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vs책]나와 다른 나 사이, 그 ‘간극’을 파고들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 ”
아쉬움과 희망 사이에서
삶의 의미 되돌아보는 두 책
때때로 우리는 지난날을 돌아보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때 그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모든 것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두 갈래로 난 숲 속 길 한가운데서 우리는 어느 한쪽을 택해 여기까지 흘러왔다.
익숙한 일상과 손에 만져지는 단단한 성취, 나를 나이게 해주는 크고 작은 조건들. 그러나 제아무리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다 해도 ‘가지 않은 길’과 다른 삶에 대한 미련은 끝내 떨쳐낼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스위스 베른의 한 고등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며 틀에 박힌 일상을 살아온 중년의 그레고리우스는 출근길 비 내리는 어느 날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포르투갈 여자를 구한다. 여자는 수수께끼 같은 숫자를 그의 이마에 적어주고는 붉은색 코트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진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흔적을 쫓아 헌책방에 들른 주인공은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에 매혹돼 무작정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렇게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라는 인물의 행적을 뒤쫓는다. 생면부지 리스본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상념과 여정, 작가이자 철학자를 꿈꿨던 프라두가 남긴 책, 그리고 그와 관련된 레지스탕스 이야기가 교차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레고리우스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예감하게 된다.
문학이란 사실 삶의 의미와 가능성을 끊임없이 되묻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작가는 가공의 인물을 창조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삶을 살도록 시험하고, 독자 또한 이 가공의 인물에 감정이입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또 다른 삶들을 시험해보는 것이다. 이 ‘존재의 놀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작가 중 하나가 최근 우리에게 소개된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다.
“우리 존재라는 넓은 식민지 안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불안의 서. 이 문장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제사(題詞)로도 쓰였다)”고 쓴 페소아는 문장 그대로 적게는 71개부터 많게는 136개에 이르는 이명(異名, heteronym), 즉 다른 이름들을 창조해 글을 썼다. 이렇게 만들어낸 또 다른 ‘페소아들’은 각기 다른 이름과 생년월일, 가족사, 직업, 문체와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며 어떤 이는 시를, 어떤 이는 산문을, 또 어떤 이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중 소아레스라는 한 사무원의 이름으로 쓰인 ‘불안의 서’는 작가 자신이 청년시절 이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는 리스본을 중심으로 그곳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촉발된 상상력을 다채롭게 펼쳐내고 있다. 길고 짧은 480여 편의 에세이들로 쓰인 이 글들은 하나하나가 독립적이지만 삶과 죽음, 내면 심리와 외부세계와 같은 근원적 주제들이 상호 긴밀하게 연관된다. 사후 47년 만인 1982년 출간된 이 파편적 텍스트들은 특정한 줄거리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돼 열린 형식의 현대적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앞서 소개한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이 작품과 관련해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리스본의 한 서점에서 ‘불안의 서’를 발견한 그레고리우스가 서점주인에게 묻는다. “이 굉장한 책이 저한테 어떤 느낌을 주는지 아세요?” 주인은 계산기에 가격을 찍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몽테뉴의 수상록을 썼다는 느낌이지요.”
아닌 게 아니라 몽테뉴 또한 ‘수상록’ 제2권에 이렇게 적은 바 있다.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 김삼수 도서출판 상상박물관 대표
출처 / 한국교직원신문[책vs책]나와 다른 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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