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면
누구나가 읽어야 할 내용 같습니다.>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소름끼쳤던 예언"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
그의
친손자가 현재 일본의
아베
총리이다.
1879년
일본 이시카화 현(石川縣)에서
태어난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는
1944년
7월
24일에
일본의 제9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해,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마지막 시기 조선총독을 지냈던 사람이다.
그는
1897년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마치고 육군참모본부 총무부장·군무국장을
거쳐 1929년엔
육군차관에 임명된다.
1939년에
일본의 제 36대
수상이 되었지만 4개월여
만에 총사퇴하였다.
이후
여러 직을 거치다가 1944년
제 9대
마지막 조선 총독으로 취임하여 전쟁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인력과 물자를 일본으로 착취해 갔다.
조선총독으로
부임 후 전쟁수행을 위한 물적·인적
자원 수탈에 총력을 기울였다.
징병·징용및
근로보국대의 기피자를 마구잡이로 색출했으며,
심지어는
여자정신대 근무령을 공포해 만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성에게 정신 근무령서를 발부했고,
이에
불응시는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징역형을 내리기도 했다.
이
자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총독부에서 마지막으로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대한민국을 뜨게 되는데,
그
때 이 자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한
번 보도록 하자.
日本は敗れたが、朝鮮が勝利したわけではない。
大言壮語ハゴンデ朝鮮が第我に返ってきらびやかで偉大な昔の朝鮮の栄光を取り戻すには、100年という歳月がはるかにかかるだろう。
私たち日本は、朝鮮国民に銃と大砲よりも恐ろしいの植民地教育を植えて置いた。
結局、朝鮮人たちはお互いに仲違いし、奴隷的な生活を送るのだ。
見よ!実に朝鮮は偉大した絢爛だったが、現在の朝鮮は結局日本の植民地教育の奴隷に転落した。
そして、私の阿部は再度もどって来る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한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 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총독,
"우리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놨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일제
강점기 마지막 조선총독인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78세ㆍ1875~1953)가
한반도를 떠나며 한 말이다.
한편으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무섭기까지 하다.
아베
총독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유학을다녀와 군 중앙부 주요 보직을 거쳐 1933년에
육군대장,
1939년엔
일본 내각 총리가 됐다.
비록
5개월이었지만
일본
총리를
지낸 그는 1944년
마지막 조선총독에 임명돼 조선인에 대한 식민지 교육을 더 철저히 자행했다.
그리고
일본 주둔 미군 맥아더사령부가 광복 직후인 1945년12월
11일
아베 심문할 때 그는 "일본
식민정책은한국인에게 이득이 되는 정책이었다며
한국인은
아직도 자신을 다스릴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독립된 정부 형태가 되면 당파싸움으로 다시 붕괴할 것"이라며
남북공동정부 수립을 적극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베의
사돈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91세ㆍ1896~1987)그는
만주국을 건설하며 일본이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중국인과 조선인의 항일투쟁을 무력화시켰다.
현재
일본 총리 인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바로 아베 총독의 손자이자,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두 사람의 피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우리 민족의 웬수의
손자이다.
일본
유명 주간지 `주간문춘`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최근 "중국은
어처구니없는 나라지만,
그나마
외교게임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그저어리석은 국가 일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 했다.
이에
대해 일본 당국자들은 사실이 아니라며 전면 부인했다.
설사
이 말이 100%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간 아베 총리 행보를보면
두 할아버지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간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올바른
역사인식...
절실한
과제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 통감
-1대 이토 히로부미
-2대 소네 아라스케
-3대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선 총독
-1대 데라우치 마사다케
-2대 하세가와 요시미치
-3대 사이토 마코토
-4대 야마나시 한조
-5대
사이토 마코토
-6대 우가키 가즈시게
-7대 미나미 지로
-8대 고이소 구니아키
-9대 아베 노부유키
출처:옮겨온
글 (한국인이면
모두가 읽어야 할 내용
같습니다.)
아베 총리 고조부는
1894년 경복궁 점령한 사령관
- 장대성
- 전 강릉영동대 총장
- E-mail : dschang28@hanmail.net
- 서울서 성장해 경기고와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 한국예탁결..
- 서울서 성장해 경기고와 한국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탁결제원에서 근무하다 도미하여 네브라스카 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및 박사를 취득했다. 귀국 후 경기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생산 및
서비스운영론을 강의하면서 교학처장 및 대학원장, 강릉영동대 총장, (사)대한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사 읽기를 좋아하고 고려와
조선시대 위대한 리더들의 조직경영에 관심이 많다. 항공 산업이 미래 산업이라고 확신해 국토해양부 항공교통심의 위원을 거쳤고, 현재
(사)한국항공경영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감성과 서비스경영에 몰두했다. 색소폰 연주가 취미이며 최근 경영학, 음악 교수들과 함께 경영음악학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
- 네브래스카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 한국항공경영학회 회장
일본 정·재계를 장악 우익세력 대다수 야마구치현
1. 아베 총리 고조부 1894년 7월 경복궁 점령해 청일전쟁
유발해
현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일본 우익의 대표적인 집안 자손이다.
