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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Ofenbach VS. Lack of Afro - PARTY (feat. Wax & Herbal T)
대한민국에는 크게 두 부류의 삶의 형태가 존재한다. 연애 중인 자와 그렇지 아니한 자.
나는 전자의 경우에 속한다.
아니, 속했다.
내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나를 속이기 전까지는.
[마크] 슈퍼러버
반해주의 남자친구인 마크리는 모로 보나 완벽한 애인이었다. 젠틀한 매너, 상냥한 인성, 꺼지지 않는 애정의 불씨까지. 그리고 앞의 모든 걸 합친 것에 정확히 127을 곱한 무한배수의 장점인 미모까지. 반해주는 아주 행복했다. 바람 불면 날아갈까 손대면 깨질까. 마크리는 반해주를 품 안의 보석 다루듯 다뤘다. 좆같은 맨스플레인을 했다는 게 아니라 사랑해서 소중하게 대해줬다는 소리다. 반해주는 마크리를 개떡같이 굴러가는 본인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황금덩어리라고 여길 정도였다.
내가 어쩌다 이런 복덩이를 만나게 되었을까? 정확히 2년 전에 차에 치일 뻔한 할아버지를 돕다가 만난 인연을 상기하며 반해주는 매일 아침에 신에게 기도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이 기도 역시 마크리 덕분에 시작했다. 반해주는 무교였고 마크리는 기독교 신자였다. 마이 러버의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지. 반해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개종했다. 아니, 애초에 바꿀 종교가 없었으니 그냥 입종했다.
없던 종교도 만들 정도로 마크리는 반해주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고도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반해주가 살아온 인생을 펼쳐본다면 마크리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반해주는 이제 마크리 없는 인생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마크리와 함께하는 2년이라는 시간은 반해주의 삶에 있어서 길고도 밀도 있게 채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마크, 우리 결혼할까? 요즈음 반해주가 퇴근하고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하루에 삼십분씩 연습하는 문장이었다. 아, 이게 완벽한 억양으로 옥구슬 굴러가듯이 나와야하는데. 이상한 데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반해주가 상기 문장을 한 달째 연습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사건은 언제나 평화 속에서 태어나는 법이었다.
“해주, 우리 다음 주에 영화보러 갈까? 해주가 좋아하는 영화 후속편 나왔대.”
“오. 좋다. 어, 그런데 다음 주면… 아! 마크, 나 다음 주 하계휴가야. 우리 여행 안 갈래?”
“어… Trip?"
“음, Travel. 나 이번에 바이어네 회사도 단체휴가 간대서 우리도 하계휴가 앞뒤로 연차 쓰라고 공고 내려왔거든. 얼추 맞추면 보름이니까, 해외나 국내 여행 찐하게 한번 다녀오자. 우리 사귀면서 여행이라고는 강릉 1박 2일 다녀온 게 전부잖아. 그것마저도 제대로 못 다녀왔고.”
“오우, 음.”
“마크 너도 휴가다운 휴가 한 번도 못 썼잖아. 이번에 우리 둘 다 좀 쉬고 오자. 응?”
“오우… 해주, 그게, 그러니까…”
시원한 카페에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페퍼민트 차를 마시고 있던 반해주는 기분이 확 찌그러졌다. 반해주의 미간에 어떤 미친놈이 굴착기로 와그작 긁고 지나간 것 같은 자국이 패였다. 마크리가 순식간에 더러워진 분위기를 눈치 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마크리. 너 나랑 사귀고 있는 거 맞아?”
평소에는 마크, 자기, 허니 등으로 마크리를 명명하던 반해주는 열 받으면 본인의 남자친구를 마크리라고 불렀다. 아마 마크리의 이름이 마크 세르게예비치 카라마조프 리였다고 해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풀네임을 불렀을 것 같은 억양으로 공들여 또박또박 발음했다. 한 때 성우가 꿈이었던 반해주는 이럴 때 재능을 불태웠다. 물론 본인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당연하지, 왜 그런 말을 해 해주? 나는 진짜 해주 사랑하고…”
“이게 사랑의 문제야?”
그럼 무슨 문젠데? 마크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물음을 초인적인 힘으로 참아냈다. 본투비 호기심 덩어리로 태어난 마크리는 반해주와 사귄지 얼마 되지 않은 <반해주 애인 새내기> 시절 동일질문을 했다가 사자후를 맞았었다. 마크리는 학습능력이 빠른 편이었다. 같은 실수는 두 번 반복하지 않았다.
