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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이란-이스라엘 관계의 역사적 배경
이란과 유대인 공동체 사이의 역사는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키루스(Cyrus) 2세가 당시 바빌론 유수(Babylonian Exile)를 겪고 있던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유데아(Judea) 지방으로 돌려보내는 칙령을 내리고 예루살렘에 성전산(Temple Mount)이라는 의미의 하르 하바이트(Har HaBayit) 신전을 건설해 준 일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슬림들은 이 신전을 하람 알샤리프(Haram al-Sharif)로 호칭하며, 여기에 위치한 알아크사(Al-Aqsa)는 모스크 자체는 물론 돔형 건축물을 포함한 부지 전체를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쓰인다.
이로부터 긴 시간에 걸쳐 성전산과 이른바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서부 성벽은 주요 종교순례지로 자리매김했다. 1948년에 국가의 외양을 갖춘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전까지 요르단의 영토이던 동예루살렘과 구시가지를 점령했는데, 동예루살렘은 그대로 이스라엘에 병합되었지만 신전 부지는 여전히 요르단의 하심 왕가(Hashemite Dynasty)가 주도하는 와크프(Waqf, 이슬람계 신탁기관)의 관리 아래 남아있다. 그리고 이 지역은 이후 분쟁 당사자 간 갈등의 원인이 된다.
밸푸어 선언(Balfour Declaration)
1917년, 아서 밸푸어(Arthur Balfour) 당시 영국 외무장관은 영국 내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인 월터 로스차일드(Walter Rothschild) 경에게 보낸 편지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를 수립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영국 정부의 입장을 전했다1). 영국은 1차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령이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관할권을 획득했으며, 1937년 필 위원회(Peel Commission)는 해당 영토를 아랍국가와 유대국가로 각각 분리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영국은 이 문제를 국제연합(UN)에 회부했고, 그 결과 팔레스타인을 2개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에는 특수 국제관리기구를 신설하는 내용의 유엔총회 결의 181호(2차)2)가 통과되었다. 그 결과 유대 국가는 유대인 82%로 구성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의 56%를 차지하게 되고,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이 영구 정착을 위해 신생국으로 이주해 왔다. 하지만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분할하는 내용에 반발해 해당 결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오랜 시간 이어진 유대인-팔레스타인인 사이의 분쟁과 적대감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비화했다. 이 문제에는 역내 당사국들은 물론 세계의 여러 강국들도 연결되어 있기에,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지역은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위험성이 높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영토 현황
자료: https://amnesty.or.kr/9641/
민족분쟁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현대 국가간 첨예한 대립을 일으키는 대표적 요소인 영토·국경 분쟁은 물론, 무역·통상 분쟁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양국 관계가 이처럼 악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민족적 측면에서 이란은 비유대계 아리아인(Aryan)이 주류를 이루어 고대시대부터 문명을 이룩한 국가이다. 이슬람의 전파 이후로 이란은 주변 아랍인들과의 민족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들보다도 더욱 진정한 이슬람적 이상에 가깝다는 점을 증명하고자 했는데, 이 과정에서 종교 발상지를 차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현재 이란은 쿠란에서 기원한 무민(Moomin), 즉 청교도적 무슬림을 이상으로 삼고, 이를 따르는 신도들이 유대계 시온주의자(Zionist)들을 몰아내 알아크사 모스크를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를 수복해야 한다고 본다. 이란 위정자들의 시각에서 아랍계 이슬람 국가들은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타협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를 기회로 삼아 이란이 예루살렘 수복이라는 종교적 사명 완수를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수니파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권에서 이란이 시아파 맹주로서의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점도 일견 집착으로도 보이는 이란의 이러한 신념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3).
이란의 대리단체 후원
20년간 이란의 최고 지도자로 군림했던 루홀라 호메이니(Ruhollah Khomeini, 1900~1989)의 대외관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그리고 여타 역내국과의 관계 등 이란의 대외정책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아 지금도 미수교 상태이며,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팔레스타인계 정치운동과 무장단체를 적극 지원하기도 한다. 이란은 당사자 양측의 합의로 탄생한 오슬로 협정(Oslo Accords) 또한 부정하는 등 매우 강경한 반(反)이스라엘 기조 및 선전을 공개적으로 내세웠다.
