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트 로보' 를 알고 계시고 본 적 있으시고 또한 그 애니에서 '싸우는 아저씨들의 낭만(!)'을 느끼신 적이 있으신 분?
92년부터 1년에 하나씩 나온 OVA 죠, 건담 08소대와 함께 출시 기간에 얽힌 에피소드로 인해 절대 잊을 수 없는 애니.
아니, 꼭 그것 때문에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구요^^; 실제로 이 애니를 보게 되면 1년에 한 개 밖에 못 만들 법 하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왠만한 크기의 TV 화면으로도 부족할 것 같은, 화면 밖에서도 로보가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하는 스케일 큰 연출, 탄탄한 작화, 거기에 비장감 넘치는 배경 음악까지,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투니에서 심야에 재방송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게 더빙판이 있는지도 몰랐고 코드 3번이 나왔다는 사실도 몰랐었거든요.
그때 발견하게 되어 참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리마스터링 에디션까지 나와 있어서 서슴 없이 지르고, 이제는 아무 때나 편할 때 볼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인이다보니 이제사 하루에 한 개 꼴로 볼 수 있게 됐는데, 아아, 바로 몇 시간 전까지 대종 형님과 충격의 알베르토 님의 그 짠...한 마지막 전투 장면을 봤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아군을 초월한, 진정한 실력자들끼리의 영혼의 교감이랄까, 맨 주먹만이 모든 것인 중년의 낭만이랄까, 크흑;)
이규화 님은 투니에서 뵙기 힘든 목소리인 만큼 대종 형님의 카리스마가 더욱 빛나 보였더랍니다.
어디선가 김광국 님께서 자이언트 로보를 대작이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네, 작품 자체도 그렇지만 김광국 님의 '충격의' 알베르토도 확고한 존재감이 넘쳐나십니다.
구선호(=쿠사마 다이사쿠) 역의 이명선 님도 원판 야마구치 캇페이 씨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야마구치 씨는 녹음할 때 연출가가 '힘을 빼고 애마에게 말을 걸 듯이 로보에게 말해라' 는 주문이 있어서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했다고는 하는데 (DVD 서플에서 그러더군요) 힘이 너무 빠져서^^; 야마구치 씨 특유의 활달한 란마 분위기의 연기도, 앞으로 닥칠 7일 간의 모든 시련에 대해서 아직 대비가 되지 않은, 그야말로 거대 로봇 자이언트 로보를 혼자만이 조종할 수 있다는 무모할 정도의 자신감을 느끼게 해 주는 철없는 소년 연기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분 특유의 비음은 이누야샤 정도의 소년 역에는 괜찮아도 다이사쿠 연령대의 소년에는 좀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제 의견으로는.)
그에 비해서 이명선 님의 선호 연기는 약간 어른스러운 듯한 느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파푸아란 말이지...OTL'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다들 그러시듯이 성우의 변신은 무죄. (그런데 파푸아는 별로 화제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군요, 제가 보기에도 정글 류의 애니인데 딱히 끌리는 구석이 없달까,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일본 애니 특유의 (우리와는) 어긋난 개그 센스로 넘쳐나는 애니들도 이제는 식상해진 건가... 싶기도 했네요.)
양정화 님의 은령이야 뭐, 더할 나위 없이 고우면서도 애절한 연기셨고요.
아아, 90년대 초를 풍미했던 여성 캐릭터 은령, 그 비극적인 마지막 모습을 또 어떻게 지켜봐야 할지;
'침묵의' 중조 사령관 역을 하신 김정은 님은 요즘 한참 탐정학원 Q 를 보고 있는 터라 처음에는 못 알아듣고 '정승욱 님이신가? 아닌데? = =;;;' 하고 처음에는 헤맸습니다.
그나저나 이 '침묵의' 중조라는 캐릭터가 참, 대단한 캐릭터죠, 맨 주먹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정말 멋진 아저씨.
한원자 님 맡으신 양지 캐릭터도 참 멋진 누님이셨습니다, 대종 형님과 정말 잘 어울리는 여걸이셨는데...
김환진 님의 1인 2역, 나이든 포글러 박사의 목소리와 젊은 환야의 목소리를 아주 절묘하게 구분을 지으시더군요.
홀로그램인지 마술인지 초능력인지, 어쨌든 그런 능력으로 포글러 박사의 모습을 하고 은령 앞에 나타나서 케이스를 내놓으라고 구슬리다가 비행선이 흔들리는 바람에 영상이 흔들리면서 이 두 캐릭터의 목소리가 겹쳐서 나오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 놀랐습니다.
둘 다 김환진 님 목소리인데 소리에 층이 생기더라구요, 참 대단하십니다.
주절주절 썼는데, 어쨌든, 벌써 몇 년 전에 원판 동영상으로 보고 지금 다시 보니 모든 게 다 새롭네요.
그때와는 또 다르게 한국 성우 분들에게도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나름대로 청력도 키웠고 해서, 감상하는 재미가 색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