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시티 청산도의 봄풍경
청산도 [靑山島]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한 섬.
완도 남동쪽 해안에서 남동쪽으로 약 19.7㎞ 지점에 있다.
주위에는 장도·지초도·항도 등의 부속섬과 대모도·소모도·여서도 등이 있다.
산과 물이 모두 푸르다 하여 청산도라고 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서남해안 바닷길의 요충지로,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 일대가 전란에 휩싸여 거주하는 사람이 없다가 효종 때 다시 입도(入島)했다.
1866년(고종 3) 당락리에 청산포진이 설치되었고 1895년 진이 폐지되고,
1896년 완도군이 신설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최고봉인 매봉산(385m) 이외에 대봉산(379m)·보적산(330m) 등
300m 내외의 산이 사방에 솟아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해 사방으로 흐르는 소하천 연안을 따라 좁은 평야가 발달했으며,
중앙부와 서부 일부지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 해안 만입부에 간석지가 있을 뿐 대부분 암석해안을 이루며 해안선이 복잡하다.
특히 남부 해안에 해식애의 발달이 탁월하다. 기후는 비교적 온화하고 비가 많다.
주민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나 농업에 더 많이 종사한다.
농산물로 쌀·보리·참깨·콩·마늘·고구마·감자 등이 생산된다.
연근해에서는 삼치·갈치·고등어·멸치·문어 등이 잡히며, 김·미역·다시마·톳 등이 양식된다.
취락은 중앙부와 서부 평야지대에 주로 분포하는데,
중심지는 서부의 도청리이며 이곳에 도청항이 있다.
청산도-완도 간 정기여객선이 운항한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자연경관이 수려한 관광명소로 꼽힌다.
유적으로는 당락리에 1800년대에 축조한 당리성터와 당리마을 사당이 남아 있으며,
사당에서는 매년 음력 1월 3일에 당제를 올린다.
그밖에 읍리에 읍리성터와 남방식 고인돌, 부흥리에 백련암이 있다.
면적 33.28㎢, 해안선 길이 42.0㎞, 인구 2,892, 가구 1,374(2004).
청산도는 일명 선산(仙山), 선원(仙源) 이라 불리며, 고려시대에는 강진군에 속해 있었다
1981년 12월23일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2007년4월 5일 가고싶은 섬 시범사업선정,
2007년 12월1일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봄의 왈츠 세트장 가는길에 봄엔 유채꽃과 청보리밭 돌담길이 아름다운 청산도를 배경으로
아담한 오솔길은 선창에 내려 오른쪽으로 걸어서 1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자연이 빚어낸 한 폭의 그림 순수한 행복감을 주는 그 곳! 청산도
봄에 유채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청산도를 이쁘게 장식할 청산도로 떠나고 싶다
가고싶은 섬여행 1위의 청산도
서울에서 하루의 시간을 벌기 위해 새벽 1시에 떠나는 심야 버스를 타고 광주에 도착하니 새벽 5시.
이윽고 5시 50분 완도행 첫버스를 타고 도착한 시간이 7시 40분이다.
완도항에서 아침 8시 20분 첫 배를 타고 떠날 때만 해도 뿌연 안개와 구름이 시야를 가린다.
뱃길 속에 지루함이 밀려들기 시작할 무렵, 바다 저 끝으로 등대 하나가 시야에 잡힌다.
이윽고 한 점으로 떠오르는 청산도. 아침 햇살이 비치면서 푸른빛을 더해 가는 바다와
하늘의 모습을 보니, 청산도를 노래한 시조가 생각난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부모에 대한 효성과 뭍에의 그리움이 담긴 초분(草墳)
청산도는 대모도, 소모도, 여서도, 장도 등 4개의 유인도와 9개 무인도의 부속 도서가 있다.
지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삼치와 고등어 파시(波市)로 인해 완도에서는 이름난 어항이었다.
그러나 수자원의 고갈로 당시 1만여 명이 넘던 주민들 중에 상당수는 육지로 떠나고,
현재 거주하는 3천여 명의 주민들 대부분은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
섬 중앙에 보적산 등 해발 3백 미터 이상의 산들이 자리잡고 있어 식수 사정은 좋은 편이다.
사실 완도의 남쪽 끝자락에 붙은 청산도는 파시로 성시를 이루던 60년대 이후 ‘잊혀진 섬’이었다.
잔잔한 다도해의 다른 섬과는 달리, 예로부터 이곳은 바람과 풍랑이 심했다.
게다가 평지보다는 산비탈이 많은 지형으로 인해, 밭농사에 의존해야 하는 주민들의 생활은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주민들은 거센 바다 속에서 자연에 순응하는
억척스런 삶을 꾸려나갔다. 그리고 거센 바다는 청산도에 하나의 풍습을 낳았다.
‘초분(草墳)’. 남해안 도서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장례 문화의 하나로,
부모에 대한 효성과 뭍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풍습이다.
인근 노화도와 보길도 등에서 간간이 행해졌으나,
새마을운동에 밀려 청산도에서만 유일하게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집 인근의 공터에 돌을 약 50센치미터쯤 쌓고,
관을 올려놓은 뒤에 짚으로 지붕 비슷하게 만들어 덮는다.
그리고 비바람이나 짐승으로부터 초분을 보호하기 위해
산에서 베어온 억새로 용마름을 엮은 후, 3년을 두어 뼈만 남은 뒤에야 매장을 한다.
썩지 않은 성한 몸으로 선산에 들면 조상이 노해 풍랑을 일으켜,
사람들을 저 세상으로 잡아간다는 믿음에서 생긴 풍습이다.
첫댓글 봄 풍경 즐감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늘건강하시구요
고맙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