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이동때 갈아타는 장애인콜택시… 포천→영등포 5시간 걸려
도입 20년 장애인콜택시 동행해보니
광주 지역 한 장애인이 ‘장애인의 날‘ 40주년인 20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이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교통약자지원센터 소속 콜 택시에서 하차하고 있다. 2020.04.20.
11일 오후 2시경 서울 도봉구 도봉산역 광역환승센터. 중증 지체장애인 문정길 씨(32)가 호출한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경기 포천시에서 출발한 문 씨는 의정부에서 다른 장애인 콜택시로 한 차례 갈아타고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목적지인 서울 영등포구까지 가려면 세 번째 택시로 갈아타야 했다. 30분가량 지나자 기다리던 택시가 왔다. 문 씨는 택시를 타면서 “이 정도면 택시가 정말 빨리 온 편”이라고 했다.
○ 지자체마다 갈아타고 이동해야
보행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3년 1월 장애인 콜택시가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째를 맞았지만 장애인 상당수는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만난 장애인들은 장애인 콜택시가 “예약이 어렵고, 대기 시간이 길며, 환승까지 해야 해 불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동아일보 인턴기자는 경기 포천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부터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까지 문 씨의 여정에 동행했다. 오전 9시 57분 처음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한 문 씨가 지인과의 약속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5시간 8분이 걸렸다.
대기와 환승이 없었다면 자동차로 1시간 10분이면 올 수 있는 거리(69.7km)였다. 그런데 문 씨는 콜택시 3대를 바꿔 타느라 중간에 3시간 9분 동안 대기해야 했다. 문 씨는 “장애인 콜택시는 일반 택시와 달리 중간에 2, 3차례 환승하는 경우가 많다”며 “택시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어야 하는 한겨울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이어 “이동 시간이 불규칙하다 보니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 하는 직장에는 취직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환승을 해야 하는 건 장애인 콜택시가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경기 의정부시의 장애인이동지원센터 관계자는 “콜택시 수는 한정돼 있는데 수요는 많다 보니 시 경계를 넘어가야 하면 양해를 구하고 외곽에서 내려준다”고 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전윤선 씨(55)는 “서울 용산구에서 오후 10시 40분경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했는데, 환승과 대기 등에 시간이 소요돼 다음 날 오전 6시에야 집에 도착한 적이 있다”고 했다.
○ 대수 부족한데 비장애인도 이용
동아일보 취재팀과 인터뷰한 장애인 10명 중 8명은 “콜택시를 2시간 이상 기다린 경험이 있다”고 했다. 장애인 콜택시 수가 여전히 부족한 탓이다.
교통약자법의 ‘중증 장애인 150명당 1대’를 기준으로 장애인 콜택시 보급률은 지난해 기준 서울 85%, 경기도 112%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정 기준 자체가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50명당 1대로 정해진 근거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며 “이용자인 장애인 입장이 아니라, 행정 편의로 정해진 기준”이라고 지적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 취재팀이 입수한 지난해 경기도 장애인 콜택시 운영 실적 자료에 따르면 보행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 이용한 경우는 전체 운행 건수의 47.3%로 절반이 안 됐다. 연천군의 경우 7.7%에 그쳤다. 나머지는 보행이 가능한 장애인이나 노인·임산부 등 비장애인이 이용한 경우였다.
비장애인 등의 장애인 콜택시 이용이 위법은 아니다.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 따라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11곳은 비장애인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조례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 대수가 중증 장애인 수를 기준으로 정해지는 이상 장애인 콜택시는 장애인만 이용하도록 하거나 도입대수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동석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수를 크게 늘리기 어렵다면 중증 장애인이 아닌 교통약자에게는 별도로 바우처 택시 등을 확대하고, 장애인 택시는 보행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만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조응형 기자, 소설희 인턴기자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