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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평
자연의 창에 비친 마음 풍경
주경림
들어가며
전 세계가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초유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염이 확산되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 결국 인간의 무절제한 탐욕으로 빚은 인과응보인 셈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준엄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인간만이 아닌 유, 무정물이 한 뿌리이고 서로 연결되어있는 커다란 인드라망의 생명공동체임을 자각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코로나라는 통과의례를 지나며 인류가 더욱 성숙한 사회로 발전해나가리라 희망해 본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머리카락 두께의 1/2000인 바이러스들이 좌충우돌로 세를 넓혀갈 때 시인들의 촉수에는 어떻게 감지되었을까? 시의 첫 행을 코로나 바이러스를 “바다 건너 온 낯선 바람”으로 시작한 김명숙 시인의 「함께 춤을 출까요」를 감상하며 그의 시 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함께 춤을 출까요
바다를 건너 온 낯선 바람
몸짓이 거세다 희미한 듯 단단한 폭력
수직 키높이 숲 사이로 새초롬히 누워있는 숨길
품에 안겨 삶을 짓는 새떼 날개짓 파닥임이
분주하다 도섭지* 이랑 사이 느슨한 등뼈
보라색 풀꽃 질펀하게 품고 핑크빛 광대와
한판 봄놀이가 성급하다 얇삭한 칼을
숨기고 연약한 이름으로 불리던
갈대 마른 눈빛 건초냄새 가득한 허리춤에
참새떼 샛노란 혓바닥이 야무지다
우수 즈음 내린 비 묵직한 징검다리
경계를 넘보는 살찐 물살
고인 햇살이 버들강아지 오래된 가지에
칼금을 긋는 한낮
함께 춤을 출까요 ‘Sall we dance?’
명자나무 불그레한 수줍음을 감추고
텀블러 캘리그라피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
내민 손을 잡아줄 듯 서툴게 다가온다
짙은 광합성으로 허파에 초록을 키우며
반쯤 조각난 얼굴 유령처럼 오가는
침묵 일상의 뒤통수를 어루만진다
- 「함께 춤을 출까요」 전문
과학과 문학은 생명체와 사물을 대하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 곽학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스스로 증식할 수 없으며 숙주에 기생해서만 살 수 있는 생물도 미생물도 아닌 중간 존재로 인식한다. 김명숙 시인은 미증유未曾有의 세상을 초래한 바이러스를 “바다를 건너온 낯선 바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강한 전염력으로 빠르게 확산되어가기에 “몸짓이 거세다 희미한 듯 단단한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인 것이다. 사람끼리 모이는 곳마다 빗장이 걸리자 이른 봄에 시인은 자연을 찾아 숲길을 걸어 들어간다.
암울한 인간세상의 뉴스와는 아랑곳없이 새떼 날개짓이 분주하고 봄비에 개울은 “살찐 물살”로 흘러가며 봄의 노래를 부른다. 햇살 입김이 불어준 칼금으로 버들강아지(갯버들) 가지에도 꽃눈이 곧 벌어지리라. 시인은 숲 속에서 자연스럽게 물오른 가지들과 스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명자나무나 버드나무 가지가 “함께 춤을 출까요”하고 다가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실은 시인이 함께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마스크를 써서 “반쯤 조각난 얼굴”로 서로 침방울이 튀길까 침묵하는 일상의 모습을 “유령”에 비유하고 있다. 그런 침묵에서 숲으로의 탈출은 “일상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일, 시적 화자의 허파에 초록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 일일 것이다.
올 봄엔 유난히 꽃들이 아름답게 피었다. 꽃들은 때 맞춰 제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사람의 발길과 손길의 차단으로 덜 훼손되었고 우울한 소식만 들리는 어두운 배경 속에 꽃들의 색감이 더욱 눈부시게 돋보였다. 유채꽃 축제를 취소했는데도 사람들이 몰려와서 꽃이 더 예뻐질까 봐 서둘러 트랙터로 1만 6000평 꽃밭을 갈아엎었다는 슬픈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도행지이성), (물위지이연)’이라는 말이 있다.(『장자』 「제물론」) 길은 걸어가야 이루어지고, 사물은 불러서 그리 된다”는 뜻인데 시인은 숲으로 걸어 들어가며 시의 길을 만들고 있다.
