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간 화요일 강론>(2023. 10. 17. 화)(루카 11,37-41)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37-41
그때에 37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겉과 속이 모두 똑같이 거룩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 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루카 11,37-41)”
여기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라는
말은, “정결예식을 행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라는 뜻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정결예식은 많이 복잡한 예식이었는데(마르 7,3-4),
율법이 아니라 바리사이들만의 규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규정은 레위기에 있는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라는 계명에 근거를 둔 것이었습니다.
즉 정결예식은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 ‘깨끗하다.’는 ‘거룩하다.’와 뜻이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식사 전의 정결예식을 행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가 놀랐다는 말은, 그가 예수님을 자기들과 같은 부류의
랍비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우리와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한 것.>
정결예식과 관련해서 바리사이들이 잘못 생각한 것은
두 가지인데, 몸만(겉만) 깨끗하게 씻으면 거룩해진다고
생각한 것도 잘못이고, 자기들은 이미 ‘거룩함’에 도달한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것도 잘못입니다.
<몸만 씻으면 거룩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음’이고,
자기들은 이미 ‘거룩함’에 도달한 ‘거룩한 사람들’이라고
마음대로 자처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리고 겉만 거룩하고 속은 그렇지 않은 것은 ‘위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잔과 접시’는 눈에 보이는 몸,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생활 모습과 말과 행동 등을
뜻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이라는 말씀은, “너희는 겉으로는
‘거룩한 사람들’로 보이지만”이라는 뜻입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꾸짖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님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마태 23,5-7).”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거룩하게 보이는 옷차림을 했고,
말과 행동도 그렇게 품위 있고 경건하게,
즉 거룩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그 겉모습만 보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거룩한 분들이라고 생각했고, 항상 윗자리에 모셨고,
장터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공손하게 인사했습니다.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라는 말씀은,
“겉으로 거룩하게 보이는 것은 겉모습일 뿐이고, 너희의 내면은
‘거룩함’의 반대쪽에 있는 ‘부정함’과 ‘악함’으로 가득 차 있다.”
라는 뜻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거룩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말과 행동을 점잖고 품위 있고 경건하게 한다고 해서
거룩한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영혼과 정신과 삶 전체가 거룩해야 거룩한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라는 말씀은,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다.” 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바리사이들의 겉모습만 보고 바리사이들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속도 보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들이 거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속에 담긴 것”은 “탐욕과 사악으로 모은 재물”입니다.
“자선을 베풀어라.” 라는 말씀은, 단순히 불우이웃 돕기를
잘하라는 뜻이 아니라, 예리코의 자캐오가 했던 것과 같은
실천을 하라는 뜻입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이 말은 사실상 전 재산을 내놓겠다는 뜻입니다.
재산의 반은 사랑 실천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반은
보속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자캐오가 정말로 다른 사람 것을 횡령했는지, 했다면
얼마나 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그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재물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라는 말씀은,
“자선은 탐욕과 사악을 씻어내서 속을 깨끗하게 한다.” 라는
단순한 뜻이 아니라, “진심으로 회개하고 보속하면서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사랑을 실천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참으로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라는 뜻입니다.
<한 가지 더, “속이 거룩하면(깨끗하면) 겉은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겉과 속이 모두 똑같이 거룩해야(깨끗해야)
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나의 속은 깨끗하고 거룩하다.” 라고 큰소리치면서 아무렇게나
말하고 행동하고, 아무렇게나 옷을 입는 것은, 대단히 예의 없는
짓이고, 그것도 또한 어리석은 교만이고 위선입니다.
사실 속이(영혼과 정신이) 정말로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은
그렇게 함부로 말하지도 않고, 함부로 행동하지도 않습니다.>
[출처]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