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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삶을 살라 (딤전6:6-10절)
어느 낚시꾼이 호수에서 낚시를 하다가 이상한 물고기를 한 마리 낚았습니다. 그 고기는 금빛 색깔을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고기가 입을 열더니 낚시꾼에게 말을 합니다. “제발 저를 다시 물속에 넣어서 살려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소원을 세 가지 들어드리겠습니다.” 낚시꾼은 처음에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고기가 자꾸 애원을 하자 마음을 돌려 대답을 했습니다. “그럼 좋다. 소원은 셋이 아니라 다섯 가지를 들어주면 너를 살려 주마” 그러자 고기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저는 세 가지 소원밖에 들어줄 수 없답니다.” 그러자 낚시꾼은 흥정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럼 네 가지 반만 들어다오” 고기는 기진맥진하여 대답하기를 “저는 셋 밖에는...” “좋다 네 가지로 하마 네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면 너를 당장 살려 주마” 그런데 고기의 대답은 없었습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이후였습니다. 낚시꾼은 자기의 탐심으로 말미암아 물고기도 잃고 소원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탐심은 헬라어로 “더 움켜쥔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 움켜쥐려고 할 때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빈손뿐입니다.
*딤전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부하려 한다.’는 헬라어 ‘볼로메노이’ 는 ‘의도한다’ ‘갈망한다’ ‘결정한다’ 의 뜻으로 부자가 되려는 강한 욕구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하려 한다는 그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부를 자기 삶의 최종, 최대, 최선의 목표로 삼고 돈만을 모든 행복의 조건이며 삶의 철학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인류공영(人類共榮)의 법칙을 무시하고 이웃에게 착취와 불의를 일삼기가 일수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돈을 삶을 위한 건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삼습니다. 사람에게 일단 돈이 목적이 되면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과 양심이 파괴됩니다. 이럴 때 돈은 모든 죄의 출발이자 근거가 됩니다.
1. 사람이 탐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필연적으로 3단계의 결과를 초래합니다.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마귀의 시험과 올무에 빠져 모든 인간관계와 사건을 재물 축적의 기회와 수단으로 삼게 됩니다.
*벧후2:15-16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를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발람은 하나님의 종으로 일시적 부름을 받았었지만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이스라엘을 도리어 저주하는 과오를 범하고 맙니다. 모압 왕 발락이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의 손에 복채를 가지고 발람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도록 청을 합니다. 그때 발람은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고 여호와께 그 사실을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너는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발람이 그대로 순종하자 모압 왕 발락은 더 높은 고관들을 많이 보내어 발람을 유혹합니다. 발람을 높여 존귀하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발람은 ‘내게 가득한 은금을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한다.’고 거절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지 못하고 여호와께 다시 묻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발람에게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게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발람이 자기 나귀를 타고 모압 고관들과 갈 때에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그를 막으셨습니다. 나귀의 앞길을 세 번이나 막으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발람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데 ‘내 앞에서 네 길이 사악하므로 내가 너를 막았다.’고 하셨습니다. 발람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간파하시고 그를 막으신 후에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만 말하라.’고 거듭 다짐했습니다. 결국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지 못하고 그들을 축복하며 오히려 모압을 저주했던 것입니다.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면 해로운 정욕에 빠지게 되는데 재물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영혼의 눈을 어둡게 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눅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낭비하더니--
먼 나라는 지역적으로나 거리상으로 멀다는 뜻보다는 아버지와 교제가 단절된 나라이며 아버지와 아무 상관이 없이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허랑방탕은 영혼의 눈이 어두워져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를 떠나 세상 나라에서 세상의 정욕대로, 세상 사람들의 안목대로. 세상 사람들의 탐욕적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내일 죽으리니 오늘은 먹고 마시자’라는 식으로 타락과 방종과 안일의 육적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돈을 지나치게 추구하게 되면 침륜과 멸망 즉 몸과 영혼의 완전한 파멸에 이르고 맙니다.
*삼상15:22-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전리품을 취한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동시에 왕의 지위에서도 쫓겨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며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러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철학자 비온과 데모 크리투스는 말하기를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척도이다.’ 라고 하였고, 영국의 토마스 아담스는 말하기를 ‘탐욕스런 부자는 자신을 이 세상에서 분리시키고 하나님은 그 사람을 저 세상에서 분리시킨다.’고 하였으며, 영국의 시인 A. 코울리는 말하기를 ‘가난은 다소 부족한 것이고, 사치는 많이 부족한 것이며, 탐심은 모든 것이 부족한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2. 왜 돈을 사모하면 파멸에 이르게 될까요.