고도의 공격성과 초강경 성향을 보이는 여러 국가들은 민족·종교 갈등이 낳은 극단분자들을 대외공작원으로 모집하면서도, 테러 조장국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이들을 별도의 비국가단체로 편입해 관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란도 이러한 방식으로 중동 내 분쟁의 막후에서 핵심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란이 후원하는 대리 단체도 여럿이 존재한다. 먼저 레바논에서 활동하는 시아파 계열 군사·정치 단체인 헤즈볼라(Hezbollah)는 1980년대부터 이란의 지원을 받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깊이 연계되어 있고,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기조 또한 공유한다. 이외에 예멘에서 내전을 일으킨 주체로 안사알라(Ansar Allah) 운동이라고도 알려진 후티(Houthi)족, 그리고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 영토 내에서 활동하는 무장단체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PIJ)도 이란이 후원하는 대리단체의 사례이다.
하마스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및 서안지구 일부를 활동 영역으로 하는 무장단체 하마스는 2023년 10월 7일에 가자지구 경계선을 넘어 이스라엘 영토 기습을 주도했고, 이는 곧 이스라엘군의 전면 반격으로 이어졌다. 1987년에 일어난 팔레스타인 최초의 인티파다(intifada, 혁명)를 계기로 탄생한 하마스는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hood) 팔레스타인 지부에 뿌리를 두며, 팔레스타인 내에서 정치·사회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하마스는 헌장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땅에 이슬람계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한다는 목표를 세워 두었고,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이 맺은 협정을 모두 부정한다. 하마스의 산하에는 1990년대부터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 영토 모두에서 공격을 자행한 이즈 알딘 알카삼(Izz al-Din al-Qassam) 여단이라는 군사조직도 존재한다. 이 여단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포격, 소화기 공격, 급조폭발물 설치, 로켓 공격 등을 수행해왔다.
하마스는 2006년에 입법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기존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통제하던 세속주의적 파타(Fatah)당 대신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을 주도하고자 했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한 폭력적 저항을 배제하지 않고 있으며, 2008년 초반에는 1명의 사망자를 낳은 자살폭탄테러, 이외 민간인 부상자를 발생시킨 다수의 로켓 및 박격포 공격을 자행했다. 이에 미국은 하마스를 해외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하마스가 2008년 6월 이스라엘 정부와 6개월간의 협정을 체결한 직후에는 로켓 공격의 빈도가 상당히 줄어들었으나, 이후 하마스가 공격을 재개하자 이스라엘군도 2008년 12월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보유했던 가자지구 내 인프라 다수를 파괴했고, 2009년 1월 18일을 기해 일방적 정전을 선언했다.
이란과 하마스의 연계
1991년에 상술한 이즈 알딘 알카삼 여단이 창설되고 2006년에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통제권을 쥔 이후 하마스는 이스라엘 및 여타 주체를 대상으로 피로 점철된 투쟁을 전개해왔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멸망시키고 그 영토 전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 이스라엘의 군사적 대응을 촉발했고, 지역의 통제권을 사이에 두고 지금까지도 양측의 끝없는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각국도 자신들의 국익 및 관점에 따라 분쟁에 개입하면서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특히 10월 7일에 하마스가 자행한 이스라엘 공격은 이란이 배후에서 관여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란은 공식적으로는 해당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최고 종교지도자 알리 하메네이(Ali Khamenei)는 TV 연설을 통해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 언론사 복스(Vox)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이란이 하마스에 물자, 훈련, 자금 등을 지원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고4), 시리아의 파테미윤(Fatemiyoun) 여단과 이라크의 바드르(Badr), 예멘의 후티와 같은 대리단체가 이란 정부와의 연계 아래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단, 복스는 아직 10월 7일의 공격에 이란이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고, 토니 블링컨(Anth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도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이스라엘 공격에 개입했다는 증거는 현재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복스가 진행한 국제위기감시기구(ICG) 산하 이란 프로젝트의 알리 바에즈(Ali Vaez)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바에즈 대표는 하마스가 이란과 상당히 복잡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바에즈 대표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란이 주로 후원하는 여타 단체와는 달리 시아파가 아닌 수니파에 속하며, 2011년 수단 내전 발발 당시 아사드(Assad) 정권을 지지했던 이란과 갈등을 빚는 등 역사적 갈등요소가 있는 편이다. 또한 그는 예멘의 후티 반군과 같이 종종 후 원 주체인 이란의 정책이나 요구에 반하는 행보를 보이기 때문에, 하마스와 이란처럼 정치·이념적으로 상당히 괴리된 두 집단이 후원관계로 맺어져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첨언했다. 다만 지금 당장은 이란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멈추지 않을 경우 현재 사태가 더욱 격화되어 심각한 국면으로 향할 수 있다는 최고지도자 명의의 경고를 내놓는 등 하마스를 적극 두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현 상황을 적절히 이해하는 데 있어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측면은 정치적 의도이다. 여기서 미국의 조 바이든(Joe Biden) 행정부는 역내 불안정을 야기하는 주체인 이란이 추구하는 목적을 다소 오해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미국이 내놓은 카드인 비공식적 상호인정과 소규모 제재 철회만으로는 자국의 전략·경제적 이익 추구를 위해 긴장 격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역사를 지닌 이란 및 그 대리집단들을 현실적으로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란 지도부의 현재 목표는 최근 속도를 내던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 관계 정상화를 가로막아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안전보장을 받거나 국내 민간 원자력 에너지 프로그램 개발을 승인받는 결과를 피하는 것이다.