“미안해 해주, 기분 상하게 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해주도 알잖아, 우리 회사가 쉬는 거에 인색해서…”
“마크리. 나 너랑 사귀는 2년 동안 너 연차 쓰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그래, 연차 못 쓰는 회사? 대한민국에 깔리고 깔렸어. 아마 서울에 포진하고 있는 미세먼지보다 많을 걸? 내가 그거 이해 못 하는 거 아니야. 근데. 너네 회사는 좀 심해. 아니, 미쳤어. 블랙 기업도 이런 블랙 기업이 없어. 사람을 새벽에 출근 시켜서 새벽에 보내주질 않나, 퇴근해도 핸드폰에 불나게 전화를 해대지를 않나,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하질 않나. 지금도 봐. 우리 장장 보름만에 만난 거야. 그리고…!”
반해주는 혈압이 올라서 다다닥 내뱉던 말을 잠시 멈췄다. 마크리를 만나며 많이 내려갔던 혈압이 마크리 때문에 다시 높이뛰기를 하고 있었다. 타고나길 높았던 혈압이 스윗한 연애를 통해 안정을 되찾나 싶었는데. 후, 진정하자. 한 달 전 진행했던 건강검진에서 팔을 조이던 혈압계의 감각을 재생하며 마크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반해주가 물었다. 차분하게.
“너. 마크리. 너 대체 무슨 회사를 다니는 거야? 어떻게 2년 동안 회사 이름 코빼기도 안 알려 줄 수가 있어? 아니, 애초에 정상적인 회사를 다니고는 있는 거야?”
끝물에는 거의 애원하듯 물은 반해주의 말에도 마크리가 대답을 못하자 반해주는 천장을 쳐다봤다. 후, 시발. 마크리는 회사 얘기만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생각해봤다. 그래, 캐나다 사람이니까 비밀이 많을 수도 있어. 눈이 많이 오고 단풍나무가 많은 나라니까 비밀도 좀 많을 수도 있지!
반해주는 지금 같은 일이 발생할 때마다(자기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지만 저것 외에는 붙잡을 지푸라기가 없기에) 이를 떠올리려 애썼고, 실제로 위의 추리 덕에 화를 억누른 적도 많았다. 사랑하면 사람이 약간 바보가 된다고 했던가. 본인이 딱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장장 2년을 이런 사태가 벌어질 때마다 초인적인 힘으로 인내했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그러나 이제는 정말. 더 이상은 못 참는다. 신원불명. 완벽한 애인의 단 한 가지 흠이었다.
“그… 해주.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그리고 해주도 알지만…”
“알아. 너 이상한 사람은 아니라는 거. 알아, 아는데…”
반해주는 갑자기 눈물이 주룩 흘렀다. 에이 씨, 쪽팔리게. 반해주가 황급히 눈물을 훔쳤지만 일은 벌어진 뒤였다. 오 마이 갓. 임금님 용안에 옥루가 떨어졌다! 반해주라면 목숨도 내놓을 마크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해주, 제발, 제발 울지 마.”
“너 절로 안 가?! 쪽팔리게!”
무릎을 꿇은 마크리에 기겁하며 이번엔 반해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쪽은 제발 울지 말라며 애걸했고 한 쪽은 제발 일어나라며 복걸했다. 반해주의 눈물은 마크리의 석고대죄에 JMW드라이기로 말린 것 마냥 증발해버린 지 오래였다.
“해주, 내가, 내가 진짜. 조금만 더 있다가 다 설명할게. 내가 해주여도 나 같은 거 이해 못 할 거야. 당연해. 당연한데… 내가 이기적이어서 해주를 놓을 수가 없어.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알겠어, 알겠다고. 그러니까 제발 자리로 좀 가! 사람들 다 쳐다본다고!”
반해주는 사람들 시선 집중되는 게 싫어서 음식점에서 직원을 부를 때도 핸드폰 네온사인 어플로 >>>저기요<<<를 적어서 흔드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게 더 이목을 끈다는 건 본인만 모르는 사실이었다.
마크리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잔뜩 풀이 죽어서 자리로 돌아갔다. 반해주가 더 이상 울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한 마크리가 본인 몫의 땡모반을 한 모금 마시곤 한참동안 눈치를 봤다. 그리고 운을 뗐다. 조금만, 진짜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다 말할게. 그걸 들은 반해주는 애써 진정한 게 아깝게 다시금 눈이 뒤집어졌다.
“마크리.”
“어?”
“너 진짜 사람 돌아버리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어? 왜?”
