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 대한 회고부터
내 태어나기 억만년 전부터
4월이면 의미없이 피다지다를 반복했을지도 모를 진달래는
내 태어나기 몇 년 전부터
4월이면 슬픈 영혼에 대한 위로를 담은 가슴 아린 꽃으로 피다지다를
반복합니다.
“눈이 부시네, 저기 ♬
난만히 묏등마다
그날 스러져간 눈물 같은 꽃사태가 ~ ♫ “
1983년 4월의 어느 날 이후부터
해마다 4월이 되면
분홍이 무리지어 자주가
되고
자주가 무리지어 붉다
못해 검붉음이 되어
가슴이 아려오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젠 열정도 식어 그런 것인가
아님 흘러가는 시간의 일상에 묻혀 그런것인가
조금은 성숙해져서 그런
건가.
진달래를 보면서도 그냥
진달래구나 라고 느낀 세월이
더 많아졌습니다.
4월 진달래 보러 가는 길
4월의 화창한 세째주 토요일 20일
산악회 회원님들의 등산의 목적이야 개인적으로
다르겠지만
저는 연분홍 그 꽃을 보기 위해
북한산을 오릅니다.
능선 능선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하다 못해 보는 것만
모자랄 것 같아
몸으로 느끼기 위해
배낭의 3/4을 진달래주로 가득 채워서 오르기 시작합니다
예의 동네 터줏대감이자
오늘의 가이드 아톰선배를 필두로 구파발에서 이말산
이말산에서 비봉을 향해 9시 35분부터 등산을 시작합니다
등산내내 선두에서 앞서가든
아톰선배가 안나푸르나 뒷담화로
네팔 가이드 이야기를
꺼냅니다
네팔 가이드는 항상 일행의
맨 뒤에서만 움직인다고..
왜나면 갈 길이 하나밖에
없기에 앞서갈 필요가 없고 뒤만 챙기면 된다고..
힘들지 않은 이말산을
지나 자연생태공원 옆길을 따라 비봉을 향해 오릅니다만, 진달래 군락이
없어서인지 진달래는 거의 보지를
못합니다
약 30분을 더오른 뒤 쉼터 공원에서 휴식을 취합니다만, 여러 명 앉을
수 있는 벤치 가운데를
막아놓아 2명만 앉을 수 있습니다. 지리산은
특유의 직업의식으로 정책의 비효율을 강조합니다.
노숙자나 장시간 이용자 방지를 위해 그렇게 했겠지만, 이 산중의 벤치까지 그렇게 하는게 정책의 비
효율이라는 둥…
그린란드 선배님은 노숙자
중에는 일명 노가다나 농부 출신들이 거의 없다며 자영업하다가 망하거나
회사에서 간부 출신들이 대부분이라고 하는데.. 저의 미래를 말하는 것 같아 암울해 집니다. 제가
노가다를 해봤겠습니까? 아님 농사를 지어 봤겠습니까?
쉬엄쉬엄 대머리바위 일명
전두환 바위에 오릅니다
전두환 바위에 오르니
발아래로 군데 군데 진달래와 벚꽃이 어우러져 피어있는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전두환 바위에서 조금을
걷다가 11시 30분경 피플러브 회장님은 중국어 문화원 승급
면접 땜에
구기동 방향으로 하산을 하려고 합니다.
시간을 넉넉하게 맞추려고
하는 회장님 앞에서 가이드 종원 선배는 특유의 충청도식 너긋한
언행으로 회장님을 자극합니다. “아! 얼마 안돼요, 비봉에서 내려서 가도 시간 가능해요” 역시
느긋한 천성은 어디다 버리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애써 짊어지고
온 진달래주는 맛 보아야야 할 것 같아 구기동 하산 방향 근처 봉우리에서
상을 펼칩니다. 꿈푸리 형수님께서
애써 싸주신 샌드위치와 약간의 안주와 두견주 진달래술이
펼쳐집니다. 18도의 약간 달달한 진달래주 향취와
더불어 진달래꽃 을 배경으로 그린란드 선배님의
사진 한컷을 담고 다음 여정으로 갑니다.
회장님은 “짜이요!!” “화잇팅”의
응원 구호를 들으며 3시경에 경북경 근처에서 연락하자며 구기동
방향으로 하산하시고...
향로봉을 지나 비봉으로
가는 짧은 시간에 만석이 형이랑 저는 경치 구경을 하다가 시간을 지체
하였습니다. 향로봉에서 비봉으로
가는 도중 향로봉 삼거리에서 시간을 보니 거의 1시를 다해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애매합니다. 우리가 비봉가서 사모바위까지 갔다가 하산하여, 2시 넘어 진관사
근처
서서갈비에서 식사하게 된다면 3시에 회장님 약속 시간과는 빠듯해 집니다.
가이드 아톰 선배에게
전화합니다. 우리는 약간 뒤쳐졌으니 먼저 진관사로 가겠다고..
먼저 가신분도 빨리 내려오시든지, 늦으면 2시 서서갈비 생략하고 경봉국역으로 2차를 가자고
제안했습니다만,
선두 맡은자의 의무인가? 가이드로서의 책임감인가? 단호합니다. 같이 행동해야지 그러면 되냐?는
일갈이 전화를 타고 내립니다. 평소 양 같던 종원형이 호랑이로 느껴지는 전율이 흐릅니다.