일단 현재로서는 이란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개전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담당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비록 월스트리트저널(WSJ)에서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익명 고위인사의 발언을 인용해 이란이 기습 계획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는 보도를 내놓았지만, 이스라엘이나 미국 정부는 이 정보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미국은 존 파이너(Jon Finer)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의 발언에서와 같이 이란을 ‘넓은 의미에서의 공범’으로 지칭하는 데 그치고 있다.
WSJ은 이스라엘 및 미국의 전·현직 관료들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기습작전을 이란이 지원했음을 시사하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만약 작전 지시를 직접 내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난 10여 년간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재정·훈련·장비를 지원하고 긴밀한 전략·작전상 조율을 수행해 온 이란이 무고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특히 이 정도로 큰 규모와 고도의 복잡성을 지닌 기습을 이란의 정보 제공이나 적극적 지원 없이 하마스가 자체적으로 시행했을 가능성이 낮은 점, 그리고 이란 정부인사 및 언론이 이스라엘 민간인이 다수 사망한 사실을 축하하며 이번 공격이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 점은 이란의 개입에 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소들이다5).
결론
미국 측 소식통에 의하면 미국 국무부는 이미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역내 지도자들과의 협의를 진행 중이며, 바이든 대통령도 이스라엘을 방문해 민간인 피해 최소화 및 인도주의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외에 유럽연합(EU) 주요국과 중국, 러시아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별개 국가로 병립하는 두 국가 해법을 여전히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요약하자면, 전통적인 지정학적·경제적 분쟁요인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계속되고 있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뿌리깊은 적대감은 다양한 역사적, 이념적, 종교적 요인이 결부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아리아인으로서의 전통과 자의식, 이슬람권 종주국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 수니파와 차별화되는 시아파로서의 정체성은 모두 이란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현재의 태도를 정립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란이 하마스와 같은 비국가단체를 후원하고 있는 점도 이미 긴장의 수준이 높은 중동에 대리전이라는 또 하나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중동에서 발생하는 폭력사태와 긴장을 완화하고자 하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쟁의 기저에 존재하는 역학관계를 면밀히 이해하고 대화 및 외교 의지를 확고하게 밝혀야 한다. 10월 7일 사태를 비롯한 최근의 중동 정세는 이스라엘 및 중동국가들을 둘러싼 장기적 분쟁에 대응하고 긴장 격화 잠재력을 차단할 수 있는 전방위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국제사회가 역내 평화 및 안정 달성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 각주
1) Yapp, M.E.,1987. The Making of the Modern Near East 1792–1923. Harlow, England: Longman. p. 290. ISBN 0-582-49380-3.
2)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A/RES/181(II): 29 November 1947: Resolution 181 (II): Future government of Palestine: Retrieved 26 April
3) Fisher, Max (5 January 2016). "The real roots of Sunni-Shia conflict: beyond the myth of "ancient religious hatreds". Vox. Retrieved 27 June 2023.
4) Ellen Ioannis in Vox of October 14, 2023
5) ‘Iran celebrates re-enactment of the holocaust by Hamas’ by K N Pandita in Eurasian Times of Oct 17, 2023. https://www.eurasiantimes.com/iran-celebrates-re-enactment-of-the-holocaust-by-ha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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