“니가 무슨 흑막이라도 돼? 무슨 맨날 회사 얘기만 나오면 왜 그렇게 베일에 싸인 것처럼 구냐고. 뭐? 조금만 기다리면 말을 해? 무슨 대단하신 얘기를 하려고?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그 놈의 위대하신 진실을 밝힐 건데? 나는 니가 기다리라면 그냥 기다려야 돼? 2년 만난 남자친구 회사 이름도 모르고 데이트는커녕 얼굴 한번 보기도 어려워서 천년에 한번 만년에 한번 만나는데 그마저도…! 허. 이것 봐. 지금도 이러잖아.”
“아, 미안, 해주…”
마크리의 애플워치가 요란하게 사이키 조명을 켜며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애플워치에 사이키 조명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었다. 한 달 전 마크리가 회사의 부름을 딱 한 번 무시했더니 바로 탑재된 채로 돌아왔던 그 괴랄한 기능이었다. 몸에 이식 안 당한 게 다행이네. 반해주가 비아냥댔던 그 때도 마크리는 어물쩡 웃으며 넘어갔었다. 마크리가 안간힘을 다 해 가리는 노력이 무색하게 모노톤 인테리어의 카페에 형형색색의 레이저 쇼가 개최되었다.
“받아.”
“해주…”
“그리고 회사 가.”
“해주…”
“그리고 나랑은 이걸로 끝이야.”
“해주!”
할 줄 아는 말이 해주밖에 없는 사람처럼 반해주의 이름을 부르던 마크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반해주의 앞에 다시 무릎을 꿇었지만 이미 늦었다. 반해주는 이미 카페를 벗어나고 있었다. 상기 기술하였듯이 반해주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고 100M를 11초대에 끊던 급식이 반해주가 육상을 그만 둔 이유도 이와 동일했다. 관중이 본인을 쳐다보는 게 싫어서. 간단하고 어이없는 이유였다.
벌써 카페 밖으로 휘적휘적 팔다리를 움직이며 멀어지는 반해주를 멍하니 바라보던 마크리가 황급히 짐을 챙겨 따라 나갔다. 해주! 그리고 그런 둘의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고등학생 두 명은 그제야 들이켰던 숨을 뱉었다.
“대박.”
“존나 대박.”
다 녹은 휘핑크림을 저어 단숨에 음료 반을 비운 고등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토론을 시작했다. 주제는 당연히.
“야, 김지우 너는 방금 옆 테이블 같은 정체불명이랑 사귈 수 있음?”
“장난치냐. 저런 존잘이 땅 파면 나옴? 존잘인데 닥 가능.”
“오케이. 그럼 존잘인데 어디서 뭐하는지 모를 사람 아니면 존못인데 배경 확실하고 부자인 사람.”
“닥 1. 와꾸가 세상을 지배한다.”
“김지우 존나 쓸데없이 똑 부러지고 난리.”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대답하던 고등학생이 반해주와 마크리가 사라진 자리를 흘깃 쳐다봤다.
“근데 아까 그 남자.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아?”
“야, 지우야. 멘트 존나 구리다. 시네마천국 같았다 방금.”
“최예림 돌았나봐. 시네마천국이래. 그거 우리엄마 최애영환데.”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둘만의 웃음 포인트였는지 카페가 떠나가라 웃은 고등학생 둘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고개 숙여 주변 사람에게 사과했다. 주변사람이라고 해봐야 카페 주인이 전부였지만.
“아니 진짜. 나 어디서 봤어. 아, 어디더라. 진짜 어디서 봤는데.”
“티비에서 본 거 아님? 저런 얼굴 티비 아니면 어디서 봐.”
“방금 봤잖아.”
“아 맞네. 김지우 존나 천재.”
다시 깔깔 웃는 고등학생을 가볍게 무시한 남은 고등학생이 고뇌에 빠졌다. 아닌데… 진짜 어디서 봤는데. 진짜 티비에서 봤나? 하긴, 저렇게 잘생긴 얼굴은 티비에서나 나올… 헐. 티비.
“야, 최예림.”
“어? 왜?”
“너 존나 천재다.”
“나? 왜?”
대박… 입을 벌린 고등학생이 마크리가 무릎을 꿇은 자리를 다시 쳐다봤다. 와씨, 대박. 저 남자 그 남자네.
