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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지막때 계시록 진리를 사모하는 자를 위한 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주바라기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놓으시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이었습니다. 우리는 이것대로 다시 들어가야 이 일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것을 이기었기 때문에 너희도 내 믿음 안에 들어오면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에 내 믿음을 가진 자, 예수를 믿는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라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를 믿는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라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처음 믿는 초보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믿는 이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10개 중 9개를 하면 90%를 했기 때문에 안심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10개중에 9개를 해도 그 한 개 때문에, 가장 중요한 한 개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한 개를 우습게 보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 한 개를 심각하게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청년이 주님 앞에 왔을 때, 그렇게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율법은 내가 다 지켰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그 율법을 다 지켰지만 한 가지가 부족합니다. “네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좇으라.” 이 한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그 한 가지 때문에 그는 심히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또한 그 한 가지 때문에 주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설명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앞으로 끄집어내면 설사 우리의 부분에서 아홉 가지가 부족해도 아버지가 원하고 계시는 이 한 가지 때문에 우리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 찌니라. 가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죄의 소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마음에 있습니다. 이 마음에 소원 안에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그 죄, 믿음으로 행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스리라고 하십니다.
이 때, 과연 다스릴 것이냐 아니면 그것에 대해서 죄의 소원이 여기서 발동을 할 것이냐 교만이 발동할 것이냐, 욕심이 발동할 것이냐, 이 두 가지가 결정이 됩니다. 가인은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아담도 못 다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스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죄의 소원은 누구에게나 있으나, 다시 말해서 아담도 선악과를 따먹을 수 도 있으나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복할 권세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말들을 서로 섞을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이 왔을 때, 다스려버려야 합니다.
에덴동산을 지키라는 말은 간단한말, 다시 말해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라는 이 말씀에 걸려있는 것입니다. 바로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 하나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만 따먹지 않았다면 그 보험은 지금까지 적용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아담은 땀을 흘리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도 내가 땀을 흘리고 고통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말씀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명령을 회복하면 그것은 저절로 해결 되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의 복종이 시작하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의 것들을 그 동산에 두기 시작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에 천당에 살고, 말씀을 믿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나라에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죽어서 천당만 생각했지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내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게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있습니다. 죽어서 가는 나라가 아니고 지금 있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힘과 권세가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파워가 있는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나라가, 그 나라가 지금 내게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이것을 정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두 세 과정만 넘어가게 되면 연결이 되기 시작하고 연결이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선 한 가지만 정리 하겠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은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아담에게 다 있습니다. 아담은 그곳에서 절대 걱정하며 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다 있는 혜택을 받는 키가 바로 말씀이었습니다. 선악과가 키가 아니고 바로 말씀이 키였습니다. 그분의 명령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담은 말씀에서 떠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떠날 수 있는 일이 생길 때 우리는 다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뭔가가 이 세상에서 부딪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먹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아담의 생각 속에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은 사람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은 바로 그 자체가 생명입니다. 말씀에 하나님이 하지 말라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 생각을 하고 있는 인간은 벌써 죽을 준비가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말씀에는 내 생각을 섞을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은 그 자체가 결론이고, 응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을 통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 에덴동산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 상태에서 죄가 들어오니까 임재가 떠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났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말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어기니까 그것이 죄가 되었고 죄가 된다는 얘기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라는 것을 아담이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떠나고 다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가 바로 성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성소에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시고, 거기에 예표로 서의 짐승을 잡아서 죄를 씻고 하나님을 만나러 돌아오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 돌아오는 과정을 성막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성막이 계시록 21장3절에는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천년 전에는 이 성막이 요한복음 2장 19절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막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는 것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 이라 하리라 임마누엘 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에덴이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그림자적인 성막이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우리 인간과의 막힌 담을 허는 것이 바로 십자가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이루어지는 예수님이 진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담을 헐어서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할 수 있는 것을 주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새 언약을 주노라 새 언약을 주었다고 하십니다. 에덴에 있었던 언약이 아니고 이제 새 언약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새 언약을 너희에게 주니, 이 새 언약을, 너희가 말씀을 지키면 다시 혜택을 받고, 말씀을 떠나면 이 혜택을 거두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거듭은 한번이지만 두 번이 나야 합니다. 한 번 이지만 두 번을 나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내가 예수를 믿을 때에 예수를 믿어지는 그 믿음도 거듭 입니다. 그러면 내 영혼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거듭나지 못하면 그 인생은 천당은 와 있어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는 자니 라고 성경에 나와 있듯이 천국은 가지고 있는데 천국을 향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입니다. 자녀의 권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자녀의 권세는 첫 번째 거듭 에서 있는 것이 아니고 두 번째 거듭 에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당을 가는 첫 번째 거듭이 내게 있다면 두 번째 거듭이 성령의 세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성령의 세례가, 내가 한번 확실히 성령의 충만함이 한번 있어야 자녀의 권세가 생기는 것입니다. 자녀가 살아갈 수 있는 권세, 이길 수 있고, 생육하고 충만할 수 있는 권세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이 오지 않으면 다 천당은 가지고 있으나 싸워서 이길 힘들이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못하리니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 안에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가, 자녀의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녀의 권세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데 하나는 천당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금의 권세입니다. 이 천당 속에 우리의 표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권세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을 믿는 믿음 가지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권세는 사람의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개를 나누는 것이 천당만을 바라보게 되면 표적이 없습니다. 지금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은 내가 이해하려고 하면 표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은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내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고 결론인 것입니다. 일어나라면 일어나는 것이고, 소경에게 눈을 뜨라면 그냥 뜨는 것입니다.
항상 감정이 통과하면 하나님은 일을 못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뜻이 있어서 지나가십니다. 그런데 내가 부르짖음에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한 가나안 여인이 딸의 소원을 놓고 기도를 하는데 응답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 응답을 하지 않으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상합니다. 마음이 상하면 무엇인가 다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려고 할 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녀의 떡을 취해서 개에게는 주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인데 그 개라는 말이 내 감정과 부딪힙니다. 그러면 그 순간 예수님과 싸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옳소이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여인은 지금 개나 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의 딸입니다. 따라서 이 여인에게는 네 딸을 고칠 수 없다는 말 이외에는 자신의 감정을 통과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통과하면 이런 대답을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원망이 생기고, 불평이 생기고, 자신의 생각을 통과하면 하나님의 일은 다 뒤에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라고 하신 이 말씀은 곧 네 감정을 통과시키지 않은 그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통과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믿음으로 통과하는 것은 그대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오늘 나보고 개라고 하면 개인 것이고, 오늘 나보고 회개를 하라고 하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내 삶에서 사랑하라고 한다면 원수든 뭐든 이유를 달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무슨 말씀이든지 그대로 통과 해야지 내 생각을 통과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일하실 수 없습니다. 오늘 주님은 이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정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누려야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냥 옆에 끼고 다니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파워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당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천당의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정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정복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것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자녀는 천당에 가는 것도 당연하지만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보이며 살아갈 자라는 것을 요한복음 17장 6절로부터 15절 말씀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을 보이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 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하나님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7장 1절에 모세를 바로에게 신이 되게 했다는 것 처럼 이 세상에서 말씀을 받은 자들을 신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신이면 신의 일을 해야 합니다. 아들이면 아들의 일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말씀에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자도 있느니라 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정복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정복의 역사는 다른 누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있습니다. 오늘 이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