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어린이 음악극 우리의 정서가 밴 어린이 음악극, <우리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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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2. 11:23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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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어린이 음악극
우리의 정서가 밴 어린이 음악극, <우리의 소원>
요약 광복 2주년이 되는 해, 1947년 3월 1일에 방송한 KBS 어린이 특집극 <우리의 소원>.
작사자는 작가이자 영화인인 안석주, 작곡자는 안병원. 둘은 부자(父子) 사이.
우리 정서가 밴 음악극을 통해 어린이들이 새로운 나라에 적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
최초의 음악극에서 <우리의 소원>은 주제가 독립이었으나 한국전 이후 통일로 개사된 것.
한국의 방송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음악극으로 맨 처음 시도된 것은 1947년 3월 1일에 방송된 KBS의 어린이 특집극 <우리의 소원>이다. 광복 2주년째 되는 해 삼일절을 맞아 특색있게 만들어보려는 의도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의 담당자는 배준호(裵俊鎬), 작사자는 안석주(安碩柱), 그리고 작곡자는 안병원(安丙元)이다.
1977년 한국방송공사에서 펴낸 「한국 방송사」에는 이 프로그램의 첫 기획자인 배준호의 당시를 회고하는 글이 실려 있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연유를 얘기하면, 어린이 시간 담당자인 필자가 3·1절 어린이 시간을 어떻게 편성할 것인가 하고 궁리하다가 당시 유일한 어린이 동요회인 봉선화 동요회를 이용해서 무엇인가 색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봉선화 동요회 지도자인 안병원씨와 의논을 하였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노래극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어린이들이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줄넘기를 하면서도 일본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이 있었고, 어린이 방송시간도 15분에 불과했다. 따라서 우리의 정서가 배어 있는 음악극을 만들어 들려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나라에 순수하게 적응할 수 있는 바탕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 기획은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왜냐하면 음악극을 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봉선화 동요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명색이 음악극인데 현악 4중주 정도는 있어야 했지만, 그나마 악기라고는 반주용 피아노 한 대뿐이었다.
미흡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음악극 극본을 청탁하려면 원고료가 있어야 할 텐데 당시 방송국 사정으로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 작곡료·편곡료도 마찬가지였다. 방송국에서는 봉선화 동요회에만 약간의 사례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엇보다 음악극 극본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는 점이 문제였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한국의 방송에서 음악극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3·1절 특별기획은 그래서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의욕만은 꺾이지 않자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극본은 안석주 선생에게 의뢰해보기로 했다. 그 제안을 먼저 한 것은 안병원이었다. 그는 안석주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안석주는 석영(夕影)이라는 아호로 더 잘 알려진 작가이자 영화인이었다. 1901년생인 안석주는 그림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나도향이 <동아일보>에 장편소설 「환희」를 연재할 때 삽화를 담당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무 살에 불과했다. 안석주는 <심청전>을 연출한 이외에도 다수의 시나리오 작품을 썼다.
말하자면 안병원은 원고료를 지불할 수 없게 되자 부친에게 무료 봉사를 부탁한 것이었다. 그리고 쾌히 승낙을 받아냈다. 극본이 해결되자 작곡은 자신이 맡기로 했고, 편곡은 봉선화 동요회의 반주자인 권길상이 맡기로 했다. 물론 모두 대가 없이 참여한 것이었다. 현악 4중주는 음대생들에게 부탁했는데, 그쪽에만 사례를 했다.
그렇게 해서 초유의 음악극 <우리의 소원>은 3·1절 오후 5시 30분에 방송되었다. 방송시간은 25분. 음악극엔 10여 곡의 독창과 합창곡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런데 방송이 끝난 후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 10여 곡 중에 유독 한 곡이 어린이들 사이에서 점점 널리 불려졌던 것이다. 그 곡이 바로 지금까지 마치 국민가요처럼 불려지고 있는 <우리의 소원>이다. 프로그램 명과 동일한 제목을 가진 합창곡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최초의 음악극에서 불려졌을 때는 그 주제가 독립이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가사가 '우리의 소원은 독립 꿈에도 소원은 독립'으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국전 이후 통일로 개사된 것이다.
최초의 어린이 음악극이 그런 파급 효과를 가져올 줄은 물론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작사자 안석주는 광복 후 대한영화사 이사장을 역임했다가 전쟁이 일어나던 해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노래는 남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음악극을 만들던 당시 사람들의 패기와 염원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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