***
같은 시각 반해주는 화딱지가 나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본인의 머리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압력밥솥이고 정수리에 달린 압력추가 돌아버린 헤드스핀을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덥지도 않은 날씨라고 생각했는데 화가 나니 누가 동네 전체를 오븐으로 굽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열 받아! 반해주는 귀뚜라미 보일러마냥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사람을 개빡치게 하는 혈압을 애써 누르며 휘적휘적 걸어갔다.
목적지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몸에 너무 약이 올라서 길 따라 되는대로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막무가내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느 나라 사람들은 화가 나면 화가 풀릴 때까지 걷는다던데. 나는 그럼 지구 한 바퀴 돌아서 여기로 돌아와야겠네. 이 날씨에 지구를 돈다고? 생각만 해도 개빡치네? 오히려 더 열 받은 반해주는 결국 들고 있던 가방을 땅에 내던지려다가, 참았다.
이건 반해주가 작년 생일에 본인이 본인에게 선물한 소중한 가방이었다. 지구가 멸망해도 이건 멀쩡하게 지켜야지. 길 한복판에서 감정이 오락가락 널뛰기를 하는 반해주가 가방을 소중하게 쓰다듬던 순간이었다.
“해주!”
마크리가 본인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사색이 된 마크리가 보였다. 우리 잘생긴 애인 얼굴이 왜 저래? 마크리의 잘생긴 얼굴에 단박에 화가 풀린 반해주가 의아함을 느낀 것도 잠깐. 뭔가 이상했다. 조상님이 이끈 것 마냥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니.
“와, 뭐고.”
열아홉 살까지 경상도에서 살다가 상경한 반해주가 자동으로 고향 말을 했다. 무엇 때문에?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는 공사장 자재 때문에.
이런 개 같은. 공사를 이 따위로 하면 어떡해. 이 나라의 안전 불감증 때문에 결국 내가 죽는구나.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덩어리들에 반해주가 몸을 웅크렸다. 아 미친. 나 월급 이번 주 금요일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월급날을 떠올린 불쌍한 월급쟁이 반해주는 주저앉아 팔로 머리를 감쌌다. 잘 있어라, 김과장. 내가 죽으면 귀신돼서 꼭 니 컴퓨터 해킹해서 업무 자료 다 날리고 지옥 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해주를 괴롭히는 김과장을 향해 저주를 내뱉으며 본인의 마지막을 의연하게 기다렸다.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또 기다렸는데…
“뭐고.”
대학 졸업 이후로 완벽하게 자취를 감춘 고향 말이 오늘만 두 번째로 튀어나왔다. 분명히 진즉에 본인을 덮쳤어야 할 철근들이 소리도 없이 가루하나 떨어지지 않는 기현상에 반해주는 눈을 뜨고 위를 쳐다봤다. 그리고.
“…자기?”
“…안녕, 해주.”
어색하게 웃고 있는 애인을 마주했다.
“…”
“…”
그리고 끝내주는 침묵.
“마크가… 자기가 왜 거기… 있어?”
“어… 그러게. 하하.”
“지금 마크 등에 짊어진 거… 쇠파이프야?”
“쇠파이프? An iron pipe? No way! 에이, 무슨. 이거, 이거 그냥 어, 막대기! Stick! 해주 Stick 알지? 하하, 막대기가 왜 이런 곳에 있지? 위험하게? 하하. 캐나다였으면 공사장 관리자 아주 큰일 나는 건데. 대한민국은 뭐, 어우. 하하하.”
어색하게 웃은 마크리가 등에 한가득 얹고 있던 거대한 쇠파이프들을 젓가락 모으듯이 모은 다음 건물 옆에 가지런히 세워두었다. 어우, 이런 막대기가 왜 갑자기 쏟아졌담, 막대기도 떨어지면 위험한데, 어우. 땀을 한바가지 흘리며 쇠파이프를 막대기로 포장하는 마크리를 빤히 보던 반해주가 상황을 정리해보려 애쓰는 순간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건물이 잘게 흔들려 마크리가 애써 세워둔 쇠파이프들이 깨장창 쓰러졌고 설마하며 위를 올려본 반해주는.
“아, 진짜.”
아래를 향해. 정확히는 반해주를 향해 떨어지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에 그냥 입을 떡 벌렸다. 오늘이 내 제삿날인가보다. 난리통에 수그러든 줄 알았던 혈압이 다시금 요동치면서 만사가 귀찮아진 반해주는 눈을 감았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오늘은 진짜 마크랑 데이트한다며 좋아했던 몇 시간 전의 본인을 떠올린 반해주가 체념했다. 잘 있어라, 세상아. 잘 있어라, 내 애인. 그렇게 진짜로 죽음을 기다렸다.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또 기다렸는데…
“아니 뭐냐고 진짜.”
