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하나님
여수 큰 사랑 교회 / 전승호 목사
인생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은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 오해 때문에 분쟁과 싸움이 일어나고 서로 원수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도 때론 남의 말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오해하여 다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해하기 전에 사실 확인을 위해 본인과 직접 만나 대화를 해보면 쉽게 오해가 풀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성경에 대한 오해 때문에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로 크게 양분되어 서로 대립의 상대로 살아갔습니다. 한 형제이고 유일신을 믿는 그들이지만 성경을 오해하여 크게 두 개의 파로 나누어져 이스라엘 나라를 이끌어 갑니다.
이들의 오해 중 하나는 ‘부활’이란 문제입니다. 사두개파는 부활도 없고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는 부활도 믿고 천사의 존재도 믿습니다. 서로 믿음이 양분되어 오는 가운데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의 신앙의 오해를 풀어 주셨습니다(마 22:23-33). 오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집에 일곱 형제가 있는데 맏형이 결혼을 했습니다. 자녀를 낳기 전에 그만 형이 죽었습니다. 유대 법에는 여자가 자녀를 낳기 전에 형이 죽으면 형수를 위해 동생이 자신의 씨를 주어야 합니다. 만일에 형수와 살지 않으면 유대 법에 의해 처벌을 받습니다. 이렇듯 형수가 죽고 난 후 둘째부터 일곱째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할 때는 여자가 일곱 남자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주님께 질문을 합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갔던 모양입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죽고 난 후에 다시 살아 날 때는 이 세상에서 살던 부부가 다시 만나 사는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부활 후에 이 땅에서와 같이 성의 구별로 다시 만나 사는 것으로 신앙의 오해를 하고 있던 그들에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답을 하십니다.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28-30)
오늘 우리의 믿음의 생각은 어떠한지요? 주님은 부활 후에는 사람이 남녀로 만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천사와 하늘에 있는 천사를 알아야 합니다. 또 이 땅에 사는 동안에만 부부로, 또는 가족으로, 이웃으로 살아가지만 저 하늘 나라에 가서는 천사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분명이 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마 22:31-32)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부활을 말하면서 ‘하나님은 어떤 자들의 하나님이 되는가?’를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조상들을 등장시키면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라고 합니다. 부활이 없다, 있다고 말하는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들의 믿음의 신앙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순간입니다. 이 글을 대하는 당신은 죽은 자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산 자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산 자와 죽은 자의 하나님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원문 성경은 ‘그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요, 지금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시다’ 라고, ‘죽은 자’가 아니라 ‘죽은 자들’로 기록되어 나옵니다. 왜 죽은 자들이 될까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육신으로 보면 죽은 자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죽은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없는 곳에는 계시지 않습니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고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만 하나님은 지금 살아 있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지금 너희에게 현실화 될 때 그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습니다. 또 천사도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 휴거할 것을 믿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웅장한 헤롯 성전이 있습니다. 십일조, 구제 헌금 등 누가 보아도 신앙에 흠이 없습니다. 대단한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들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선포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었지만 아들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유일신으로 머물고자 하면 종교요, 유일신이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고 그분의 아들이 되어질 때 비로소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자들을 통하여 생명이 낳아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일신을 믿고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지만 정작 그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나는 아들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유일신은 종교입니다. 유일신에서 이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이어져 살아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자들의 하나님이’ 라고 할 때 그러면 ‘살아 있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살아 있는 자들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부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곧 살아 있는 자들이 되면서 하늘의 천사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있는 자들의 모습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싹이나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말씀하십니다. 땅은 사람을 비유하고 있고, 밀은 예수님 자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자선이나 신앙의 행위를 말하기보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 성도들 안에 심겨졌는데 성도들은 그 씨앗을 발아시켜 자신 안에서 생명의 열매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아들이 되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면서 영생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와’는 살아 있는 자의 어미, 또는 생명의 어미입니다. 그는 에덴 동산에서 선악의 씨를 먹었기 때문에 이런 말이 붙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동침한바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가인은 악한 자이며 아벨은 선한 자입니다. 자신들이 먹은 결과에 따라 열매가 나와 자신들을 심판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생명의 어미였지만 결국 악이 선을 죽이는 자로 전락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전통과 유일신을 내세우며 이방인들을 개로 취급하는 우월주의 신앙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생명의 어미가 되기를 바랐지만 사망을 낳는 어미로 전락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경수가 끊어져 자식을 낳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은 ‘열국의 어미, 열왕의 어미’입니다. 그녀는 사래에서 사라로 변화되고 난 후, 하나님이 그녀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난 아들이 바로 이삭입니다. 이삭은 생명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육신의 관계로 낳아진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바라볼 때 이삭을 보아야 합니다. 이삭 같은 아들이 없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죽은 신앙이 됩니다.
마리아는 처녀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합니다. 천사가 와서 그에게 아들이 잉태 될 것을 알려주고 나니 곧 아들을 잉태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역사 속에 들어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생명을 이어가는 근원은 여자로부터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땅은 남성으로 나오지 않고 여성형으로 나옵니다. 즉 땅은 여성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 사람이 만들지 못하는 씨, 하나님의 아들되게 하는 씨가 떨어져 싹이나 또 하나의 열매가 맺어질 때 비로소 생명은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는 자들이 믿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존재 가치는 씨를 받아 생명을 키울 때입니다. 씨를 가지지 않는 여자는 여자라 하지 않고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남자도 씨를 여자에게 주지 못하면 남자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다말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정분을 나누어 자식을 얻었습니다. 윤리와 도덕적으로 볼 때 도저히 용납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시 아버지인 유다는 며느리가 행한 일을 옳다고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다말은 한 집안의 대를 이어갈 맏며느리입니다. 그러데 남편에게서 시 동생들에게서 씨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씨를 받지 못하자 목숨을 걸고 마지막 일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다말은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목적을 분명히 알았기에 주위의 시선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2-3)
땅과 한 알의 밀의 관계를 바울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성도를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신부는 반드시 정결해야 합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다 지워버리고 남편을 맞아 가정을 꾸미고 자녀를 낳아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중매한 성도들에게 생명의 자녀를 낳는 일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는 정결한 신부로 남편인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맞이하여 생명의 자녀를 낳고 있습니까? 아니면 신랑의 이름으로 나의 것을 치장하고자 기도하고 성전을 짓고 직분을 받아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신앙의 오해를 하고 있는 유대 사회에 와서 말씀하신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제는 죽은 자들의 신앙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자들의 모습, 즉 생명의 어미로 생명의 자녀를 낳아 또 하나의 생명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살롬!! 주안에서 행복하세요.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주안에서 기쁨 넘치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