그의 부친은 외무대신을 지낸 아베 신타로이며 조부는 중의원을 지낸
아베 간이다. 외조부는 56대, 57대 총리를 지낸 기시 노부스케,
외종조부는 61대, 62대, 63대 총리를 한 사토 에이사쿠이다.
고조부 오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 7월 8,000 명의 군대를 지휘하여
조선에 침입해 고종이 거하는 경복궁을 점령한 다음 조선정부 내각을
강제로 친일내각으로 바꾸었다. 청국이 조선의 새 친일내각을 인정하지
않자 일본군은 청군을 공격해 청일전쟁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야마구치
현이 고향인 아베 총리 집안 가계도인데 외조부 기시 전 총리는 패전 후
A급 전범용의자였다.
2. 아베 총리 고조부 오오시마는 정한론 군국주의자로 육군 대장이며
자작
아베 총리 고조부 오오시마와 외조부 기시의 고향 야마구치
현은
정한론(征韓:한국 정벌)의 본거지이다. 야마구치 현에서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을 배운 오오시마는 1850년생으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여단장
및 사단장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워 육군대장에 오르고 자작 작위까지
받은 정한론의 군국주의자였다. 정한론은 일본 우익 사상 창시자 요시다
쇼인이 야마구치 현 하기성의 송하촌숙(松下村塾:시골 글방)에서 교육한
일본 국가 철학 및 전략론이다. 요시다 쇼인의 대표적인 제자들은 대한제
국 강탈의 최고 원흉 이토 히로부미(안중근 의사가 저격 처단), 외무대신
을 한 명성황후 시해 배후 인물 이노우에 가오루, 일본 육군 군벌 야마가
타 아리토모, 기병대를 만들어 막부군을 격파한 기병총감 다카스기 신사
쿠 등이다.
-
- 붉은 부분 야마구치 현(왼쪽부터), 요시다 쇼인의 송하촌숙, 아베 총리 고조부
오오시마.
3.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은 정복욕의 망상가일본 우익의 정신적 지주인 요시다 쇼인은 1830년 야마구치 현 조슈번
(長州藩)에서 가난한 하급 무사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0세 때부터 규슈
와 에도에 가서 서양 신문물을 접하고 근대화된 서양문명에 자극을 받고
일본의 영광을 위해서는 막부를 없애고 존왕양이(尊王攘夷:천황만 존중하
고 외세를 물리침)와 일군만민(一君萬民:천황이 세계를 지배하고 천황아
래 만민은 평등함)의 실천이 필요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쿠가와 막부를
없애려다 29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당해 죽었다. 그는 사형당할 때 “몸은
비록 무사시 벌판에서 죽지만 야마토 다마시(大和魂, 일본정신)는 세상에
꼭 남기리라.”라 유언했고 옥중에서는 유수록(幽囚錄)이란 책을 저술했다.
그 내용은 무력으로 조선을 정벌한 후 북으로는 만주를 남으로는 대만과
필리핀의 루손 섬을 노획하여 일본의 영화를 찾자는 것이다. 내용인즉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이다.
-
- 야마구치 현 출신 정한론의 한일강제합병
원흉들.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존경하는 요시다 쇼인은 일본의 영화를
위해서는 다른 민족과 국가는 얼마든지 희생되어도 좋다는 정복욕의 망상가였다. 29세에 죽은 그는 죽기 직전 23년이란 단기간에 80여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그의 제자들은 대부분 20대 하급 무사 들로서 그의 뜻에 따라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후 존왕양이는 버리고
일본을 개방하고 근대화하면서 침략국가로 만들었다. 그들은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죽이는 범죄를 저질렀다. 괴물 요시다 쇼인과 추종자들의 정신병적인 국가철학은 지금도 한국인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침략주의자 요시다 쇼인을 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했을까?
4. 아베 총리 친가, 외가의 고향은 우익 정한론의 본거지
야마구치현일본 우익 정한론의 거물들이 야마구치 현 조슈 번의
요시다 쇼인 문하에서 대거 배출되어 요시다 쇼인을 조슈벌(長州閥)의 아버지라고도 한다.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한 원흉들인 이토 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 다로, 명성황후 시해 지휘자 육군 중장 미우라 고로 공사,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 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
경복궁을 강제 점령한 아베 총리의 고조부 오오시마 요시마사 등이 야마구치 현 출신이며 모두 정한론
신봉자들이었다.고작 인구 140만 명의 작은 야마구치 현에서
아베 신조를 포함 일본 총리가 8명이나 나와 130년간의 일본 헌정사에서 40년을 통치해 일본 정·재계를 장악하는 우익세력 대다수가 야마구치현
조슈벌의 인맥과 연결되어 있다. 아래는 야마구치 현 출신의 한일강제합병 원흉들이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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