지난 몇 년간의 수행이 말짱 도루묵이 되어 이제는 그냥 입에 붙어버린 사투리를 짝 뱉으며 눈을 뜬 반해주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아니 오래 되었다고 하기에도 너무 최신의 이벤트와 오버랩 되는 광경을 마주했다.
“…자기?”
“…하하.”
어린아이 업듯이 이번에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한 짐 지고 있는 본인의 애인의 모습에 반해주가 기함했다.
“자기 뭐해?”
“어… 하하.”
이제는 변명도 안 한다. 등에 콘크리트를 업은 채로 옆으로 게걸음을 걷더니 조심조심 와르르 덩어리를 내려놓는 마크리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반해주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만 반복했다. 마크리는 그런 반해주의 모습에 안절부절 못하다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갔다.
“해주, 그러니까… 조심해!”
반해주 위로 갑자기 낙하하는 콘크리트 덩어리를 발견한 마크리가 반해주를 안은 채로 바닥에 쓰러졌고, 그 삽시간에 흘러가는 수 초 안에, 반해주가 바닥에 안전하게 누운 순간 마크리가 기민한, 그러니까 보통 인간이 낼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선 몸짓으로 상체를 일으켜 팔꿈치로 콘크리트 덩어리를 가격했다. 그리고 쾅!
“…”
“…오우, 미세, 미세먼지… 하하하…”
마크리의 엘보 한 방에 산산조각이, 아니 가루가 되어 공중을 떠다니는 물질이 되어버린 콘크리트가 반해주와 마크리의 사이를 지독하게 메웠다.
“오우, 미세먼지. 해주, 숨 쉬지 마. 오늘 서울 공기가 영 안 좋네. 남산타워 안 보이겠다, 그치. 하하하.”
머리카락에 회색 콘크리트 가루를 범벅을 한 마크리는 반해주의 코와 입을 가려주며 필사적으로 말을 돌렸다. 이 회색 입자들이 그저 미세먼지라기엔 이 상황이 너무 크리피했지만 마크는 애써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미소로 얼버무렸다. 평소의 반해주라면 그 사람 심장을 자극하는 미소에 녹아내려 지난 2년간 마크의 신원 문제가 불거졌을 때마다 유야무야 넘어갔던 것 마냥 이번 역시 넘어갔을 테지만, 이번 일은 평소의 반해주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반해주는 평소의 반해주와는 달랐다. 지금의 반해주는 화가 날 대로 났고, 어이가 없을 대로 없었으며, 무엇보다 혈압이.
“너… 마크리.”
“어, 어?”
“너… 센티넬이었어?”
“그게, 그러니까.”
“그래서 그랬던 거야? 맨날 마음 놓고 데이트 한 번 못하면서 전화만 오면 사막에 바람 불어서 모래 사라지듯이 사라지고. 나랑 1박 이상 여행도 못 가고. 니가 그렇게 아등바등 회사를, 아니지, 센터겠네. 그래 센터를, 아니, 니 정체를 숨긴 게 다…”
“해주, 그러니까.”
“니가 센티넬이어서, 그거 숨긴다고 그랬던 거였어?”
“내가 다 설명할게, 그러니까…”
“마크리 니가….”
“어?”
“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어,어,어?????”
혈압이 오르다 못해 터지는 것 같았다. 반해주는 지금 이 순간 본인이 전구가 된 듯한, 그리고 그 안의 필라멘트가 탱! 하고 경쾌하게 끊기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피가 뜨거워짐과 동시에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가,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이 들끓었다. 당황하며 본인을 일으키려는 마크리의 손길에 부러 몸에 힘을 줘 바닥에 드러누웠다. 마크리의 얼굴에 반해주가 처음 보는 당혹감이 서렸다.
2년 사귀면서 처음 보는 얼굴이잖아. 반해주는 이상한 포인트에서 서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이렇게 혈압이 오르는데, 너는 그런 내가 처음 보는 얼빠진 얼굴이나 하고 있어?
분노는 나의 힘이라던 책 제목이 생각났다. 책 내용은 떠오르지 않았다. 책을 읽지도 않았긴 하지만 읽었어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 머릿속에 양잿물을 확 들이부은 것처럼 이성이 흐려졌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야 이 개새끼야!!!!!!”
“악, 해주!!!!!!!!!”
돌고래처럼 악을 지른 반해주를 향해 공사장 자재들이 후욱 당겨졌다.
