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채륜 편: 제3회 제지에 성공하여 제후가 되다
(사진설명: 채륜 능묘의 일각)
제3회 제지에 성공하여 제후가 되다
등 황후가 채륜이 올린 종이를 보니 가볍고, 엷고, 부드럽고, 강인했으며 옅은 노란 색에 표면이 반들반들했다.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등 황후가 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종이를 무슨 재료로 만들었소? 또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소?”
채륜은 여러 가지 종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마마께 아룁니다. 이 종이는 낡은 그물로 만든 것이라 소신은 망지(网紙)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종이는 헌 옷으로 만든 포지(布紙)이고 이것은 모시로 만든 마지(麻紙)입니다.”
등 황후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채 상시, 그대는 신선이시오? 어떻게 무쇠로 황금을 만들고 쓸모 없는 이런 것들을 이렇게 유용한 물건으로 만들었소? 얼른 말해보시오. 이런 종이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마마께 아룁니다. 원료는 다 다르지만 제조과정은 비슷합니다. 먼저 원료를 잘게 찧은 후 잿물에 끓입니다. 그리고 이어 이런 원료들을 양지바른 쪽에 널어두어 햇볕도 쪼이고 비도 맞게 합니다. 그래야 종이 색깔이 하얗게 됩니다. 세 번째는 원료를 물에 담가 발효시켜 펄프로 만들고 네 번째는 도구로 종이를 뜨며 다섯 번째로 뜬 종잇장을 햇볕에 건조시키면 됩니다. 이밖에 더 자세한 공법도 있습니다만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공법을 더 개선해야 합니다. 그래서 종이의 품질이 더 좋고 제조 공법도 더 편리하도록 말입니다.”
채륜의 설명을 들은 등 황후가 더욱 놀라며 감탄했다.
“채 상시, 그대는 정말 천재시오! 그러니 폐하께서 늘 채 상시가 만든 병기는 이 세상에서 누구도 비하지 못한다고 칭찬하시는 구만. 빨리 이 종이를 폐하께 보여드리시오. 그러면 반드시 폐하께서 큰 상을 내리실 거요.”
채륜이 웃었다.
“마마께 아룁니다. 폐하께서는 벌써 보시고 만족해하셨습니다. 폐하께서 마마께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폐하께서 또 뭐라고 말씀하셨소?”
“폐하께서는 더 많은 저렴한 원료를 찾으라고 소신에게 명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마마께서 황실의 도서를 정리하시는데 많은 종이가 필요하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등 황후가 머리를 끄덕였다.
“내 말이 그 말이오. 폐하의 명을 따라 행하시오.”
“소신 폐하와 마마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제는 채륜을 용정후(龍亭侯)에 봉하고 섬서(陝西)의 양현(洋縣)을 임지로 내렸다. 채륜은 자신의 봉지를 돌아보러 갔다가 뜻밖의 경사를 당하게 되었다.
채륜은 내시였으나 현재는 후작에 봉해졌고 중상시라는 직위도 구경(九卿)에 들며 더욱이 그는 황제의 측근이었다. 이에 양현의 현령(縣令)은 흠차대신(欽差大臣)을 영접하듯 채륜을 동행해 그의 임지를 둘러 보았으며 자신의 아들을 채륜의 양자로 들이게 해서 친척도 맺었다.
현령은 용정후에게 잘 보여 사적인 이익을 챙길 생각만 했지만 채륜의 마음 속에는 오로지 제지에 관한 일뿐이었다. 하루는 현령이 채륜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해서 술을 마시는데 채륜은 요리사가 만든 면피(面皮)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보기에 요리사가 면피를 만드는 과정이 제지 과정과 아주 유사했다. 채륜은 면피에서 종이제조의 효율성 향상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급히 수종더러 마지(麻紙)을 가져오라고 시켜 종이에 적었다.
현령이 감탄했다.
“채 대인님께서 이토록 근면하시고 항상 제지를 염두에 두시니 그렇게 큰 공을 세우시네요.”
