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중국에 있는 마지막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다. 나는 상해 마당로의 임시정부청사도 가족여행으로 가 보았다. 이곳은 상해보다는 큰 규모로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하여 기대를 가지고 왔다. 건물은 아파트 사이에 좁은 문이 보이고 주변에 나무들이 몇 그루 서서 싱그러운 풍경이다. 입장문 앞에 오르니 '부정시림국민한대'라는 문구가 문 위에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서부터 읽어야 하는 한문식 표기다. 입장은 검색대를 거쳐야 하는 철저한 절차를 거쳐 통과했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시설과 유적, 유물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감사한 절차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5년 1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마지막 청사이다.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상해 흥구공원 의거를 계기로 일본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서 항주, 가흥, 진강, 장사, 광주, 유주, 기강 등지를 거쳐 중경에 도착하였다. 1940년 중경에 정착한 중경 임시정부는 중국 국민당정부의 지원하에 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하여 운영하였고 군사위원회를 두는 등 군사 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91년에 도시개발 계획으로 인해 청사존립의 위기가 있었지만, 국내 대기업이 힘을 모아 복원작업을 시작했다. 1995년 마침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상해의 임시정부청사에 비해 규모는 약 12배에 이르고 내부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95년 8월 11일에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상해 임시정부청사의 초라한 건물과는 대조적으로 이곳은 임시정부청사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건물들은 계단식으로 층층이 양편으로 줄지어 세워져 있다. 제5호실까지 꽤 큰 규모의 임시정부청사다. 전에는 이 주변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지금은 주위에 고층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그리 높지 않다. 첫번째 관람한 방은 대한민국임시정부사전람관이다. 즉 역사자료를 전시해 놓은 전시관이라고 해석하면 될 듯하다. 안으로 들어서니 대형 태극기가 벽면에 부착되었고, 그 앞에 김구 선생님의 흉상이 먼저 반긴다. 그리고 그 당시 먼 이국에서 애국활동을 하던 선열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타국에서 우리 조상님들의 애국과 충정 족적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그 방에서 나와 계단을 걸어서 오르며 여러 방들을 보았다. 외무부, 재무부, 국무위원 회의실, 문화부, 선전부, 김구 주석실 등에는 책상과 의자, 당시의 전화기, 그리고 야전침대까지 갖추어져 있다. 김구의 침실에는 아담한 침대가 놓여있고, 그가 사용하던 가구들이 조촐한 모양으로 가신 님을 기리고 있다. 연회실, 접견실 등 많은 방들이 이곳의 규모가 컸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외무부, 재무부, 국무위원 회의실 등은 당시 임시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방명록에 사인도 있다. 나는 '대한민국을 밝게 이끌어 주신 애국열사님들께 감사드립니다. 2017. 8. 29 한국의 시인 松花 김윤자(한국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라고 기록하였다. 남편 유기섭 수필가님도 사인하고, 일행들도 몇 분이 사인을 했다. 오늘 대한민국이 있음은 이토록 눈물겹게 나라를 지켜온 조상님들 덕분이며, 우리는 대를 이어 대한민국을 잘 지켜나아가야 한다. 조국을 떠나면 모두 애국자가 된다했던다. 지금 우리는 모두 애국자의 심정으로 훈훈한 가슴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임무에 충실하여 나라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노력할을 다짐하며 조상님들의 숨결이 고인 소중한 터전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