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목) 복음 묵상 (루카 10,1-12) (이근상 신부)
그때에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10,1-3)
유대인들에게 일흔둘(일흔)이란 숫자는 모든 인류를 의미하는 숫자다. 창세기 10장은 아담의 후손을 일일이 열거하는데 그 숫자가 70이다. 그러니까 모든 인류를 다 모아놓으면 70이 된다는 것. 히브리어로는 그 숫자가 70이고 그리스어성경에는 숫자가 72인데 루카는 후자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모든 인류, 그러니까 선택된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창조물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게 루카의 비전이었다.
그리고 복음은 한걸음 더 나아간다.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였다. 당신이 갈 곳에 제자들을 파견하였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믿음을 주셨다는 것. 사람들이 충분하여서 믿었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믿음은 먼저 주는 것이리라.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양. 양은 그리 똑똑한 동물이 아니었다. 양을 치는 이들은 안다. 양들은 눈이 나쁘고, 해서 길을 자주 잃고, 지혜롭지 못하여 다른 동물들처럼 먹을 것을 찾지도 못하여 손이 많이 가는 고집스러운 동물이다.
예수님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제자들을 파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그의 사명이었다. 믿고 또 믿고 믿는 것. 그렇게 바보들과 자신의 사명을 나누는 것. 그렇게 함께 가는 것. 모두에게 모두를 선택하여 파견하는 것.
우리의 사명이 가진 본질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니까 교회는, 가정은... 누구라도 함께 하도록 불리워진 이들은 다 부족한 이들의 견딤으로 한걸을 내딛는 것. 앞으로 나아가라는게 아니다. 함께 하라는 것. 그렇게 계속해서 믿고 또 믿으며 견디어 주는 것. 그렇게 아주 먼 길을 함께 희망하는 것.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LG7JYKDHYpe4pP6jKXGLCbB4voDWmhEQqATBd7wgRu5cf4rLr5RFSDx8ePoxaUPC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