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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story(불경) 스크랩 [왕초보 천수경박사되다] 55.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 (2)
관문/이재희 추천 0 조회 33 14.01.21 15: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신묘장구대다라니 神妙章句大陀羅尼
신통스럽고 묘한 능력이 있는 신비스러운 말씀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신통스럽고 묘한 능력이 있는 신비스러운 말씀이라고 우리말로 해놓긴 했지만, 제 스스로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해설도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우리말 해석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천수경>은 바로 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위한 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묘장구 대라라니 그 자체가 관세음보살님과 삼보를 찬탄하며 공경하고, 귀의하여 의지한다는 내용으로 잘 구성된 하나의 경입니다. 이 신묘장구 대다라니의 앞과 뒤의 내용들은 어찌보면 중생으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잘 실천하겠다는 다짐과 참회, 그리고 발원문 식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처음부터 이 신묘장구대다라니 까지만 독송해도 되고, 신묘장구 대다라니만 반복해도 그 자체로 훌륭한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신묘장구 대다라니 등 진언(眞言)이 본격적으로 우리말로 번역되기 시작한 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아무리 오래되었다 해도 10년 전 후 밖에 안 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제가 출가 했을 때는 다라니나 진언의 뜻을 새기는 것 자체를 금기시 하였습니다. 속된 말로 ‘천기누설’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다행히 인도에 유학하며 부처님 당시의 언어인 싼스끄리뜨어(주로 대승경전에 쓰여 짐)와 빨리어(주로 소승불교의 경전에 쓰여 짐)를 공부하여, 경전들을 한역(漢譯)에 의지하지 않고 바로 직역하는 분들의 노력 덕분에 이제는 다라니와 진언도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이 추세가 되었습니다.

이 신묘장구 대다라니는 인도에서 유학한 분들의 직역을 보니, 지금까지 독송용 <천수경>에서 표현한 것들은 띄어쓰기조차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로 읽은 것이지요.

마침 제 주변에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진 각행(覺行) 거사께서 띄어쓰기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고 정리해 주신 것에, 몇 개의 한글 본을 참고하여 제가 우리말로 해석을 해 본 것입니다. 다른 분들이 어렵게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연구해 놓으신 것에 비하면, 저는 그나마 쉽게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여러분은 이왕이면 앞의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참고하여 독송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싼스끄리트어나 빨리어 등 부처님 당시의 언어에 대한 말이 나왔기에, 고대 언어와 연관된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 전후 시기까지 당시 인도에는 상당히 많은 언어들이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불교의 세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아소카 왕은 인도를 통일 한 후, 인도의 북부 지방까지 영토를 넓혀 지금의 파키스탄이나 아프간의 훨씬 북쪽까지 점령을 하였습니다. 불교에서는 전륜성왕이라고까지 칭송받는 아소카 왕은 자신의 통치 영역을 표시하고, 통치 원칙을 공고하는 목적으로 많은 석주(石柱)와 비문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인도 북쪽에서 발견되는 석주 중에는 아람어(Aramaic language)로 새겨진 것도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아람어가 예수시대 예루살렘에서도 사용한 언어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같은 언어권에 있었다는 사실은 몇 백 년의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예수가 석가모니라는 인물과 사상에 대해 알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방증(傍證)인 것입니다. 더욱이 아프간과 가까운 티베트불교에서는 이사(Issa)라는 법명의 뛰어난 수행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슬람권에서는 통상적으로 예수를 ‘이사’로 부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신약성서에는 없는 예수의 13~29세까지의 행적과, 예수가 인도에 유학하였다는 설은 끈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교회에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그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복음서로 정식으로 채택은 안 하지만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문서들이 있습니다. 이런 복음서를 외경이라고 하는데, 1947년 2월 사해 서안(西岸) 쿰란지역 11개의 동굴들에서 구약성서 사본 및 유대교 관련 문서(흔히 사해문서라고 부름)들이 발견된 이후, 외경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사해문서(死海文書: Dead Sea Scrolls)는 무려 2,000여 년전 작성된 성경의 사본과 주석서들로 기독교는 물론 인류 역사의 귀중한 문헌입니다.

사해사본 이외의 외경들 중에는 4대 복음서의 내용을 뒷받침해 주는 내용도 있지만, 이미 고착화된 현재의 기독교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문서도 상당히 많습니다.

보병궁복음서(成約成書: The 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가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 보병궁복음서는 예수의 젊은 시절의 구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보병궁복음서 36장 1∼4절 중]
티베트의 랏사에는 구도자를 위한 사원이 있었고, 수많은 고전의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예수는 그들이 포함하고 있는 비밀의 교훈을 직접 읽기 원하였다.

한편 멀리 동부지방의 최고 가는 성자 멘구스테가 이 사원에 있었다.
에모두스 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험난했지만 예수는 길을 떠났으며, 비댜빠지는 믿음직한 안내자 한 사람을 딸려 보내며, 멘구스테에게 그 유대 성자를 잘 맞이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며칠 후, 그 안내자와 예수는 사원에 도착하였고, 멘구스테와 모든 사원의 승려들과 선생들은 히브리의 성자를 맞이하였다.

