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40706 엄마달
민구식
베란다 창 밖으로 노란 보름달이 환하게 보인다. 말 없는 달은 공중전화처럼 소통의 한 형태로 감정이나 메시지를 전달한다. 누구는 달을 보고 오늘 어제 내일을 불러들이기도 하고, 사리어 둔 추억을 꺼내 재생시키고 다시 색을 칠해 보기도 한다.
달의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쓴다면 엄마가 읽을 수 있을까?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엄마가 보여 밤늦은 시간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그사이 더 길어진 나무 그림자는 편지지가 된다. 주저리주저리 늘어난 사연은 밤이 깊도록 이어지고, 짐승의 울음은 더 크고 길게 밤을 울린다.
유년의 초여름이었다. 마루 끝에 오도카니 앉아서 해가 저물도록 기다려도 엄마의 기척이 없었다. 혼자서 소에게 여물 주고 돼지, 닭, 염소, 강아지, 밥 챙겨준 후 집에 불이 있어야 빈집 같지 않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남폿불을 밝혀 추녀 끝에 걸었다. 한참을 기다려 보름달이 중천에 왔는데도 엄마는 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가 걱정이 되었다. 망설이다 남폿불 심지를 돋우고 길을 나섰다. 용사대 우리 밭은 동네에서 제일 무섭다는 최씨 묘를 지나서 작은 고개를 넘어 공동묘지를 지나야 있었다. 집 앞 논두렁을 질러 건널 때는 개구리들이 일제히 울음을 멈추었다. 그 고요가 주변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솜털이 바짝 섰다. 두리번거리며 쉬이 떨어지지 않는 발을 옮겼다.
엄마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길을 나섰지만 집이 멀어질수록 무서움이 커졌다. 최씨 묘를 지날 때는 묘 뒤에서 누군가가 이놈 하며 튀어나올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겨우 최씨 묘를 지나 고개를 막 넘으려는 데 갑자기 바람이 획 불어 남폿불이 꺼졌다. 머리카락이 쭈뼛 솟았다. 남폿불이 있을 때는 불만 보며 걸었는데 꺼지는 순간 사방에서 어둠이 달려들었다. 서 있는 나무들은 짐승이나 도깨비, 귀신 같았다. 시커먼 어둠에 먹힌 나는 오줌을 쌀 것 같았다. 앞으로 갈 수도 뒤돌아 갈 수도 없어 반쯤은 정신이 나갔다.
어둠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무서움 속에서는 눈동자를 아무리 키워도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점점 더 두려워진다. 고요가 귀 쪽으로 기울어 작은 벌레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다. 엉금엉금 기어 키 작은 소나무 아래 몸을 숨기고는 사방을 살폈다. 공동묘지 능선 윤곽이 흐릿하게 보였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한참을 숨어 있다가 달빛을 빌어 기다시피 하여 우리 밭으로 갔다.
밭에 갔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모깃소리만 하게 엄마〜 하고 불러 봤다. 그 때 밭 저쪽 끝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울면서 밭고랑을 가로질러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달려와 나를 안고 볼을 비볐다. 달이 밝아서 남은 고랑을 다 매고 가려다 보니 늦었다는 엄마는 뭐 하러 왔냐, 무섭지 않았느냐? 하셨다. 목이 메었다. 엄마가 걱정이 되어 찾아온 나를 대견해 하며 거친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오는 길은 든든했다. 공동묘지를 가볍게 지나고 부엉이 홰치는 소리에도 움찔하지 않았다. 최씨 묘도 거뜬히 지나서 논개구리들이 울음을 멈추어도 놀라지 않았다. 쳐다본 하늘엔 보름달이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지극한 내리사랑이었다. 삼대 독자 외아들에게 시집와서 아들과 딸을 아홉이나 낳았지만 내 위로 아들 다섯을 생이별했다. 엄마는 얼마나 힘들고 애가 타셨을까? 그 후 막내인 나를 마흔 둘에 낳고는 애지중지 하셨다. 군 생활 중 지뢰 70여발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사고에 나는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널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했다고 했다. 엄마는 얼마나 나에 대한 간절함이 크셨는지 짐작이 간다.
오늘같이 보름달이 환하게 뜨면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난다. 흙이 묻었던 엄마의 볼과 땀내 나던 품, 우리 막내 다 컸네 하시며 등을 토닥이던 손길. 엄마달이 환하던 그날의 기억은 내겐 참 애틋하고 특별하다.
(포항 <수필사랑회> 17번째 에세이 집에 실린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