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과식물은 생물 분류에서 겉씨식물 가운데 가장 큰 門을 이루고 있는데, 대부분 상록수로서 곧게 쑥
쑥 자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미송‧솔송‧전나무‧잣나무‧주목‧구상나무‧향나무‧편백나무‧측백
나무‧노간주나무 등이 이에 속한다.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남극대륙을 포함한 전 대륙에 고루 퍼져
산다. 전 세계 구과식물은 모두 48屬 500여 종이 등록되어 있다.
식물세밀화는 대부분 책상 앞에 앉아서 그리지만, 그리고자 하는 소재를 정하고 나면 이를 관찰하여
눈에 익히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 수목원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키보다 더 큰 가위를 둘러메고
전나무 숲, 솔송나무 정원, 귀화식물원, 외국의 산과 들 등지를 돌아다니며 식물의 필요한 부분을 채
집해오는 일도 중요한 준비단계다. 다른 직원들끼리 ‘육림호 옆에 있는 눈향나무에 열매가 맺히기 시
작했다’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면, 세밀화가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채집 봉투와 가위를 챙겨 들고
뛰어나간다. 저자는 그런 열매를 채집할 때마다 맛을 보고싶은 생각이 굴뚝같다나? 다행히 구과식물
열매에는 독성이 없다.

구과식물도감을 준비하면서 연구자들이 가장 신경 썼던 식물은 구상나무였다. 그 방면의 전문가인
생태학자와 분류학자들은 저자를 보고 ‘이제 구상나무와 분비나무의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어요?’ 하
고 놀리기 일쑤다. 구상나무는 매우 귀한 한국 고유종으로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트리로 애용하는
수종이다. 이에 비해 분비나무는 동북아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는 평범한 수종이다. 구상나무와 비슷
하게 생긴 삼나무는 왜국의 고유종이다.
구상나무가 한국 고유종임을 알고 난 이후 저자는 저절로 애정이 우러나 더 자주, 더 자세하게 관찰
한 후 정성을 다해 그리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생각이 비슷했던지 표본실에는 오래 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수집해온 구상나무 표본들이 가장 많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래 되어 수분이 다 빠져나가고
색깔도 변한 표본에는 채집한 날짜와 장소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표본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때
는 부서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구과식물들은 눈향나무와 눈잣나무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라
간 거목이다. 그래서 구과식물을 관찰하고 나면 언제나 뒷목이 뻐근하다. 저자는 구과식물을 올려다
보면서 자신이 그러한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이나 곤충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고 써
놓았다. 그래서 구과식물을 그릴 때는 늘 기가 죽는다고.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우리나라에 단
한 자리뿐인 광릉수목원 식물세밀화가로 취업하여 4년 동안 자리가 보장된 채 일하는 행운의 비중이
더 크지 않을까?
저자 이소영은 4년 동안 수목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모든 구과식물을 그려 한 권의 도
감으로 만들었다고 밝혀놓았다. 모든 구과식물이라니, 상굿도 밝혀지지 않은 구과식물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100% 자신해도 될까? 그러면서 한 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숲속을 돌아다닌 발자국 수
만큼, 그리고 펜촉에 묻힌 잉크 양만큼 그 식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토로해놓았다. 한 사
무실에서 일하던 연구자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다른 기관으로 옮겨가서 자리를 잡은 얘
기도 해놓았다. 식물 연구기관이 늘어나 더 많은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생물 종
보존에 점점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니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광릉수목원에만 존재하던
식물들이 전국 각 수목원으로 분가해 나가고 있다는 얘기도 매우 고무적이다. 우리나라도 이제야 식
물학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조선조를 대표하는 세밀화 <윤두서 자화상>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세밀화의 진수 <화성 능행도>
식물세밀화가 점점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일도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라고 써놓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세밀화는 연원이 길다. 양반화가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은 세
밀화의 극치로서 이미 300년 전부터 널리 퍼져 있었다. 조선시대의 각종 의궤(儀軌)도 세밀화의 일종
이며, 현대에도 세밀화로 명승고적을 그려 전시회를 열고 책을 내는 전문가들이 많다. 다만 식물세밀
화가의 경우 국가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한 연륜이 짧고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저자는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수목원을 나와 지금은 다른 곳에서 여전히 식물세밀화를 그리고 있단
다. 다만 광릉수목원에서 맨 처음 직업적으로 세밀화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이곳을 자신의 뿌리로
여기고 있다고.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건축 자재나 다양한 목재 그리고 펄프재 의 원료로 쓰이는 경제성 있는 구과식물, 독립문역 안산 자락길의 데크길 "메타스콰이어" 의 풍치가 계절마다 좋아 몇번인가 다녀 왔습니다. 특히 겨울역시 설경을 그려내는 곧고 웅장한 자태가 그려 집니다. 민둥산이 수목으로 가득 채워진 풍성한 산야는 나무심기로 우리가 일구어낸 초록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