그 날 채륜은 술을 마실 대신 현령의 안내로 근처의 산을 한 바퀴 돌았다. 현령은 처음에 채륜이 자신의 임지를 익숙히 하려는 줄 알았는데 웬걸, 채륜은 산에서 종이의 원료를 찾고자 했다. 산 등성이에 이르니 온 산에 키 높은 닥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채륜이 닥나무 가지를 꺾다가 손이 무언가에 찔려 피가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닥나무 잎마다 가시가 자라나 있었다. 채륜은 가시에 찔린 손은 살피지도 않고 현령에게 말했다.
“이 닥나무는 잎에 가시는 많아도 나무 껍질이 질겨서 끈으로도 만들 수 있겠소.”
자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륜은 또 무언가를 생각하고 말을 이었다.
“끈을 만들 수 있으면 삼과 비슷하다는 말인데 어쩌면 닥나무로 종이도 만들 수 있겠소.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면 원가를 크게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서든 종이 원료를 취할 수 있겠소.”
채륜은 자세히 닥나무를 살폈다. 닥나무 껍질은 검은 껍데기처럼 단단했다. 채륜이 또 현령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이 닥나무를 가지고 종이를 만들어 봐야겠소.”
“가능하겠습니까? 이 닥나무 껍질이 너무 단단해서 말입니다.”
“잿물을 많이 두고 며칠 담갔다가 삶으면 가능할지도, 한 번 해보면 알 것이오!”
현령은 금방 대룡하(大龍河) 강 기슭에 제지 작업실을 하나 짓고 일할 사람들도 불러 모았다. 하지만 첫날부터 상황이 발생했다. 닥나무 껍질이 거북의 껍데기처럼 단단해서 아무리 해도 잘게 부술 수 없었다. 그날 밤 채륜은 잠들지 못하고 온통 종이 생각만 했다.
“선인이시여, 어디 계십니까? 빨리 오셔서 저에게 비법을 전수하여 주십시오!”
채륜이 종이 생각만으로 조급해 하는데 어디선가 절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채륜은 몸을 흠칫 떨었다.
“선인께서 또 가르침을 주시는구나! 쌀을 빻는 절구 공으로 닥나무 껍질을 부수자.”
날이 밝자 채륜은 현령을 찾았다.
“돌절구와 쇠로 된 절구 공을 준비해주시오. 그래도 부술 수 없는지 한 번 보겠소.”
현령이 급히 자리를 뜨자 채륜은 대룡하 강기슭을 거닐며 이렇게 생각했다.
“닥나무 껍질로 종이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이 곳에서 종이를 대량으로 만들어야 하겠다. 닥나무도 이렇게 많고 강물도 이렇게 맑은 이 곳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제지의 땅이니 말이다!”
과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기 마련이었다. 채륜은 양현의 용정에서 끝내 닥나무로 저지(楮紙)를 만들어 냈다. 저지는 마지보다 더 하얗고 더 엷었으며 더 부드러웠다. 채륜의 천재적 발명이 성공한 것이다. 여기서 부연 설명할 것은 후세 사람들이 닥나무로 유명한 선지(宣紙)를 만들 수 있은 것은 채륜의 공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채륜은 저지를 한화제에게 올렸다. 한화제가 말했다.
“이렇게 저렴한 원자재로 이렇게 고급스러운 종이를 만들다니. 용정후의 창조와 발명은 참으로 천지도 놀라고(驚天地) 귀신도 울겠소(泣鬼神)! 짐이 이 종이에 이름을 하사하리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그대의 노고와 큰 공을 잊지 말도록 채후지(蔡侯紙)라 부릅시다.”
채륜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은을 표하며 주청하여 아뢰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신은 용정에서 대대적으로 종이를 만들 생각입니다. 원자재가 많고 강물의 수질이 좋은 그 곳은 하늘이 내린 제지의 땅입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십시오!”
“용정에서만 종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원자재가 있는 곳이면 모두 종이를 만들 수 있소. 이는 나라와 백성들에게 좋은 일이오.”
“영명(英明)하십니다! 소신은 제지의 비밀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북방에서는 닥나무와 야생 삼으로 종이를 만들고 남방에서는 대나무와 풀로 종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용수초처럼 질긴 풀을 가지고도 종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제지의 원자재는 많으니 이제는 무거운 죽간이나 비싼 비단에 책을 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일대의 혁명이자 하늘도 놀라고 귀신도 우는 창조인 채륜의 제지는 인류 문명의 진보를 크게 떠밀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