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꽃에 얽힌 사연
5월의 산책길에 오동나무 꽃이 떨어져 있다. 하나 주워 향기를 맡아보니 아득한 50년 전 일 둘이 떠오른다. 하나는 서울대 교수 이병도 박사 건이고, 하나는 오동꽃처럼 깊은 향을 가진, 마치 이당 김은호 화백의 인물화에서 금방 나온듯한 고전미 가득한 한 아가씨와의 조우다.
그날 나는 동승동 이병도 박사 댁에 먼저 들렀다. 청탁 원고 수령하고, 정릉 국민대 이기영 학장 인터뷰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원고 청탁 때 수락한 분이 갑자기 자기는 크리스천이라서 불교 관련 원고는 못쓴다고 거절한 데서 일이 터졌다. '아니 선생님! 원고 마감 시간에 크리스천이라서 불교 원고 못쓴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나는 소싯적 고려대 미식축구 선수다. 서울운동장에서 상대 공격수들에게 몸을 날려 힢부럭 숄더부럭으로 깔아뭉개던 등에 34번 커다란 번호 단 라이트 가드 선수다. 레슬링 선수 못잖던 몸이다. 서울대 도도하던 원로 교수고 뭐고 없다. 언성 높아지자, 잘못은 먼저 자기가 저질렀다. 선생도 난감한 표정이다. ' 좋습니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 교과서에서 선생님이 쓰신 <아차산>이란 시를 배웠습니다. 그걸 왜 불교인도 보는 교과서에 올립니까? 삭제하고 크리스천들만 보는 교과서에 실으세요' 완벽하게 태클을 걸자 선생이 할 일은 젊은 기자 달랠 일 밖에 없다. '여보소! 내가 원고 청탁 때 실수했네. 옆에 이희승 교수 댁이 있으니 그분 원고는 어떨까?' 사정조로 부탁하며 먼저 자기가 급히 현관에 나가서 슬리퍼 신고 나를 부른다.
꽁 대신 닭이라고, 이렇게 이희승 교수 댁에 가서 원고 청탁 후 나오던 골목길에서 처음 오동꽃을 만났다. 꽃은 보랏빛이 세련되고 향기 깊고 은은했다. 나는 낙화 하나를 와이셔츠 윗주머니에 넣고 국민대 이기영 학장 만나러 갔는데, 거기서 또 일이 터졌다. 불교 관련 글 많이 썼기 때문에 이기영 학장은 불교학자로 불린다. 여비서가 와서 무슨 차 드시겠냐고 묻는데, 첫눈에 산속에서 희귀한 난초를 본 것 같았다. 용모나 언어나 몸가짐이 완벽한 동양 미인이다. '이런 향내 나는 차는 없습니까?' 내가 윗주머니에서 오동꽃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자, 그는 가늘고 하얀 손으로 그 꽃을 받았다. 냄새를 맡고 고요한 눈동자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세련된 보랏빛 향기와 그 꽃을 건넨 젊은 기자에게 감동한 눈빛이었다. ' 향기가 서양의 어느 향수 보다 더 오묘하지요?' 사실 그녀도 오동꽃 향기처럼 오묘한 존재였다. 총각 시절이다. 이렇게 꽃 선물 후 연락이 시작되었고, 집은 세검정 쪽이었고, 이름은 이진호라고 기억된다. 마지막으로 본 건 광화문 만원 버스 속에서다. 세월은 무심히 흐르지만 계절마다 꽃은 핀다. 꽃을 보면 옛일 생각난다.
첫댓글 오동꽃에 얽힌 사연 끝까지 잘 보았습니다.그런 때도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