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와 바르나바가 갈라서게 된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바오로는 전에 설립했던 공동체들을 살펴보기 위해 바르나바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바르나바는 조카 마르코를 데려가려고 했으나, 바오로는 먼젓번에 중도하차 한 그를 데려갈 수 없다고 거절한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감정이 격해져서 헤어진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고, 바오로는 실라스를 데리고 시리아와 킬리키아로 간다(사도 15, 36-39). 이후 바르나바의 행적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는다.
사실 바르나바는 바오로와 연결해서 언급된 경우가 대부분이다(39번 중 34번). 그만큼 바르나바에게 바오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절친한 관계였다. 바오로에게 있어 바르나바도 일생 감사해야 할 은인이다. 새사람으로 변화한 바오로를 제일 먼저 믿어주고 변호해 준 사람이 바르나바다(사도 9,27). 고향으로 내려가 침체되어 있을 때도 일부러 찾아와 교회에 연결해 주었고(사도 11,25), 그의 능력을 인정하여 선교 여행길에 동행시킴으로써 바오로를 우뚝 서게 한 공헌자도 바르나바다. 그야말로 바오로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의 별명처럼 위로자(바르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인생의 동반자가 아니었던가.
그토록 중요한 인물, 바르나바와 결별했다는 것은 바오로에게 큰 아픔으로 오래 남았을 것이다. 사실 이 사건의 배후에 또 다른 갈등이 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일이 서간에서 발견되는데, 안티오키아에서 바오로가 바르나바의 태도에 분개한 일이 있었다(갈라 2,13). 베드로와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이 들어오자, 베드로와 바르나바는 슬며시 일어나 함께 식사하지 않은 척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바오로가 그 자리에서 면박을 퍼부었는데, 아마 이런 성격의 차이가 둘을 헤어지게 한 보다 근본적 이유일지도 모른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다. 한쪽에선 정면에서 일을 처리하려 했고, 다른 쪽에선 천천히 보아가며 충격을 줄이려 했다면? 한쪽에선 단호히 결정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다른 쪽에선 좀 더 유연하게 다루려했다면? 한쪽에선 내쳐야할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다른 쪽에선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 주어야 할 사람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두 사람의 성격이 다르고 일의 대응방식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신심 깊은 사람들에게도 갈등이 일어나고 분열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됨됨이와 믿음의 깊이는 드러난다.
바르나바가 사적인 감정에만 골몰한 사람이라면, 후일 마르코를 바오로에게 보내 일을 돕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콜로 4,10). 바오로 역시 적대자들의 사냥감이 되었을 이 사건에 관해 어디서도 공개적으로 자기 입장을 개진한 적이 없다. 이는 바르나바와 언제든 화해할 가능성을 활짝 열어둔 것이다. 그랬기에 바오로가 후일 바르나바의 조카 마르코를 흔쾌히 받아들여 협력자로 키울 수 있었다(필레 1,24).
성격과 일처리 방식이 달라 친밀했던 관계가 깨어진 적은 없는가?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보며, 심히 부끄러울 뿐이다.
리스트라에서의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