오백년 왕조를 이어온
오래된 묘지 담장 밖 몇 그루 옥잠화
하얀 향 발랄하게 웃고 있던 잡목 숲길로 들어선다
어느 해 겨울 아침 살포시 서설이 내려 사색에 잠겨있던
키 큰 나목 꼭대기에 집을 지으며 까아악까악
온 숲을 흔들어대던 까마귀 청랑한 울음소리
잠시 능선길에 오르면 반듯하게 줄지어 선 편백나무향
먼저 달려와 반기고 그 끝에 작은 도서관이
로댕의 눈빛으로 앉아있는 갈림길
멀지 않은 체련공원 운동장에서 공차는 어른들의
숨찬 목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오는 듯하다
- 「숲, 내 안에서 자라다」 일부분
전주의 건지산은 해발 103m의 낮은 산이지만 태조 이성계의 21대 할아버지인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을 모신 조경단이 있는 전주의 진산이다. “옥잠화 하얀 향”으로 미루어 여름의 숲인데 다음 행은 살포시 서설이 내린 겨울 아침이다. 편백나무 숲, 작은 도서관, 체련 공원 운동장을 지나가면서 “양지꽃 진달래 산벚꽃 황매화”가 차례로 피어나는 봄이 된다. 시인은 단풍나무 우거진 산사, 최명희의 소설가의 ‘혼불문학공원’을 돌아 왕릉 앞에 내려선다. “오월이 되면 찔레꽃 흐드러지게 피고 아카시노목 꽃눈/ 내려 하얗게 쌓이는 그 길 걸을 수 있을까”로 마무리를 한다. 숲은 무수한 생명체가 성장하고 꽃 피우며 소멸하는 시간이 반복되는 생태계이다. 시인은 숲 속에서 회상을 통하여 자연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그러므로 시 한편에 계절이 혼재한다. 옥잠화의 계절인 여름에서 서설이 내렸던 지난 겨울을 회상하고 다시 꽃눈 내려 쌓이는 그 길을 걸을 봄을 예비한다. 옥잠화, 서설, 양지꽃 진달래 산벚꽃 황매화, 찔레꽃, 아카시노목 꽃눈, 연녹색 봄물 그렁그렁한 싱그러운 시인의 ‘내 안에서 자라는’는 숲의 진경眞景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다음은 시인과 함께 변산을 떠나 바다 건너 위도로 가보자.
굽이굽이 소나무숲이 우거진 해안선을 지나
쉴 새 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위도를 건너본다
중략
살별 하나 떨어져 내변산 기슭에 앉아 울다가
청림계곡에서 환하게 웃던 어느 봄날의
변산바람꽃송이, 해마다 계절은 떠나고
어둡고 외진 가슴 깊은 곳에 꽃은 피어서
홀로 흘러야 할 그리움
너른 바다를 가슴에 안고 출렁이는
물결로 여기에 남는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고단한 통통배 소리 들리고
갯벌 가득 조개의 소란함도 보이는
오늘은 굽이굽이 소나무숲이 우거진 해안선을 지나
노을 속에 잠드는 솔섬을 본다
- 「변산을 떠나며」 일부분
질주불휴, 가정과 사회에서 쉼 없이 달려온 시인은 바다의 선경仙境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해안선을 지나 위도로 건너가 서해 바다 품에 안겨보는 것이다. 변산을 떠난 늦가을은 시인의 생물학적인 연륜이기도 하다. “버석이는 가랑잎처럼 흔들리고/ 우두커니 길을 잃고 아직도 서성대며/ 안개 속에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는 언저리/ 이루고 싶었던 많은 것을 보내야 하는” 후박나무 숲 바람소리로 스산해지는 시간이다. 넷째 연, 청림계곡에서 시인은 “살별 하나 떨어져 내변산 기슭에 앉아 울다가” 추운 이른 봄에 피어난 변산바람꽃송이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시인 자신이 바로 그리움이 고인 “어둡고 외진 가슴 깊은 곳”에 핀 꽃이었음을 회상하는 전환부인 셈이다. “고대의 시에서는 대체로 꽃의 외형적 아름다움과 향기에 화자의 시선이 머물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시인들은 내면으로 시선을 옮겨 그 비의를 찾아내고 있다. ---어디 꽃뿐이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그것들의 껍질 속 내면에는 무궁무진한 비의가 숨어있다.”는 문효치 시인의 글로 시 해설을 대신한다.
