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계속
루즈벨트는 연방대법원과의 5년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했나 [124]-2
2020-12-27 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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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이아/고물상주인입니다. 최근 상황에 대해 간단히 적어보고자 합니다. 제 글은 좀 길기 때문에 바쁘신 분은 10줄 요약만 보고 넘어가셔도 됩니다.
1.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박살남. 경제는 망가지고 실직자와 노숙자가 이어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과 자본가는 경제개혁 반대.
2. 1932년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 당선. ‘뉴딜’을 내세우며 취임 100일간 각종 경제개혁법을 내놓음.
3. 공정거래위원장이 ‘뉴딜’에 “반기업적”이라며 공개반대함. 루즈벨트가 단칼에 짤라버림. 공정거래위원장은 해임 무효 소송 제기.
4. 연방 대법원, “대통령은 고위공무원 맘대로 못짜름”이라고 판결 때림. “대통령은 공무원 맘대로 짜를 수 있음”이라는 불과 4년전 자기네들 판결도 무시함. 판결문에는 루즈벨트에게 거의 “웃기고 있네”식의 인신공격까지 들어있었음.
5. 같은 날 연방대법원, 루즈벨트의 핵심 경제개혁법 2개를 한꺼번에 위헌 판결 때려버림. 민중들은 대법원 판결 3건이 나온 이 날을 ‘검은 월요일’이라고 부르며 분개함.
6. 보수 대법관 5명, 그 후에도 꿋꿋하게 수많은 ‘뉴딜’ 경제개혁법을 수십개를 5:4로 무조건 위헌 판결 때려버림. 루즈벨트는 “늙은이 9명(대법관)가 나라를 망치는구나”라고 한탄함.
7. 루즈벨트, 대법원과 싸우다가 첫 임기 4년을 날려버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민중들은 1936년 루즈벨트를 60%의 압도적 지지율로 재선시키고, 민주당에게 의회 절대 과반을 줌.
8. 루즈벨트, 재선되자마자 법무장관 시켜 “대법관 70살 넘을 때마다 젊은 판사 추가임명” 법안 발표. 평균연령 70대의 늙은이 대법원 판사들이 ‘뉴딜’의 장애물이 된다는 판단 때문.
9. 대법관들과 언론은 ‘루즈벨트는 히틀러’라며 격렬하게 반발. 그러나 ‘밥그릇 뺏길’ 것이 겁난 보수 대법관 9명중 1명이 마음을 바꿈. 결국 루즈벨트 뉴딜법안이 5대 4로 합헌 통과됨.
10. 결국 언론의 융단폭격으로 사법개혁안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루즈벨트는 전투에 지고 전쟁에 승리함. 연방 대법원은 뉴딜 법에 다시는 위헌 때리는 일이 없었음. 루즈벨트는 뉴딜과 2차대전 승리로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든 위대한 대통령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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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은 자유시장경제와 정글자본주의의 극한을 달리는 곳이었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가만 놓아두면 경제 주체가 알아서 잘한다’는 믿음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허용되는 곳이었죠. 예를 들어서…
하루에 20시간씩 일시키자. 밥먹는 시간 10분 빼고 휴식시간 없고 물론 시급은 조금만 줘야지. 뭐가 문제야? 자유시장경제인데.
어린애는 시키는대로 일 잘하고 돈은 조금만 줘도 되네. 어린애도 공장, 탄광에서 마구 일시키자. 말 안들으면 두들겨패고. 뭐가 문제야? 자유시장경제인데.
어린이랑 여자는 남자노동자보다 돈을 덜 줘도 되니 일시켜먹기 좋네. 의류공장에 때려넣고 일시키자. 물론 물건 못훔치게 공장 문은 닫아걸고! 어, 이러다가 불나서 많이 죽었네? (1911년 트라이앵글 셔츠공장 화재 참사, 성인여성 123명, 여자 어린이 23명, 남성 23명 화재로 사망)
이러다보니 기업가들은 부를 축적하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한 상태였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져갔습니다. 게다가 요즘 같은 최저임금, 국민연금, 장애연금, 국민건강보험 같은 건 있지도 않았고, 일하다 다치면 가족의 도움을 받거나, 자선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그러지 않으면 노숙자가 되어 굶어죽는 판이었죠.
이런 상황을 두고볼수 없어서 뉴욕주 의회는 1905년 법정노동시간법을 도입합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을 금지하고, 주당 근로시간이 60시간을 넘으면 안된다”는, 그야말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조건을 보장하자는 것이었죠.
