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도 위 반
홍 재 석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본의든 타의든 부득이한 정황과 형편에 따라 정해진 순서나 속력 또는 관습을 벗어나는 경우와, 혼전 출산을 우리들은 흔히 속도위반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대학교를 다닐 때부터 직장을 가지고 있었기에 항상 시간에 좇기면서 살아 왔다. 어려운 삶의 인생길을 혼자 찾아 가다보니 행복의 속도위반을 세 번씩이나 하는 운명적이고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학생시절부터 아침만 먹고 잠만 자는 하숙을 아주머니의 인정 때문에 옮겨 가지를 아니하고 있을 때 다. 옆집으로 시집을 온 새댁이 자기의 단짝친구와의 혼담을 나도 몰래 하숙집 아주머니하고 진행을 하였다고 했다. 어느 날 장모 되실 분과 처형되는 분이 나의 선을 보고 가신다음 얼마 후 어머니 같은 하숙집 아주머니와 함께 반신반의로 맛선을 보려고 처자의 집으로 갔다. 대문에 들어서니 첫인상이 즐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집안의 어르신들이 모두 사랑에 모여 계셨기에 나는 먼저 예를 갖추고 인사를 더렸다. 잠시 후 신발 벗음의 술상을 내여 왔으나 술은 집배만 하였다. 장인어르신이 6,25 때 운명하셨기에 저를 맞아주시는 어르신은 당숙 이였다.
술상을 물린 다음 나는 안채의 안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잠시 후 곱게 한복을 단정히 입은 어여쁜 처자가 윗방에서 문을 살포시 열고 방글 방글 웃는 모습으로 들러와 서서 목례를 한다. 나도 답례를 하고 앉았고 먼저 말문을 열었다.
첫 인상의 웃는 모습이 그렇게 복스럽고 좋아 보였다. 예쁘고 고운 얼굴에 아담한 체구는 나의 눈길을 쏠이게 했고 마음이 흡족 하였다. 처자는 묻는 말도 없었고 웃는 모습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이며 순종의 미덕을 가추고 어른들을 섬기는 예의가 묻어 있는 느낌이 던다.
나중에 묻는 말은 몇 형제냐고 묻는다. 사남매라고 하였더니 내가 복이 많다고 한다. 왜냐고 되물어 보았더니 혼자면 외롭지 않느냐는 말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계모를 모시고 있는 나의 처지로서는 마음에 드는 처자를 만날 수 있게 해주신 하숙집 아주머니의 고마움과 오늘 오기를 잘 하였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자는 나가고 곧 이여 점심상이 들어왔다. 어려운 자리지만 나와 당숙이 겸상을 했고, 점심 식사를 하면서 당숙께서 넌지시 저에게 어떠냐고 물어보신다. 첫 대답이 “좋고 예쁘요" 라고 했다. "말을 드리니 좋으면 표시를 해주고 가면은 좋겠네" 라고 말씀을 하시였다. 집 안 어르신들은 사전 상의가 있었는지 모두 동의를 하시였다.
나는 난처하였지만 지난봄에 하숙하는 마을의 혼담이 있을 때 직접 내가 거절할 수가 없었고 아버지께서 오셔서 가신 다음 없었든 일로 할 때 다음부터는 네가 결정을 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신적이 있었다.
나는 잠시나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용기를 내여 당돌하지만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과 어른들의 승낙을 받아야 도리 이지만 사정이 여차하니 이 마을에서 어르신 두분만 모셔 달라고 했다. 그리고 집필묵도 준비하는 것을 부탁하였다.
잠시 후 마을 어르신 세분이 오시여 지켜보는 앞에서 내가 직접 사주(四柱)를 솜씨 좋은 붓글씨로 잘 쓰고 7면으로 접고 나서 어르신들에게 봉투와 보자기 등 마무리을 부탁드렸다. 어르신들 해주신 사주를 장모님께 례를 갖추고 올렸다. 좌중의 어르신들은 마음이 흡족 하신 듯 웃음소리가 방안 가덕하고 잔치 날처럼 즐거워 하시였다. 첫선보고 그날 사주받기는 동내가 생긴 이후 처음이라고 기뻐 하시였다. 그래서 나는 사주의 속도위반을 한샘이다.