마음 풍경에서 벗어나와 시적 화자의 시선은 통통배와 갯벌의 분주한 일상으로 옮겨지며 “소나무숲이 우거진 해안선을 지나/ 노을 속에 잠드는 솔섬”의 장엄미를 독자에게 보여주며 시를 마무리한다.
생生, 그 허방다리를 짚으며
김명숙 시인은 2000년에 수필, 2008년 시로 『시와산문』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책갈피 속의 잠』, 수필집 『네 얘기 내가 듣고』(동인지)외 다수가 있고 시와산문 문학회 회원, 『광화문 시』 동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이다. 『책갈피 속의 잠』 첫 페이지에 나오는 「그런 사람」을 다시 읽어본다.
울안에 상추랑 쑥갓이랑 푸성귀 몇 가지 심어놓고
물주고 벌레 잡아주고 잦은 발소리 들려주면
새록새록 자라 초록물 듬뿍 배어있는
한 줌 이웃과 나누고 싶은
그런 텃밭 하나 갖고 싶다
그런 사람 하나 가지고 싶다
- 「그런 사람」 전문
필자는 시인을 만나 본적은 없지만 시를 통해 시인이 「그런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필자 역시 “그런 텃밭”, “그런 사람”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는 시인이 발품을 팔아서 자연 속을 거닐면서 얻은 자연과의 교감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편들을 읽어보았다. 다음에는 시인이 일상의 경험에서 모티브를 얻은 시편들을 읽어보는데, 생에 대한 연민이 읽는 이의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푸른 원석빛 호수 데크길 하얀, 작은 거미
난간에 집을 짓고 있다
어스름이 다가오는 길목을 그는
잘 알고 있는 게지
여덟 개의 손으로 다듬다듬 짓고 있는
생이 촘촘하다
바둥거릴수록 더 단단하게 옥죄어오는 덫
참새 한 마리 한쪽 날개를 잡혀있다
그 핏빛 퍼떡거림을 뒤늦게 알아챈 너구리
영역표시를 잊고 무심한 척 바라보고 있다
온몸을 그물에 칭칭 감긴 채 질기디질긴
저승줄을 겨우 떨쳐낸 참새 성긴
풀숲에 떨어져 낯선 눈길을 피해 얼른
숨는다 ‘덥석’ 횡재를 놓치지 않는 너구리
가지런한 털 속에 야생수풀진드기 슬쩍
옮겨 앉아 한 생을 시작 한다
- 「생生-그 허방다리」 전문
‘허방다리’ 의 사전적 정의는 짐승을 잡기 위하여 파 놓은 구덩이 위에 가는 막대기 따위를 걸쳐 놓은 뒤 흙을 덮어 땅바닥처럼 만든 함정이다. 「생生-그 허방다리」라는 시의 제목에서 부터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고 있다. 시적 소재로 거미, 참새, 너구리, 야생수풀진드기가 등장해 서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의 감정 개입 없는 객관적인 묘사로 생태계 모습 그대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첫 연은 거미의 집짓기이고 둘째 연에서는 동물들의 본능적인 생존하기 위한 사투가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비극의 한 장면을 영화 필름 돌리듯이 보여준다. 참새의 한쪽 날개가 거미집에 잡혀있을 때 거미는 잠시 횡재했지만 참새의 탈출로 허방다리 짚은 꼴이다. 구사일생한 참새는 다시 너구리에게 잡혔으니 참새도 탈출이 허방다리가 되었다. 그렇다면 먹이사슬에서 최상의 포식자가 너구리일까. 이쯤에서 시가 마무리 되었어도 시 한 편의 완성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인은 마지막 포석, “가지런한 털 속에 야생수풀진드기 슬쩍 /옮겨 앉아 한 생을 시작 한다”로 너구리의 횡재도 허벙다리로 만들어 버린다. 야생수풀진드기 또한 천적의 먹잇감이 될 것임을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며, 생 자체가 허방다리의 연속임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지레 겁이 났나 보다