노동자를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시키다 적발된 뉴욕 제과점의 모습.
그런데 뉴욕의 한 제과점 주인이 직원들을 주당 60시간 이상 일시키다가 적발되었고,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갑니다. (로크너 대 뉴욕 사건, Lochner v. New York)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10시간 이상 노동하겠다고 상호 합의했는데 뭐가 문제임? 자유시장 경제는 자유 계약이다. 나라가 개인의 재산권에 끼어들면 안된다.”
한마디로 ‘자유시장경제’라는 이름하에 사용자와 노동자가 합의하면 무슨 노동조건이라도 받아들여야 하고, 국가는 절대로 개입하면 안된다는 것이었죠. 물론 언론들은 “역시 자유의 국가 미국”이라고 찬양한 건 물론입니다.
연방대법원이 로크너 판결로 미국의 자유와 헌법을 구했다는 언론의 만평
그 후에도 몇몇 주정부에서 최저임금제, 국민연금, 법정근로시간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기업편향적 보수적 대법원은 그때마다 “개인 재산권 침해, 계약의 자유 침해”라며 가차없이 위헌판결을 때렸습니다. 결국 연방대법원의 ‘자유시장경제’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들이 아무런 안전장치없이 비참하게 일하던 30여년간의 시대를 ‘로크너 시대’라고 합니다.
“대통령의 인사권, 웃기고 있네”
그런데 이 상황에서 1929년 대공황이 터져버립니다. 미국의 GNP는 대공황 이전의 반토막이 나버렸죠. 실업률은 25%에 달했고, 가장이 직장에서 짤리고, 가족들이 은행에 집을 차압당해 판자촌에 살고 자선단체의 무료급식이 없으면 굶어죽을 판에 처했죠.
분노한 미국민들은 1932년 선거에서 집권당인 공화당을 심판하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57%의 득표를 몰아줍니다.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등장이었죠.
대통령에 취임한 루즈벨트는 ‘취임 100일’ 작전에 돌입합니다. 민주당 의회와 손잡고 각종 경제개혁 조치 ‘뉴딜’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죠. 정부의 시장개입, 금융구제, 가격통제,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교섭권 등을 잇달아 도입했습니다.
또 연방공정거래위원장(FTC)의 윌리엄 험프리스 위원장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합니다.
"대기업의 불공정거래와 부당경영, 불법행위를 감시, 적발하시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의 부당경영을 감시하는 ‘재계의 검찰’이죠. 그러나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험프리스 위원장은 루즈벨트에게 한마디로 가운뎃 손가락을 날립니다.
"이런 반자본, 반시장적인 지시는 못따르겠다.”
결국 루즈벨트는 험프리스를 1933년 공정거래위원장에서 해임합니다. 6년 임기에서 4년이 남아있는 상태였죠. 그러자 험프리스는
“공정거래위원장은 대통령의 부하가 아니다”(실제로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며 해임무효소송을 제기합니다. (험프리 대 미국, Humphrey's Executor v. United States)
이 소송은 마침내 1935년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갑니다. 그리고 5월 27일 연방대법원 대법관 9명은 만장일치로 판결합니다.
"대통령은 임기가 보장된 공무원을 마음대로 해임할 수 없다.”
루즈벨트는 물론 민주당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불과 9년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우정국장을 해임했을 때, 연방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죠.
“대통령은 그 어떤 공무원도 해임할수 있고, 의회도 여기에 개입할수 없다.” (마이어스 대 미국Myers v. United States)
연방대법원은 9년전에는 대통령의 절대적 인사권을 인정해놓고, 이번에는 "대통령의 인사권? 웃기고 있네"라며 뒤집어버리는 뻔뻔함을 보여줬습니다. 뿐만 아니라 판결문에는 루즈벨트를 조롱하는 듯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더욱 충격이었죠. 루즈벨트는
“이건 나에 대한 보복이야. 인신공격이다.”
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검은 월요일(블랙 먼데이)
더욱 충격적인 것은 연방대법원이 5월 27일 험프리스 사건과 같은 날 내린 2건의 판결이었습니다.
“루즈벨트의 뉴딜 경제개혁법안 건 모두 위헌!”
연방 대법원은 이날 루즈벨트의 ‘뉴딜’ 핵심 경제개혁법 2건에 무더기로 위헌을 때려버린 것이었죠.(Louisville Joint Stock Land Bank v. Radford, Schechter Poultry Corp. v. United States).
2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