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비구들이여, 비유컨대, 임금의 군사로서 멀리서 번갯불처럼 빠르게 활을 쏘아 먼 저쪽에 있는 건물을 용하게 맞추면, 그는 임금의 호의병이 되는 것처럼, 비구도 이 세 가지 일을 능히 할 수 있으면, 세간의 공양을 받을 자격을 갖추어, 위없는 복밭이 될 것이다. 첫째, 비구가 멀리서 활을 쏜다는 것은, 모든 것에서 나 또는 내 것이라는 집착을 떠나, 실다이 바른 지혜를 가지는 것이다. 둘째, 비구가 번갯불처럼 빠르게 활을 쏜다는 것은, 세상의 괴로움을 실다이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실다이 알며, 괴로움이 없어진 깨달음을 실다이 알고,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실다이 아는 것이다. 셋째, 비구가 큰 물건을 쏘아 맞춘다는 것은, 큰 무명의 어두움을 쳐부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갖춘 비구는 세간에 위없는 복밭이 된다.
16 비구들이여, 탐욕이 어떤 것인가를 바르게 알라. 그래서 그것을 떠나기 위해서는, 공ㆍ무상ㆍ무원의 세 가지 선정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성냄과 어리석음과, 그 밖에 모든 번뇌가 어떤 것임을 바르게 알라. 그래서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도, 공ㆍ무상ㆍ무원의 세 가지 선정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17 비구들이여, 부처가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모든 행은 항상됨이 없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또 모든 행은 괴로움이다. 모든 법은 내가 없다는 것도 또한 그러한 것이다. 부처는 이 세상에 나와서 이 사실을 깨달아 이것을 분명히 모든 사람들 앞에 보인 것이다.
18 비구들이여, 천 가운데서도, 머리털로 짠 베천은 가장 하급품으로서, 추울 때는 차고 더울 때는 따스하며, 냄새는 추하고 살닿음도 거칠다. 이와 같이 모든 사문 가운데서도 맛카리고살라는 가장 하등 인물로서 '업도 없고 갚음도 없으며, 노력도 필요 없다'고, 악한 소견을 지껄이고 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과거의 여래도, 미래의 여래도 업을 말했고, 갚음을 말했고, 노력을 말했고, 또 말할 것이다. 현재의 여래인 나도, 이제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어리석은 저 맛카리고살라는 삼세의 여래에 반대해서 업도 없고, 갚음도 없고, 노력도 필요 없다고 지껄이고 있다. 마치 강 어구에 쳐놓은 그물이, 많은 고기들의 불행과 고통과 멸망이 되는 것처럼, 저 맛카리고살라도 많은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과 멸망이 되는 것이다."
19 부처님은 또 가비라성으로 돌아와 성밖에 있는 니구류수 동산에서 설법하셨다.
"비구들이여, 이름이 드러난 비구는 세 가지 법에 의해서, 많은 중생의 손해와 불행이 된다. 세 가지 법이란, 남으로 하여금 법에 맞지 않는 몸의 업, 법에 맞지 않은 말의 업, 법에 맞지 않는 뜻의 업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름이 드러난 비구는 세 가지 법에 의해 많은 중생의 이익과 행복이 된다. 세 가지 법이란, 남으로 하여금 법에 맞는 몸의 업, 법에 맞는 말의 업, 법에 맞는 뜻의 업을 행하게 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관정을 받은 크샤트리아 족의 임금은, 한평생 세 가지 경우를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기가 난 곳과, 자기가 관정을 받아 임금이 된 곳과, 전장에 나가 큰 승리를 거든 곳이다. 그와 같이 비구도 세 가지 장소를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곧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와 비구가 된 곳과, 이것은 고통, 이것은 고통의 원인, 이것은 고통이 없어진 것, 이것은 고통을 없애는 길이라고 실다이 안 곳과, 모든 번뇌를 없애서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 지혜의 해탈을, 이 세상에서 스스로 깨달아 얻은 곳이다. 이것이 비구로서 한평생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곳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 가지 인간이 있다. 희망이 없는 사람과 희망이 있는 사람과 희망을 초월한 사람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 이란, 백정ㆍ사냥꾼ㆍ농장이ㆍ수레장이ㆍ쓰레기 치는 이와 같은 사람으로서 미천한 집에서 태어나, 집도 없고 밥도 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람, 그 위에 얼굴은 추하고, 몸은 병들고 또 불구자로서, 걸음도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저 크샤트리아 족의 누구누구는 크샤트리아의 관정법에 의해서 임금이 되었다는 말을 들어도, 자기도 언젠가는 관정을 받아 임금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것이 희망 없는 사람이다. 또 희망이 있는 사람이란, 크샤트리아의 태자로서 열여섯 살이 되어, 관정을 받을 때가 되었을 때에 크샤트리아의 누구는 관정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나는 언제쯤 관정을 받을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희망 있는 사람이다. 또 희망을 초월한 사람이란, 이미 관정을 받은 크샤트리아의 왕은 누구의 관정을 받았다는 말을 들어도, 별로 희망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이 희망을 초월한 사람이다.
비구들이여, 꼭 이와 같이, 비구들에게도 희망이 없는 사람과, 희망이 있는 사람과, 희망을 초월한 사람의 세 가지가 있다. 희망이 없는 비구란, 계를 지키지 않고, 성질은 사나우며, 행실에는 신용이 없고, 죄악을 숨기며,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으로 행세하고, 깨끗한 행자가 아니면서 행자로 꾸미며, 마음이 썩어 욕심이 가득한 자가 있다. 그는 어떤 비구가 번뇌를 없애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들어도 '나는 언제나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을까?' 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희망이 없는 비구다. 희망 있는 비구란, 계를 지니고 착한 성질을 가진 비구로서, 어떤 비구는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언제나 그렇게 될까?'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희망이 있는 비구다. 또 희망을 초월한 비구란,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은 비구로서, 어떤 비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을 들어도, '나는 언제나 깨달읅까?'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해탈하지 못한 자의 해탈하고 싶다는 소원이 없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