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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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2023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일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성지순례를 마치고 뉴욕에서 아침으로 ‘곰탕’을 먹었습니다. 며칠 한국음식을 먹지 못해서인지 곰탕의 구수한 육수와 김치 그리고 깍두기가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민족을 구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유전학적인 분류가 가장 정확할 것입니다. DNA는 인류의 시작과 지금까지의 여정을 정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가족을 확인하는 방법으로도 DNA 검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인 분류도 타당한 방법이 됩니다. 저는 한반도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들으면 동질감을 느낍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은 분류방법입니다. 교포 2세들 중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한국 사람이지만 어색한 점이 있습니다. 저는 음식도 민족을 분류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과 땅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한국 사람은 한국에서 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살지만 입맛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뉴욕에서 4년간 살면서 음식 때문에 불편한 적이 없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한국음식’을 한국음식보다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트에서도 한국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먹방’이 인기 있는 것도 ‘미각’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성지순례 중에 ‘사제’이기 때문에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수사님은 무덤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베들레헴 성전에서는 예수님 탄생을 표시하는 곳에서 경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숙소에서도 사제이기 때문에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제임을 알 수 있는 방법도 몇 가지 있습니다. 교구에서 발급해준 ‘사제신분증’이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사제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아도 제가 사제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사제들이 함께 입는 ‘사제복’입니다. 사제복에는 ‘로만칼라’를 착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작고 하얀 로만칼라는 제가 사제임을 드러내는 표시입니다. 공항에 내려서 이민국 심사를 받을 때도 사제복을 입고 있으면 심사원이 ‘신부님!’이라며 인사하곤 합니다. 예전에는 사제복이 거북할 때도 있었습니다. 사제복이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을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사제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어색할 때도 있었습니다. 32년 사제로 지내보니 사제복이 제게는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람의 미각이 쉽게 변하지 않듯이, 사제는 사제복을 입을 때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 부활에 대한 믿음,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입니다. 수학과 과학에는 ‘공리’가 있습니다. 공리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기에 증명하거나,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리라는 터전 위에 수학과 과학이라는 탑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종교인에게 하느님에 대한 믿음, 부활에 대한 믿음,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은 증명과 분석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은총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배움과 탐구의 영역이 아닙니다. 믿음은 관념과 사유의 영역이 아닙니다. 믿음은 실천이며 행동의 여정입니다. 사제라는 직분이 믿음에 도움을 주겠지만 실천과 행동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천과 행동이 따르지 않았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위선과 교만을 질책하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실천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킨 원동력에는 ‘믿음’이라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족, 부족, 민족은 ‘믿음’이 없으면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신용’이라는 뿌리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행동하는 믿음, 실천하는 믿음을 보여주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출처 : 미주가톨릭평화신문→ ( 오늘의 복음 묵상)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