그래도 저와 만석이형은
늦는다는 핑계로 진관사 방향으로 틀어버립니다.
먼저 진관사로 도착후
약 30분 경과한 1시 40분경
나머지 일행이 진관사로 도착합니다. 비봉에서
응봉능선으로 진관사로 내려왔답니다.
일행이 중지를 모아 안선배님이
오시니 서서갈비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3시 전후에 경북궁으로
출발하기로 하고 서서갈비로 갑니다
여기서 가이드의 권한이
발동합니다. '나는 북한산와서 차타고 다닌적이 없어 걸어다녀'라는
가이드의 말한마디에 지척에 다른 식당을 두고도
모든 대원들은 어쩔수 없이 10분 거리의
서서갈비로 걸어갑니다.
도로
옆으로 노선버스가 휙휙 다는데도 어쩔수 없이..
서서갈비 두시경 도착. 소갈비와 돼지갈비 그리고 1병하고 조금 더 남은 두견주를 식당 주인장의
허락 하에 개봉하여 같이 마시며,
진다래 향취에 다시 젖어 봅니다
2시반경 안선배님이 도착하시고, 한문 부활론이 엄청난 주제로
떠오르고 만장일치로 한문 부활을
채택하고 청와대에 민원신청 하자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크게는 한문을 사용해야만
나라가 클수 있고, 작게는 성대 한문교육학과 출신 종원행님의 형수님이
운신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3시를 훨씬 넘긴 3시 45분
서서갈비를 떠나 경복궁역으로 만석이 형, 안선배님 , 장선배님, 저 4명이
2차를 위해
갑니다.
평소 30분내에 도착할 수 있는데 택시 내비에는 무려 50분 소요시간이 뜹니다. 광화문 자한당 집회가
있는 모양입니다. 해서 구기터널을 지나 경복궁역으로
갑니다만, 성조기까지 든 태극기 부대와
거리에서 마주칩니다. 태극기 부대를 성토하기 시작하니 택시기사가 태극기 부대였을까?
경복궁역까지 가도 될텐데 굳이 못미쳐 세워주고 가버립니다
위로, 성토, 혼돈, 축하의 롤러코스트
2차는 5시가 못되어 체부동시장 잔칫집 앞 이자카야 2층 경성에서 회장님을 만나 시작합니다.
2차의 주제는 “위로주”
경복궁으로 오는 도중
불합격 소식을 들었었기에 딱새우회와 성게내장이 들어가있는 이름 모를
맜있는 안주로 위로잔을 채웁니다.
위로잔 몇잔 후에 갑자기
성토주로 바뀝니다. 감히 회장님을 떨어뜨리다니 그것도 실력이 아니라
커리큘럼의 문제로..
성토주 몇잔 후에 갑자기
혼돈주로 바뀝니다. 회장님 합격이라는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거
머야?
일단은 혼돈스러워 몇잔
혼돈주 몇잔 후에는 결국
축하주로 전환합니다.
축하주로 모자라 근처
노래방에서 축하연을 마련하였습니다.
축하 공연 후의 상흔
4월 어느날 누군가는 쏟아지는 총탄에 장렬히 쓰려졌습니다만.
저는 쏟아지는 폭탄주
맞고 거을린 머리를 파묻고 거의 나체수준에서 장렬히 거실에서
전사하였습니다.
역시 4월은 엘리엇의 시처럼 잔인한 달인 모양입니다.
안나푸르나 여독에도 불구하고
가이드하신 김종원 선배님, 포도농사 바쁘신 와중에 참석하신
장덕수 선배님,
플랫폼구축의 바쁘신 일정에도 참석하여 주신 강만석 선배님, 대중국 무역의
일꾼으로 불철주야
정신이 없으실텐데도 참가하신 이용진 선배님, 한국의 방송정책 수립에 노고가
많은 김재철 후배, 병환에 힘드신데도 늦게 참석하여 주셔서 자리를 빛내주신 안은섭
선배님, 면접일정에도 대장이 없는 산행에 의무감으로 참석하여 주셨던 회장님.
모든 분들이 함께하여 주셔서 뜻 깊은 산행이었습니다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ㅋ, 재밌네, 총무하느라 애 많이쓰네..다음 산행에는 적당히 마시자고!
북한산 산행 보다 1~3차 음주가무 보다 훨씬 더 재밌다.ㅎㅎ
글 잘쓰네.산행기 재밋게 읽고 갑니다.^^
이총무님 무거운 진달래주를 병채로 들고 오느라 수고했어요. 진달래를 배경으로 처음 먹어보는 술 맛이 참 좋았어요.
회원들 배려하는 마음에 글재주까지 있으니 서울역 갈 일은 없을 듯요 ㅋ
너무너무 재밌는 산행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녹번역 내릴땐 거의 혼수상태였는데 ...
나 빼고 음주에 가무까지 즐겼다니 샘이 나는군요. 산행기 잘 읽었네. 총무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네.
다시 읽어도 재미지네. 뜬구름도 설레발 대단하다. 그때 못 단 댓글 오늘 다시 담. ㅎㅎㅎ 5월에는 어디 철쭉 활짝 핀 데 없나???
늦게 읽는 4월의 산행기
글이 팔딱팔딱 살아 숨을 쉽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