장모님한태 정혼의 술상을 청하게 되었고 어르신들에게 동동주 한잔씩을 권해드리면서, 객지에서 당돌하게 당일 사주를 드림의 죄송함을 깍듯이 말씀을 올렸다. 장모님께서도 여러 곳 혼담 때문에 많은 고민도 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시골 농촌에서 대학을 보내셨으니 사위만 보고 결정을 하였다고 하셨다.
정혼 후 우리들은 결혼식을 올일 때 까지 약일 년 가까이 매주 주말에 만나 사랑의 꽃을 피우려고 서로가 기쁜 마음으로 연예를 하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세탁물을 자전거에 실고 그님을 찾아가는 마음은 밤이나 낮이나 눈, 비가 오거나 즐거움의 시간들이 생의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그 후 결혼식 때는 그 마을에서 새로 잘 만들어 놓은 사모관대복과 족두리를 객지 사람인 내가 개봉을 하게 되는 행운은 결혼 날 자 순서로 운이 좋아 혼례복을 사용하게 되여 두 번째 혼례복의 속도위반을 한 것이다.
신부는 임신 칠 개월의 몸으로 처갓집 안마당에서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새 관복과 원삼 옷을 입고 혼례식을 가졌고 아버지와 장모님은 기뻐하시였다. 나의 친구들에게 아무리 먹어도 음식을 담은 접시의 바닥이 보이질 아니 하도록 푸짐하게 차려주신 장모님의 정성과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때는 결혼 후 경상도 풍습에 혼수도 실랑 집에서 준비하고 신행은 일 년 묵어서 하기 때문에 이듬해 춘삼월 봄의 신행길에는 득남한 자식을 데리고 시집을 갔으니 세 번째 사랑의 속도위반이 확인 되였다. 잔치 집 에서는 시집온 신부보다 고추달린 아기가 더 인기를 독차지하여 경사가 겹쳤고 마을 새댁들도 부러워했다. 누구나 첫출발이 좋아야 끝도 좋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항상 마음속에 두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즐겁고 기쁨과 사랑으로 살아왔다. 지난 세월은 오십년이 넘었건만 생생하게 기억이 나서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글을 쓴다.
나의 인생의 여정에서 세 번씩이나 행복한 속도위반을 하였으니 소중한 추억으로 잊을 수가 없다. 젊을 때부터 주말의 즐거움을 평생 동안을 이여 온 아름다운 사랑을 이제는 가질 수가 없으니 먼 산만 넌지시 바라볼 뿐이다.
첫댓글 나의 인생의 여정에서 세 번씩이나 행복한 속도위반을 하였으니 소중한 추억으로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의 글 속에서 행복이 묻어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부럽습니다. 중매결혼을 하시고도 연애 결혼처럼 즐기셨네요 글잘읽었습니다.
속도위반도 선생님 처럼 하면은 괜찮을 것 같습니다.
행복해 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 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결혼생활이 어떠하셨는지 미루어 짐작케 합니다. 속도 위반의 아름다운 추억이 미소짓게 합니다.
재미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 당시에 속도 위반을 하셨으니 대단한 용기이십니다. 행복한 인생의 한자락을 보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옛날 순정 소설 같은 혼인 이야기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신행길에 득남한 아기를 앞세워 속도위반 사실이 알려지는 장면은 그만큼 인정을 받으셨음입니다. 추억속에 행복이 깃든 글이라 부럽습니다.
선생님의 행복한 속도위반이 아름다운 추억속에 그리움의 향수로 진하게 남아있군요.
인생을 즐겁게 재미있게 사셨네요.
선생님의 흠미로운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속도 위반이 있었네요? 호호호--
ㅎㅎㅎ 재미있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진솔하신 선생님 고백의 글 잘 읽었습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선생님 아름다운 추억인것 같습니다. 감상잘하고 갑니다.
홍선생님. 읽기는 벌써 읽고 댓글도 단것 같은데 지금 점검하니 안달았던가 봅니다. 어찌 이리 흥미 진진한 고백의 글로 인기 쨩이십니다. 역시 한거풀씩 벗는 이야기가 제일 좋은 글인것 같은걸요.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결혼하시게된 사연을 읽고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어찌보면 스스로 자유연애하는요즘보다 훨씬 안정감 있겠습니다.
적어도 나혼자 배우자를 결정하기보다는 나와 상대방을 잘아는 어른들의 객관적인 눈과 판단으로 소개해주시는 것이니까요. 해서...성공적인 인생을 살으신 선생님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