보름동안 꼬박 갇혀 있을 일이
문을 닫자마자 팽팽하게 소리 지른다
날것의 그 소리를 못견뎌하며 나는 모든
귀를 질끈 감는다 저녁 무렵
마구 몰려다니는 하루살이떼 같이
그악스럽더니 점점 잦아든다
헐렁한 며느리발톱이 무럭무럭
자라는 동안 하루이틀사흘나흘…
너의 무릎은 더욱 말랑해지고 나는
땅에 떨어진 붉은 꽃잎을 하나씩
세어본다 세상은 초록빛 저 홀로 흘러가고
한 결 남은 제 살빛마저 날려 보낸
흐벅진 어둠으로 남은 바라밀
네 아픔이 내 길이 될까
- 「네 아픔이 내 길이 될까-흑마늘 만들기」 전문
시인은 삶과 죽음이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어있음을 「생生-그 허방다리」에서 보여주었다. 그 허방다리가 「네 아픔이 내 길이 될까-흑마늘 만들기」에서는 마늘이 숙성되어 매운 맛과 자극성은 덜어져 영양가 높은 흑마늘이 되는 인욕忍辱과 보시布施 바라밀의 단계로 높아졌다.
후각으로 느끼는 마늘냄새를 “팽팽하게 소리 지른다”, “하루살이떼 같이/ 그악스럽더니 점점 잦아든다” 등의 청각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읽는 이는 냄새 보다 소리로 마늘의 고통스러움을 한결 실감나게 받아들이게 된다. “며느리발톱” 같은 의미없는 일상이 계속되고 “초록빛 저 홀로 흘러가”는 시간, 보름의 숙성이 지나가면 “흐벅진 어둠으로 남은 바라밀”의 새로운 탄생이다. 치열한 마늘의 숙성처럼 일상에서 쌓인 내공으로 얻은 시정詩情에서 시인의 진지한 통찰을 엿 볼 수 있다. 우리 몸 안에서 유익한 영양이 되는 흑마늘의 보시 바라밀이 “네 아픔이 내 길”이 되는 것이리라.
「몰락의 세라나데」 라니, 필자의 머리에는 언뜻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스쳐갔다. 시를 읽고 보니 실은 썩어서 싹둑 잘라낸 고구마 한쪽의 허연 곰팡이 속에서 피어오르는 생명 예찬(?)이었다.
이슬에도위해
마지막 키우는,
위풍당당하게끌어당겨
성난어둠의
- 「몰락의 세라나데」 일부분
허옇고 푸른 곰팡이는 “불량한 촉수”임이 분명하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출발해서 “성난가시처럼을 기준으로 각 악기를 조율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오보에의 ‘라’음을찾아갈
「다리가 부러졌다」에서는 안경다리가 부러지면서 안경을 못쓰게 되자 맨눈으로 대면한 세상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상징성과 상상력의 놀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풍경 묘사에 필자는 좀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잘 때 빼놓고는 늘 쓰는 안경이기에 “사는 동안 자웅동체처럼 거의 완벽하게 함께 한” 시간이라는 점에는 공감한다. 부러진 안경에게 보내는 조사弔詞로 읽었다. “비틀거리며 풍뎅이 한 마리 날아들었다”로 시가 끝나는데 무언가 다시 이야기가 시작 될 것 같은 열린 결말이다. 아마 시인은 부러진 안경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은 듯하다.
이제 그는 네 안에 살아있다
“가장 낮은 눈빛으로/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일입니다”(『책갈피 속의 잠』 자서)라는 시인의 글처럼 그의 시에서는 유,무정물을 대하는 따듯한 시선과 너그러운 마음이 묻어난다.