인간의 재물 추구는 쾌락 추구와 마찬가지로 끝까지 만족할 수 없는 갈증과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전5:10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로마 격언에 ‘돈은 마치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이 마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재물로 인하여 결코 참된 만족감을 느낄 수 없음을 잘 지적한 말입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자는 충분하다고 느끼지 않으며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재물에 대한 인간의 빗나간 욕심은 결코 통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격언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합2:5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고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
인간의 재물 추구는 사람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경쟁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잠15:27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여기서 ‘이익’이라는 말 ‘바차’는 ‘약탈한 것’ ‘부정하게 획득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는 부정한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사악한 재판관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 앞에 극악한 범죄 행위 때문에 자신은 물론 자기 가족들까지 준엄한 하나님의 현세적, 내세적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주는 행복은 잠시뿐이요 일시적이지만 반면에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은 점점 커져 가기 때문입니다.
*약1:10-11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일반적으로 부한 자들은 자신의 부요함을 인하여 영적인 교만함을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지상에서 자신이 소유한 부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변경시킬 수 없으며 부가 일시적인 것임을 깨달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처럼 낮은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부를 자랑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요한 자라도 그 부요함을 영원히 누리지는 못합니다. 마치 꽃이 시드는 것처럼 부도 생명도 곧 시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사람을 죄의 길로 인도하며 타락과 사망의 길에 빠지게 합니다.
*시10: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시78:18 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잠1:18-19 그들이 가만히 엎드림은 자기의 피를 흘릴 뿐이요 숨어 기다림은 자기의 생명을 해할 뿐이니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이와 같이 돈을 향하여 손을 뻗치고 열망하게 되면 자신이 먼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는 옛날 희랍의 미다스 왕에 대한 전설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황금을 좋아하던 탐욕의 왕이었습니다. 그의 평생의 소원은 황금을 아주 많이 가져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섬기던 디오니수스 신에게 기도하기를 “신이여, 내가 내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게 하소서.” 라고 날마다 외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소원은 이루어져서 자기의 손이 닿는 것마다 다 황금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는 먼저 자신의 가재도구를 만지기 시작합니다. 황금의 의자, 책상, 침상, 나아가 황금의 옷을 보고 너무 좋아서 미칠 듯이 기뻐했습니다. 한참을 뛰어다니다 문득 목이 말랐습니다. 컵으로 물을 따라서 마시려하니 물이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시장해서 음식을 먹으려니 음식도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너무나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데 마침 사랑하는 외동딸이 궁전으로 나옵니다. 딸에게 자기의 황금 왕궁을 보여주려고 그 손을 잡아 이끄는 순간 그 딸도 황금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때 왕은 자신의 욕망이 화를 자초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탐욕이 자기를 찔러버렸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전하기를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된다.” 고 가르쳤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은 정의하기를 “현자란 지상의 행복과 불행에서 완전히 독립하여 마음의 평정을 누리는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마치 불교에서 도를 닦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금욕주의적인 경건에 도움은 줄지 모르나 인생의 참된 만족은 주지 못합니다. 이단의 사상을 전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만족은 그 원천이 물질적인 것에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물질이나 돈이나 재물은 인생에게 참된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오직 평강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얻어지는 자족이라는 헬라어 ‘아우타르케이아스’를 말하고 있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는 날마다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경건의 삶의 바탕에 있는 것은 오직 자족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러한 자족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세상적인 유혹과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둠으로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물질의 많음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습니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3. 경건에 큰 이익을 주는 자족하는 삶은 어떤 것입니까.
자족하는 삶은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딤전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욥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전5:15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전5:17 일평생을 어두운 데에서 먹으며 많은 근심과 질병과 분노가 그에게 있느니라.
