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반까지 사도마을로 오란다.
초정의 출근 전에 나가자니 백수로서는 조금 미안하다.
해창만 들판 가운데서 차를 멈추고 팔영산을 찍어본다.
중구섬 굴을 사던 집 앞 선착장에도 들러 섬을 찍어본다. 맘에 들지 않는다.
무얼 찍고 싶은지 주제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남긴다.
사도 마을에 20분쯤 도착해 마을 앞을 둘러봐도 김대장 등 아무도 안 보인다.
양사쪽 가는 길로 짐작되는 포장길을 잠깐 올랐다가 바다를 보며 다시 돌아온다.
30분에 정류장 부근이라고 메시지가 뜬다.
차 둔 곳이 멀지만 걸어간다. 연초록 조끼를 입은 어르신들이 잔뜩 모여서 날 쳐다본다.
일행은 다섯 뿐이다. 유상선 형이 배낭도 없이 처음 참가하셨다.
김대장의 구령에 맞춰 몸푸는 체조를 조금 한다.
마을 뒷길로 올라간다. 능정가는 길인가, 윗집들로 가는 길인가?
효열비를 혼자 보고 은행나무가 나뉘어 내려갔다는 곳을 지나 마을 골목으로 내려간다.
회관에 어르신들이 뭐하냐고 물어본다.
내가 걸었던 곳을 지난다.
당산나무가 서 있는 고개에서 벌초하고서 웃통벗고 라면 먹던 이가 차로 들어가 윗옷을 입는다.
그에게 사진 찍어달라한다. 비석이 여럿 서 있는 묘지를 가리키며 경기도에서 혼자 벌초하러 왔댄다.
소먹이며 놀았던 곳이라며 다정하게 말을 붙인다.
시멘트 포장이 된 해안 농로?찻길을 걷는다.
오르내리막이 있지만 왼쪽은 산 오른쪽 밭과 논, 가끔 나무가 가리지만 바다가 가깝다.
작은 섬이 뻘 위로 올라와 있다.
사위질빵인지 의심한 하얀 꽃은 김희라 선생이 찾더니 산으아리란다.
한시간 남짓 걸어 길 가에 앉아 쉰다. 난 바다로 내려가려는데 밭 가로 튼튼하게 막힌 철망과 그물에 걸려
다시 길로 올라오느라 뒤쳐졌다. 멧돼지나 고라니 막는 거겠지.
유미정 선생이 얼음과자를 보냉비닐봉투에서 꺼내 나눠주신다.
고개를 넘어가며 뒤돌아보니 사도마을이 와도 앞에 거의 붙어 있다.
해창만 방조제 막기 전을 상상하니 물살이 셌을 것이 보인다.
첨절제영을 설치한 수군 요새임을 알겠다.
한참 후 나타난 영남만리성 안내판 앞에서 김대장은 왜 이런 이름이 붙였는지 모르겠단다.
영남이란 이름은 최근 점암면에서 나뉘어서야 생긴 이름이라며 동네 어른이 한 애기란다.
양사방조제를 지나 양화마을을 지난다.
길 가에 수확하지 않은 작은 수박과 노각오이 등이 널렸다.
난 탐을 내지만 따면 안 된다. 누가 심고 따가지도 못할 사정이 생겼겠지.
유상선 형은 앉더니 작은 수박 하나를 모자로 감싸 넣는다.
구부러진 찻길 가엔 분홍 무궁화가 활짝 피었다.
지붕없는 미술관 전망대에 닿으니 12시 반을 넘겼다.
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다. 맥주를 아껴 조금만 나눠주고 내가 마신다.
김밥 값이라고 10만원을 담은 봉투를 전하니 김대장은 유미정 선생께 주며 총무한테 주란다.
너무 적은가 주면서도 괜히 부끄럽다.
김희라 선생은 오후 수업이 있다고 떠나고 남은 넷이서 남열리로 걷는다.
동네 앞 모래사장을 걸으며 하얀 파도를 찍는다. 모래사장은 어지럽다.
큰 해수욕장의 파도는 더 크다.
갈매기들이 떼지어 앉아있다가 우리가 다가가자 앞으로 자릴 옮겨간다.
7부 반바지를 입은 김대장은 신발을 벗고 파도 사이를 뛰어 다닌다.
류미정 선생은 그런 김대장의 동영상을 찍는다.
파도 속에서 한 사나이가 서핑 보드를 들고 나온다.
전망대 앞으로 가자 파도는 더 커진다.
전망대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과 산길을 먼저 오른다.
김대장은 금방 따라오며 마지막 계단에서 뛰기도 한다.
한참 후엔 유상선 형은 체력이 저질이라며 땀에 젖어 올라오신다.
고흥 사람들에 노인이라고 입장료는 내지 않고 들어간다.(한사람은 냈던가?)
올라가 차를 유상선 형이 계산하는데 난 얼음과자를 먹는다니 차를 마시란다.
나중에 또 기어이 얼음과자도 사 오신다.
김대장이 먼저 내려가 차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사도에서 차를 가지러 잠깐 걷고, 집으로 오며 또 해창만 가운데서 천등산 쪽을 바라본다.
편치 않은 허리가 고통을 주며 소식을 알리고, 오랜 친구인 왼쪽 복숭아씨도 부풀어 자기를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