흐르는 소리 요란한 혈관 속 상자 안에서
하루치의 노동에 지친 얼굴로 꾸벅거리거나
서둘러 휴대폰에 얼굴을 숨기고 춤추는 손가락 틈새
밝은 빛을 넓게 펼치며 실뜨기놀이를 하는
또렷한 눈망울의 건강한 사내아이 셋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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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옷차림 키 작은 어른
구애처럼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달랑 들어있는
자기 손바닥만한 바구니와 낡은 지팡이를
들고 낮게 중얼거리는 녹음기를 흘리며
집요한 바람도 없이 열리지 않는
먼 통로를 주춤주춤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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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유리조각처럼 빛나는 세상
포장마차에서 쓴 소주로 저녁을 때우고
시린 손으로 이력서를 쓰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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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면 거짓처럼 활기차게 흐르는 강물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져서 낯선 바람에 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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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사인 반짝이는 익숙한 빌딩 사이로
나는 발걸음을 내딛었다
- 「이제 그는 네 안에 살아있다」 부분 발췌
먼저, 긴 시에서 필자의 임의대로 각 연 마다 부분 발췌했음을 시인과 독자에게 양해를 구한다. 지하철 안의 풍경에서 시작한 첫 연에서 시적 화자가 지하철 밖, 도심의 빌딩 숲으로 걸어들어가는 넷째 연으로 시는 끝을 맺는다. “밝은 빛을 넓게 펼치며 실뜨기놀이를 하는/ 또렷한 눈망울의 건강한 사내아이 셋”이 보이는 그런 희망적이고 평화로운 삶이 되기까지에는 세대 간의 아픔, 시대적인 어려움을 극복했기에 가능한 것임을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둘째 연에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지하철 통로의 구걸하는 사람, 검정 고무신과 빈도시락으로 대변되는 유년기의 궁핍, 부모 세대의 근면으로 일으킨 나라, 돌반지, 백일 반지까지 내놓아 이겨냈던 외환위기 등을 줄줄이 열거한다. 현재 누리는 이만큼의 삶의 배경임을 환기시킨다. 셋째 연에서는 그럼에도 “아름다운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싶었으나” 펼치지 못한 비극적인 시인의 삶을 실례로 들어 시대적인 아픔을 “깨어진 유리조각처럼 빛나는 세상”으로 비유한다. 지하철 안이 과거, 현재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아픔을 떠올리게 한 타임캡슐이 된 셈이다. 넷째 연, 지하철 밖의 세상은 네온사인 반짝이는 빌딩으로 화려한 외형과 함께 좌판을 벌인 소상인들의 삶의 터전이 함께 하는 곳이다. 시인은 독자와 동시대인으로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순적 아픔을 공유하며 나와 너, 그가 끊어질 수 없는 무수한 연결고리로 이어지며 삶이란 늘 “거짓처럼 활기차게 흐르는 강물”이라는데 동의를 구하고 있다.
「쑥국 한 그릇」은 요양 차 고향에 내려온 한 후배의 이야기로 여럿의 인물과 장소가 시적 소재로 등장했던 위의 작품과는 대조적이다.
서울에서 가게를 열고 단단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더니 맺힌 데 없이 싹싹한
후배가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먼 숲 근처 낯선 곳 외딴집에서 선홍빛
불등걸을 지우며 장하게 견뎌왔구나
시들어가는 허파꽈리를 다시 피워내려고
눈 맞추고 말 나누며 햇솜을 키웠을
깡마른 고사리와 말린 표고버섯 곶감 그리고
쑥 한웅큼이 순하게 들어있는 봉지 하나
이제 겨우 눈뜨기 시작한 지 삼사일쯤 되었을까
이걸 어찌 아무렇지 않게 삼킬 수 있을까
심장이 먹먹해지면서도 그를 생각하며
한 숟가락 한 숟가락씩 떠 넣는다
옹알옹알 꼼지락거리는 쑥강아지 한 마리
고개 들어 나를 보며 힘겹게 눈을 뜬다
- 「쑥국 한 그릇」 하반부
인간은 누구나 잘살고 있을 때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드는 병마 앞에 원망하고 좌절한다. 「쑥국 한 그릇」은 투병 또한 인생의 한 과정으로 잘 이겨내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준다. 인물 묘사가 아니라 후배가 건넨 “깡마른 고사리와 말린 표고버섯 곶감 그리고/ 쑥 한웅큼이 순하게 들어있는 봉지 하나”에서 동기가 유발된다. “시샘 바람 겨울볕 끝자락을 더듬어가며/ 지독하게 타들어가는 어둠의 속살을 어루만졌을”이라는 어린 쑥에 대한 묘사는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후배의 투병 생활에 대한 비유로 읽을 수 있다. 하여, 시인은 안쓰러운 연민의 감정으로 그를 생각하며 심장이 먹먹해질 수 밖에 없다. 귀하고 특별한 선물이기에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이보다 더한 보약은 없으리라.