예수는 멘구스테의 도움을 받아 성스런 고대의 필사본들을 모조리 탐독하였다.
멘구스테는 예수와 더불어 장차 올 시대에 대해 종종 말하였으며,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신성한 예식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다. 랏사에서 예수는 가르치지 않았고 사원의 학교에서의 공부를 모두 끝마쳤을 때, 서쪽으로 길을 떠났고 많은 마을에서 잠시 머물러 가르침을 주었다. 라다크 도시에 있는 레흐라는 마을에 도착하여 수도승, 상인 및 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수도원에 머물며 가르치고 시장터에서 대중들을 찾아 가르쳤다.

멀지 않은 곳에 어린 자식이 죽을 병에 걸린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인은 예수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스승이란 말을 듣고 아이를 끌어안고 예수에게 왔다.
예수는 그 여인을 보고 하늘로 눈을 돌려 말하였다.
“나의 아버지 하느님, 저에게 거룩하신 하느님의 권능을 주시어 이 어린 아이에게 성령의 기운을 쏟아 넣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는 대중의 면전에서 손을 어린 아이 위에 얹고 말하였다. “착한 부인이여, 그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아들을 고쳤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 아이는 나았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이 사람은 확실히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만으로는 그와 같이 열병을 꾸짖고 어린애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없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환자를 데리고 왔고 예수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쳤다.

예수는 라다크인들 사이에서 며칠 동안 머무르며 병을 치료하는 방법과 죄를 씻어내는 방법과 지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중략-

카슈미르 골짜기에서 예수는 라호르라는 도시로 가는 도중인 한 떼의 대상을 만났다. 상인들은 예수를 알았고 레흐에서의 그의 권능을 보았기에 무척 반갑게 여겼다.

예수는 라호르에 가서 신드강을 건너 페르시아를 통해서 더 멀리 서쪽으로 가려 하였고 그들은 그에게 낙타를 한 마리 주었다.

예수는 그들과 동행하다. 라호르에 도착하자 이미 와 있던 아자이닌과 몇몇 승려들이 환대하였다. 예수는 아자이닌의 손님이 되어 많은 것을 가르치고 병 치료술의 비의(秘醫) 도 전해주었다. 그는 공기, 불, 물, 땅의 영을 지배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죄사함의 비의와 죄를 씻어 없애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독일의 신학자 홀거 케르스텐(Holger Kersten)은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엘마 그루버등 공저, 홍은진 옮김, 아침이슬 간행),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홀거 케르스텐 지음, 장성규 옮김, 고려원 간행) 등에서, 앞의 얘기보다 더 놀라운 결론을 유도 합니다.

이렇듯 기독교의 교리와 예수에 관한 많은 이론(異論)들이 있습니다.

그 중 진언과 관련된 ‘대담한’ 주장이 있어 소개합니다.

인도 및 티베트 등지에서 예수에게 심령치료의 비법을 전수해준 밀교계 고승인 우도라카와 멘구스테 등 스승들은, 예수에게 의술과 비술을 이타적으로 쓰되 남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귀국 후 예수는 유일신교인 유대교파들에게 모든 인간의 절대 신성을 부르짖었으며 여러 가지 초월적 이적을 행하고, 군중을 모아 신의 사랑과 평등사상을 전파하였습니다. 결국 유대교 성직자들의 질시와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린 채 처형됩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한 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ama Sabachthani : ‘하나님 왜 저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 흥미롭게도 일본의 ‘아오야마 신지’라는 감독이 이 진언을 제목으로 2005년에 영화를 제작했음)라고 외친 후 기절하였다고 합니다. 예수가 외친 이 최후의 말은 티베트 라마불교의 진언(眞言)인 "엘리엘리 라마 삼먁 삼보리(Eli Eli Lama Sammach San Bori)"라는 다라니로 지금도 전해져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의 사실여부를 저로서는 판단할 도리가 없지만, 케르스텐 이라는 신학자는 이 방면의 연구에 평생을 바친 결과를 몇 권의 책으로 정리해 내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예수는 없다’(저자 오강남, 현암사 간행)등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비판서가 제법 있지만, 케르스텐의 저서처럼 기독교를 완전히 재구성해야 할 내용 정도의 수준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종교는 한 번 그 사상이 굳어지면 후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도 때로는 신앙에 대한 도전으로 매도되어 바로 잡기가 거의 불가능하기에, 종교 비판서는 더더욱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충분한 연구에 의한 자신감이 없으면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종교 비판이므로, 불교에 대한 비판서도 많이 출간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성법스님 저서인 '초보 천수경박사되다' 의 내용을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출처 : 매사와 법진(http://cafe.daum.net/beobjingeo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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