1923년 미국의 시카고 에지워터 비취 호텔에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재벌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있습니다. 세계 제일의 철강회사 사장 찰스 시웹, 세계 제일의 전매업자 아이버 크루츠, 뉴욕 증권교환소 회장 리차드 위트니, 미합중국 대통령 각료인 알버트 폴, 윌 스트리트 금융가의 곰이라 불리는 제시 리버모어, 세계 최대의 공익사업 전담회 사장 사무엘 인술, 인터내셔날 세틀먼즈 은행 총재 등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미국의 8대 재벌로서 아메리카 합중국의 예산보다 더 방대한 재산을 가지고 언론의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25년 후 그들의 행방을 취재한 기자가 놀라운 사실을 공개하였습니다. 강철회사 사장은 남의 빚에 얹혀살다가 죽을 때까지 거지의 신세를 면치 못하였고, 전매업자는 권총으로 자살을 했으며 증권교환소 회장은 감옥에서 징역살이를 하였고, 대통령의 각료를 지낸 사람은 감옥에 투옥 중 겨우 집에서 임종을 치렀으며, 금융가의 곰도 끝내 자살로 인생을 마감하였고, 나머지 사람들도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는가 하면 파산으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며 겨우 살아갔습니다. 영국 속담에 ‘돈은 모든 사람의 손을 거쳐 온 세계를 돈다.’ 라고 합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자족하는 삶은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딤전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히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족한 줄로 안다는 것은 충족감, 넉넉함, 만족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오늘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야게의 아들 아굴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잠30:7-9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저 로마제국의 초기에 세 번이나 세계를 정복하여 개선의 영광을 받은 바니우스 큐리우스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세계의 영광인 황제의 자리가 주어졌으나 그 자리를 거절하고 그는 모든 임무가 끝났을 때 조그마한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여생을 조용히 보내었습니다. 그에게 수많은 사절단이 와서 예물을 증정하였으나 그는 거절하면서 하는 말이 “ 이 농장에서 이런 음식을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돈과 명예는 필요한 것이 못 됩니다. 여러분은 돈과 명예를 가진 자보다 그 가진 자를 정복하는 것을 더 큰 명예로 생각하십시오.” 라고 하였습니다.
자족하는 삶은 선한 일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딤전6:18-19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인간의 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그 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관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고 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하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의 어느 유명한 랍비의 이야기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상속받은 모노바즈라는 랍비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기근이 닥치자 그는 그 모든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묻기를 “그대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산을 어찌 일순간에 다 허비하느냐” 고 힐책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기를 “내 조상들은 보화를 땅 밑에 쌓았으나 나는 하늘에 쌓았으며 내 조상들은 이 세상을 위해 재산을 쌓았으나 나는 내세를 위해 쌓았노라,” 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 정조 때에 제주도에 살았던 김만덕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출생은 양민으로 태어났으나 11살 되던 해에 육지를 왕래하며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풍랑에 돌아가시고 이듬해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고 만덕이는 살기 위하여 천민이 하는 관기로 들어가 기생이 됩니다. 30세가 되면서 그동안 열심히 모은 재물로 주막을 하나 차려 육지를 오가는 장사꾼들을 불러들였고 장사의 정보를 얻어 제주도의 물건을 육지에 팔고 육지의 물건을 제주도에 팔면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제주도 제일 부자 즉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나이 50세가 되었을 때에 제주도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1/3이 굶어 죽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녀는 그동안 모은 모든 재물을 다 팔아 육지에서 쌀을 사서 관에 바쳐 제주도민을 규휼하였고 많은 생명을 건졌습니다. 이 사실이 왕에게 보고되자 정조는 제주도 관찰사에게 명령을 내려 김만덕이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라고 하였습니다. 만덕이는 두 가지 소원을 말했는데 하나는 육지로 가서 한양에 올라가 임금님이 사시는 궁궐을 한 번 바라보는 것이고, 둘째는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조 임금님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이유는 제주도민은 육지로 갈 수 없다는 나라의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조는 그 법을 고쳐서 만덕이를 한양으로 불러들였고 그녀가 머물며 지낼 곳을 마련해 주고 그녀에게 의녀 감독이라는 벼슬을 내려 천민이지만 궁궐로 부르고 만조백관 앞에서 왕을 배알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그녀의 일대기를 책으로 편찬하여 백성과 관리들이 읽게 하였으며 금강산 구경도 시켜 주었습니다. 당시에 금강산 구경은 아무나 할 수 없었습니다. 만덕이는 한양에서 일류 스타가 되었고 많은 고위 관리들이 그녀를 만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후 만덕이는 제주도로 돌아와서 장사를 계속하였고 70여 세에 죽을 때에 수많은 재물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부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이토록 선한 일을 하는데 하물며 하나님 백성이겠습니까.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의 시가 생각납니다.
밑바닥에 있으면 떨어질 염려 없고, / 낮은 자는 오만 부릴 염려 없도다. / 보잘 것 없는 비천한 자는 /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행복을 얻는다. / 내게 있는 것은 지극히 적지만 / 이 내 마음에 충족하도다. / 주여 다시금 충만하게 하여 주소서 / 구원하심은 오직 당신에게만 있나이다. / 하늘을 지향하는 순례자들에게는 / 이 세상 것으로 가득 참이 오히려 무거운 짐 / 지금은 적게 받고 하늘에서 축복받나니 / 어느 시대에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으랴.
우리는 부할수록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겸손한 마음으로 선한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범사에 복을 받아 부한 자가 되어서 탐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삶을 살아 선한 일에 부요한 성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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