그리고 반해주의 몸에서 열꽃이 펑 피어올랐다.
여기까지가 위대한 인력(引力) 센티넬,
반해주 센티넬의 탄생이었다.
***
“저 남자 그 남자야.”
“누구?”
“왜 옛날에 백화점 가전관 테러 소탕한 센티넬.”
“헐. 그 괴력 센티넬 말하는 거 맞지.”
김지우의 말에 입을 벌린 최예림이 본인의 핸드폰 갤러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긴 손가락이 액정을 슥슥슥 문지르다가 스탑.
“진짜네.”
“맞지. 내 말이 맞지.”
머리를 맞댄 두 고등학생 아래 핸드폰에는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 짧은 머리를 한 마크리가 지금보다 앳된 얼굴을 하고 대형 티비를 방패처럼 들고 서있는 사진이었다.
“이야, 최예림 너는 이 사진을 아직 갖고 있었네. 이게 대체 몇 년 전 일이냐.”
“나는 존잘 사진은 평생 소장해.”
“사진은 갖고 있으면서 정작 얼굴을 못 알아보면 어떡하냐?”
“원래 존잘은 내 마음 속에만 살아있으면 된 거야.”
남은 음료를 순식간에 쪼옥 다 마신 고등학생 둘은 마크리가 무릎을 꿇었던 바닥을 쳐다봤다. 공룡 발자국을 기록한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자국이 움푹 패여 있었다.
“사장님 존나 빡치겠다 그치.”
“존잘이라서 안 빡칠 듯.”
“와, 존나 띵언.”
“근데 최예림 너 그 사진 들고 있는 거 째끼면 깜빵 가는 거 아님?”
“너만 말 안하면 아무도 몰라.”
김지우와 최예림은 동시에 법과정치 시간에 배운 지식을 떠올렸다. 하나, 센티넬 및 가이드는(이하 초인)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으로, 초인이 행하는 모든 임무는 대한민국의 공무이자 기밀 수행이다. 둘, 초인은 민간인과 접촉할 수 없으며, 민간인 역시 초인과 접촉 및 촬영 모두를 금한다. 셋, 상기 조항을 위반한 사실이 적발된 초인 및 민간인은 그 즉시 초인 재판에 회부된다.
“…나 깜빵 가면 사식 넣어줄래?”
“생각해보고.”
“김지우 진짜 배은망덕한 새끼. 내가 너한테 맥인 싸이버거가 몇 갠데.”
“더 사줘.”
“양심 집 나간 새끼.”
최예림이 다 먹은 음료 바닥을 휘젓다가 종이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아까 그 언니는 저 남자 센티넬인 거 모르는 눈치던데 앞으로 고생 좀 하겠네. 마크리가 본의 아니게 꾹 눌러버린 바닥을 보다가 반해주가 앉아 있던 자리로 시선을 옮겼다. 반해주가 앉아 있던 쪽의 테이블에 반해주 몫의 찻잔과 마크리의 반쯤 남은 땡모반이 담긴 컵이 주욱 길게 물길을 그리며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었던 테이블에 나란히 놓인 두 컵을 한참 바라보던 최예림은 김지우가 마시던 프라푸치노를 냅다 훔쳐 원샷 했다. 야, 니 꺼 먹어! 김지우의 고함을 가볍게 무시하고 바닥에 가라앉은 초코칩까지 야무지게 씹어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 언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
냥-하!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신밀리와 살림방 읽으면서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렸답니다!
어쩜 그리 재밌는 글만 올라오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역쉬 밀토 최고의 카페시다 훠우!
센티넬물 좋아하시나요?
일단 저는 무지하게 좋아합니다>_<
센티넬물에 펀쿨섹하게 한번 도전해보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천천히~
그렇지만 내용 꽉꽉 밟아 넣어서~
한 편씩 가져오겠습니다
같이 재미있게 즐겨주세용!
오탈자 지적도 항상 감사합니다!
너 나 우리 상구방 화이팅!
그럼 오늘도
냥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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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헐 둘다 센티넬⁉️
히히 슈퍼러버도 천천히 정주행 시작👏
말머리 주인공 찾으러 왔습니다 근데 찾으러 왔더니 내가 1편에 댓을 안 달았잔아?! 너무 재밌어서 허겁지겁 읽느라 댓 안 단줄도 모르고 참나.......... 마크 우리 결혼할까? 연습하는 해주 너무 로맨틱ㅠㅠㅠㅠㅠㅠㅠ 와중에 스틱 미세먼지 도랐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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