 안에 든다. 심각한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낮아 감시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톡소카라의 알은 사람의 몸속에서 유충으로 부화하면 성충으로 자랄 수 없다. 이것은 개나 고양이 숙주의 몸에 들어가야만 성충으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생충의 발달 과정은 가장 이동성이 높은 유충 단계에서 억제된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이것이 좀 더 기만적인 방식으로 파괴 작용을 일으키고 있을지 모른다는 단서가 의학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갱충 검사에 양성반응이 나온 아동들은 학업성취 저하, 과잉활동, 주의산만 등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왔다. 프랑스에서 진행된 역학조사에서는 감염이 치매 위험 증가로 이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2년 발표된한 연구에서 이 헷갈리는 변수들을 엄격히 통제했는데, 이 논문의 저자들은 만6세에서 17세에 이르기까지 약 4000명에 가까운 아동과 청소년들로 미국의 대표 표본을 구성해 일련의 심리검사를 이용해봤다. 실험참가자 중 대략 절반 정도가 기생충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왔다. 대조군과 비교해봤더니 감염 아동들은 수학능력, 독해, 구도 숫자기억, 공간 시각 추리 등 모든 항목의 측정치에서 상당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연구결과는 연구자들이 사회경제적 지위, 교육 수준, 인종, 성별, 그리고 가장 중요한 혈중 납 농도(납은 중추신경계에 독성을 띠기 때문에 아동의 학업성취도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등을 모두 통제한 상황에서도 유효함이 밝혀져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연구는 민족별로 톡소카라의 피해가 현저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도 밝혀냈다. 멕시코계 미국인의 13%, 백인의 11%가 감염된 것에 반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23%나 감염돼 있었다. 이것은 사회적 약자에 해당하는 소수집단이 학교에서 낮은 성적을 받는 이유가 어쩌면 빈약한 영양이나 낮은 교육 수준 같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인 때문만이 아니라 머릿속 기생충 때문일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인간을 먹이로 삼는 기생생물의 숫자는 1400종류가 넘는다. 이 수치도 우리가 알고 있는 기생생물만 센 것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수천 종의 기생생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내용을 너무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미 수많은 기생생물 조작자들이 우리 몸속에 들어와 살고 있고, 이 조작자들은 우리를 아프게 만들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암시하는 연구결과가 빠른 속도로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생 생물 조작자들은 공생자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하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살아남아야만 이들 역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6장. 내 몸속의 또 다른 뇌, 장
과학자들은 장내세균이 만드는 향정신성 화합물 중 일부는 장신경계에 의해 감지된다고 믿는다. 장신경계는 소화관 전체에 걸쳐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두꺼운 신경세포층이다. 그래서 제2의 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신경계는 미주신경을 통해 위층의 커다란 뇌와 연결돼 있다. 미주신경은 장내세균이 자기 목소리를 뇌에 전달하는 주요한 통로로 작용한다. 실제로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추정했던 대로, 이 신경로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의 90%는 뇌에서 내장으로 내려보내는 정보가 아니라 내장에서 뇌로 올려 보내는 정보였다. 음식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장내세균은 신경활성 속성을 가진 대사물로 만들어낸다. 이 대사물은 위에서 말한 신경 경로를 자극할 수도 있고, 혈류를 타고 뇌로 이동할 수도 있다. 장내세균은 면역계와 교전을 벌여 우리의 기분과 활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특정 장내세균의 양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고, 면역매개반응인 염증의 생물지표가 높아져 있을 가능성도 크다.
소화관 안에서는 분명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장내미생물군은 면역세포 및 제2의 뇌와 함께 결합해서 복잡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 각자의 배속에 열대우림이 자라고 있는 셈이다. 어떤 장내세균이 또 다른 장내세균과 함꼐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내는 일은 어느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다. 여기에는 표준의 조작 모형을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물의 행동이 장내미생물군의 구성에 따라서 현저하게 변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무균 흰쥐는 장내미생물이 존재하지 않도록 무균 환경에서 특별히 키운 흰쥐를 말한다. 장내미생생물이 온전한 건강한 흰쥐는 행동이 재빠르고 학습도 곧잘 한다. 하지만 무균 흰쥐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이 전혀 발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 쥐들은 이상할 정도로 겁이 없다. 정상적인 미생물군을 가진 쥐라면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아는 장소에도 무균 흰쥐는 겁 없이 찾아간다.
8장. 치유 본능을 찾아서
질병세균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생명체들도 치유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을 가지고 있다. 깨끗한 위생, 예방 접종, 치료, 이런 것들은 현대 의료의 주춧돌이다. 하지만 초기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거의 모든 종류의 동물이 이런 습관을 지니고 있다. 사실 이렇게 진화된 방어기제가 없었더라면 면역계는 곧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런 현상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널리 잘못 해석되고 있는 사례가 바로 과학자들이 말하는 질병 행동이다. 병에 걸리면 우리는 열이 오르고, 식욕을 잃고,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이런 증상들은 질병원이 당신을 약화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이것은 뇌가 침입자에 대항하기 위해 면역계와 힘을 합쳐 다방면의 군사작전을 개시하고 있다는 신호다. 감염생물은 보통 아주 좁은 온도 범위에서만 살 수 있다. 따라서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병원체를 삶아 죽이려는 행동이다. 이것은 아주 기발한 방어 전술이기는 하지만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이 흠이다. 체온을 섭씨 1도만 올리려고 해도 평균 신장의 성인이 대략 40km를 걷는 데 소비되는 것과 맞먹는 열량이 요구된다. 이런 막대한 에너지를 전장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뇌는 재빨리 지시를 내보내기 시작한다.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마라, 여자한테 한눈팔지 마!, 쓸데없이 배를 채워서 소중한 에너지를 소화에 쓰게 하지마! 하던 일 다 내버려두고 빨리 침대로 쓰러지라고! 그리하여 당신은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른 채 잠이 들게 된다.
세균을 죽이는데 체열이 너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체온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동물들, 예를 들면 메뚜기, 새끼토끼, 그리고 도마뱀 같은 냉혈동물 등은 병원체를 죽일 다른 대안을 찾아냈다. 바로 일광욕이다. 건강한 설치류에게 사이토카인이라는 면역성분만 주사하면 팔팔하게 기운이 넘치던 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쳇바퀴 굴리는 일에도 흥미를 잃고 만다. 체온은 치솟고, 고개는 떨궈진다. 사실은 건강한 상태인데도 아픈 것처럼 행동하고 느끼는 것이다.
구토는 해로운 미생물을 제거하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예방조치이기도 하다. 공감구토는 누군가가 구토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구토를 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모방 행동이 진화한 이유는 아마도 식중독에서 우리르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