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걸 맘껏 먹는 것도 행복에 속한다?.
모두 행복해 하니 난 배가 아픈지 먹는 걸 줄이고 술을 마신다.
하긴 줄기차게 마시는 술에 맛있는 장흥삼합까지 쳐 넣으면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할 것이다. 술마시며 안주를 줄이는 것은
남이 뭐라든 잘한 일이다.
노래방에서 민관홍이 노래를 고르라기에 401번 백마강을 골라놓고
노래는 안했다.
신영복복 선생의 '냇물'이나 준환이의 '새벽길'처럼
난 무슨 노랠 부를까?
백마강을 생각하다가 그건 창욱이가 더 잘 불렀다.
난 진리공부를 생각하며 박인희의 '끝이 없는 길'을 생각해 보다가
또 그 가벼움에 시들해진다.
차를 미리 넣어 둔 크라운 호텔의 어느 방에 심교장과 둘이 들어간 건 기억에 난다.
아침에 눈을 뜨니 5시를 조금 지나고 있다.
탐진강변을 걷자고 조심스레 옷을 입고 나온다.
도로를 건너 강변으로 내려가니 그곳에도 가로등이 밝다.
일 나가는 트럭 몇 대가 지나간다.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감싼 노부부가 거리를 두고 걸어온다.
30여분 걷다가 30분만에 돌아와도 동쪽 하늘은 아직 붉어지지 않는다.
숙소로 돌아와 차를 끌고 정남진천문과학관을 찍는다.
주차장을 지나 구불한 길을 따라 천문관까지 올라간다.
가끔 불빛에 빨간 단풍이 반겨준다.
6시 반이 되어가자 차에서 내린다.
등산로는 훤하다. 7시 20분이 일출이니 2KM 안된 정상까지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배낭을 맨 여성이 다리를 운동기구에 올리고 굽히고 있다.
나무 테크가 길에 이어지는데 난 그리 오르지 않고 서리가 앉은 산길을 걷는다.
두꺼비가 업져있는 것 같은 업진바위를 지나니 조망이 열린다.
용산 쪽으로 바다가 가깝고 고흥반도의 산들이 또렷하다.
팔영산은 작고 내가 풍양에서 자주 올랐던 천등산이 정면이다.
적대봉도 또렷하고 금당도 너머 생일도의 백운산도 보인다.
정상에도 나무 데크로 전망대를 두었다. 데크를 지나 바위에 서서 장흥읍내를 내려다 본다.
탐진강 양쪽으로 장흥읍은 겸손하다. 공장에서인지 몇개의 하얀 연기가 오르고 있다.
부산 유치쪽 수인산 뒤로 월출산도 가깝다.
건너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가 사자산과 제암산 아래의 마을을 내려다 본다.
호남정맥 어느 줄기 너머 무등산이 보이는데 사진으로 찍으니 희미하다.
사방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낸다.
7시 20분이 다 되어가는데 해 떠오르는 쪽은 붉어지지 않는다.
득량도 너머 천등산 우측 안장바위 위로 붉은 구름을 조금 보이더니 해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유주산 덩치도 또렷하다.
돌아가려다가 보니 앞쪽의 산길이 열려있다. 내려가보니
며느리바위 가는 길이다.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긴 계단을 급하게 내려간다.
바위를 돌아서자 거대한 며느리바위가 앞에 서 있다.
그 위용을 쳐다본다. 내게 힘을 줄까? 저게 아름다움인가?
저렇게 굳세게 솟아오른 저 암벽을 보면 난 더 단단해져야 하지 않나?
징징거리지 말고, 매이지 말고?
한번 더 돌아 바위 앞에 서니 핸드폰 카메라에 다 담을 수 없다.
며느리바위 전설이 씌여있는 안내판을 본다.
고약한 시아버지를 대신해 시주했다가 재난을 예고받는데
뒤에서 일어난 변고소리에 돌아보다가 바위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무슨 뜻일까? 가족과 인간?
대를 이어가는 가족의 의미? 선행과 숙명? 이런 자연물에 이야기를 담아놓는 일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이제 나타날 수 없는 것인가?
신화나 전설, 영웅의 이야기는 이제 돈이나 출세의 성공 드라마로 나오긴 하겠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니 천문대주차장 안내판이 정상을 지난 쪽과 허릿길을 도는 쪽으로
안내되어 있다.
장상으로 가는 길이 더 가깝지만 허릿길로 돈다.
낙엽이 수북한 급경사를 내려가다가 완만한 나무기둥 길로 이어진다.
가파른 경사 아래 편백숲 휴양림 건물들도 보인다.
편백숲에서 시작된 데크길을 올라오는 등산객이 있다.
되도록 데크를 밟지 않고 산길을 걸어 차로 돌아오니 8시 5분을 지난다.
숙소의 방으로 들어가니 심교장은 나가고 없다.
전화를 걸으니 3대 곰탕집에 다 와 가신댄다.
'어머니 품같은 장흥' 과 태극기가 나부끼는 다리를 건너 칠거리에서 토요시장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가장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이 일하는 모습을 찍다가 퉁사니를 듣는다.
모두 차를 가져왔다 해 국밥을 먹자 마자 일어난다.
시장을 지나 생표고를 만원어치 산 검정 봉다리를 들고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광주 쪽으로 운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