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이소 / 김정애
심상숙 추천
이소
김정애
일요일 아침 커튼을 젖혔다. 유리창에 비친 비둘기 한 마리가 이리저리 왔다갔다 분주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다른 한 마리도 보였다. 안방 앞에는 목련 나무가 있다. 암컷인 비둘기는 우듬지에 자리하고 있고 수컷으로 보이는 비둘기는 가지 위를 오고가며 주변을 살폈다. 얼마 후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온 비둘기는 작은 나뭇가지를 물고 왔다. 목련나무에 신혼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집을 엿보게 되었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거리를 두면서 사진을 찍었다. 지난봄에 친구네 집 실외기에 물까치가 알을 낳았다고 해서 가본 적이 있었다. 둥지 안에는 푸른빛이 나는 여덟 마리 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솜털이 뽀송한 새끼들을 보고 나서 뭉클했던 경험이 생각났다. 이소까지 잘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는데, 내 앞에서 비둘기가 집 짓는 것을 보니 신기할 뿐이었다. 한 마리가 물고 온 나뭇가지를 우듬지에 놓고 가면 한 마리가 이리저리 끼워 맞춘다. 아이가 블록 쌓듯이 조심스런 모습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목련나무 근처는 자동차 길이고 등하교 길이라 시끄러울 것 같았다. 새끼가 태어나면 도시소음에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걱정과 달리 비둘기들은 나뭇가지를 주거니 받거니 차곡차곡 집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들도 소리에 둔해졌을 것이다. 소음 때문에 청각을 잃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비둘기의 신혼집은 나흘 만에 완성되었다. 까치 집처럼 이층으로 된 것도 아니고, 붉은 오목눈이 집처럼 오목하니 원통도 아니었다. 비둘기 다리만 겨우 감출 수 있는 엉성해 보였지만 얼키설키 잘 만들어진 집이었다. 암컷은 둥지에 자리를 잡았다. 닭이 알을 낳듯 웅크린 모습이었다. 고개만 두리번거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수컷은 가끔 찾아오는 것 같기도 하는데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까지는 보지 못했다. 목련나무 위 비둘기는 멧비둘기였다. 길거리에서 보는 비둘기와는 다르게 무리를 짓지 않고 암수가 한 쌍이 같이 다닌다고 한다. 일부일처제인 멧비둘기는 목 주변에 잿빛과 쥐색의 가로띠 모양인 얼룩무늬가 있었다. 눈은 짙은 붉은 색이었다.(***)
이레가 지나는 동안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렸었다. 비둘기는 몸을 이리저리 바꾸어가면서 한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틈새로 두 개의 알을 보았다. 메추리알보다 큰 알이었다. (***) 암컷의 털이 풍성하게 부푼 것을 보았다. 알을 감싸기 위해 털 뭉치처럼 몸이 변화한 것 같았다.(***)
어미가 돌아왔다. 둥지에 들어오자마자 새끼들은 양쪽에서 어미의 부리를 연신 쪼아대며 먹이를 먹었다. 새끼들이 입을 벌리면 먹이를 넣어 주는 줄 알았는데 어미의 부리에서 먹이를 꺼내먹는 것이 신기했다.(***)
새끼들을 품은 어미는 비를 흠뻑 맞으며 움직이지 않았다.(***) 먹이를 주곤 비둘기는 이내 날아갔다. 열흘 정도의 양육이 끝나고 새끼들이 둥지에서 나와 목련나무 가지에 앉았다.(***) 날개를 펼쳐 보기도 한 새끼들이 이소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한 마리 새끼가 날아갔다. 건강한 새끼들은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비둘기가 포란, 부화, 양육, 이소를 거치는 동안 탐색하고 엿보고 짧은 시간이지만 보람이 있었다. (***) 이소한 지 삼 일이 지났다. 두 마리의 새끼를 다시 봤다. 흔적만 남은 둥지 주변에 잠시 있다가 날아갔다. 큰아이가 남기고 간 물건에서 아이를 생각하듯 빈 둥지만 덩그러니 남기고 간 비둘기가 오랫동안 생각날 것이다. (***)
(『김포문학』40호 116쪽, (사)한국문인협회 김포지부, 2023)
[작가소개]
김정애 김포문예대학 23~24기 졸업, 김포문인협회 회원, 김포문학상 신인상 수상(2023), 시집 한 권 있음,
[시향]
김정애 작가는 창밖의 눈높이에서 멧비둘기 암수 두 마리를 발견한다. 이로 말미암아 멧비둘기 두 마리가 목련나무 우듬지에 집을 짓고, 알을 품어 낳아서 새끼들을 양육하여 이소 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리고 글로 쓴다. 한동안 조심조심 다가가 애정으로 지켜보고 관찰하느라 온 정신을 쏟는다.
이소한 멧비둘기들은 새 보금자리에서 각자 일부일처제의 단란한 짝을 만나 포란, 부화, 양육, 이소를 거쳐 제 새끼들을 번식시킬 것이다. 멧비둘기의 미세한 섭리의 세상 또한 지극히 아름답다.
살면서 잠시라도 어느 한 가지 일에 몰입하여 푹 빠져 보는 일,
새로운 근육이 생겨나 몸도 마음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다.
글: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