그런데 “옹알옹알 꼼지락거리는 쑥강아지 한 마리”라니, ‘쑥강아지’는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생명력 덩어리, 활기찬 존재라고 가정하며 후배의 병도 회복의 조짐을 보이겠구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쑥국 한 그릇’에서 ‘쑥강아지’가 생기는 마법은 시의 세계에서만 가능한 기적 아닐까.
다음은 유적지 탐방으로 미륵사지 옛터를 다녀와서 쓴 시, 「부처진신의 숨터」를 읽어본다. 시인이 1,400년전 백제 무왕의 염원이 깃들어있고 그 시대 사람들이 왕실의 번영과 백제가 번창하기를 바라면서 개인의 안위와 행복을 발원했을 절터를 거닐며 느낀 감회가 한 편의 시로 빚어졌다.
초록의 옛도량을 걷는다
햇빛
바람
돌
물
무심 위에 터를 다진다
연당
당간지주
석,목탑
금당
강당
승방
긴 회랑
안팎에 여민 상흔, 맨발로
그들끼리의 숨터에 은근슬쩍 끼어들어
살금살금 돈다 오래 견디어내는 것이 큰
힘이 되리라는 푸른 유월의 결기
느릿느릿 마중 나온 바람의 손을 잡고
기억의 미로를 한 바퀴 돈다
- 「부처진신의 숨터-익산 미륵사지에 다녀와서」 상반부
시인은 첫 연에서 행간 읽기로 역사의 시간을 복원하고 있다. 읽는 이도 행간을 따라 햇빛, 바람, 돌, 물의 자취를 따라 연당(연못의 터)에서 긴 회랑까지 상상 속에 절 한 채를 짓는다. 둘째 연에서는 이곳으로 천도까지 계획했던 무왕의 자취를 더듬으며 석탑에 보관된 진신 사리의 장엄한 위신력을 석부재의 묵은 상처를 쓰다듬는 햇살에서 느껴본다. 부처님의 광명을 “나란히 염해 놓은 석부재 지극한 햇살만/ 묵은 상처를 쓰다듬고 있다”라고 표현하며 마무리한다. 결국 미륵사지를 거닐며 그동안 불만족스러웠던 삶의 불화와 화해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했으리라 시인의 내면을 헤아려본다.
나가며
이상으로 김명숙 시인의 대표시 5편과 신작시 5편을 읽어보았다. 시인이 발품을 팔아서 쓴 시에서는 길이 곧 시로 이어져 서경敍景은 서정敍情을 불러내는 마중물이 되었다. 일상에서 얻은 시적 소재들, 한결 같이 상처를 입은 것들, 망가진 것들에서 시인은 “가장 낮은 눈빛으로” 생명의 비의秘意를 보아내고 독자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도심에서나 유적지에서나 시인은 우리의 삶이 인드라망으로 시공을 초월해 연결되어있음을 갈파했다.
솜씨 좋은 석장은 불상을 조각할 때 거친 돌 안에서 부처님을 꺼내기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김명숙 시인 자신도 “모든 사물 속에 들어있는 시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기를 열망하고 있다.
(「체험적 시론」) 필자는 시인의 수필 「첫정」에서 대엽풍란이 10년 만에 꽃눈을 틔우는 것을 보고 “어쩌면 내가 풍란을 기른 세월만큼 그도 나를 기르고 있었을까.”하는 시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시인의 작품을 읽으며 시가 시인을 “일상에서 생각과 행동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길러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필자를 비롯한 독자들은 세상의 눈보라에 퍼덕이는 눈발을 가는(「빗금으로 사정없이-눈보라」) 아무도 가보지 않은 시인의 숫눈길을 지켜 볼 것이다.
이제 숲은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며 남모르게
겨울눈을 키울 것이다. 가을의 끝에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생동하는 봄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김명숙 시인의 「다시 시작이다」 의 마지막 연을 읽어보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