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지꽃에 얽힌 사연
사람들은 눈 쌓인 3월 미시령에 핀 얼레지꽃을 잘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꽃을 전문으로 그리는 서울의 여류 화가가 나에게 전화를 해온 적 있다. '아남 플라자 김사장님 맞습니까? ' '네 그렇습니다.' '진주고 이*희 씨 안사람 되는 노숙자라고 합니다' '아! 이*희 선배님 형수님?' '네! 미시령 눈 밭에 핀 얼레지꽃이 그리 이쁘다면서요? 얼레지꽃 스케치를 위한 여행을 가고 싶은데, 언제 속초 내려가 안내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오시면 언제나 환영이지요.'
그 분은 친동생이 탤런트 노주현이고, 남편이 언론인으로 가형과 진주고 동기이다. 형님한테서 <미시령의 노래>란 내 詩를 알게된 모양이다.
3월의 미시령에 눈이 내리네
보랏빛 얼레지 꽃 위에 내리네
바다가 보이던 언덕 위 카페
안갯속으로 낮은 소리로
인생의 외로움을 말하던 그대
벽난로 남은 불 붉게 타던 밤
슬로진 잔에 어린 보랏빛 입술
3월의 미시령에 눈이 내리네
보랏빛 얼레지 꽃 위에 내리네
커피 향기롭던 언덕 위 카페
음악 속에서 낮은 소리로
행복이 무어냐고 말하던 그대
쓸쓸한 바다에 눈이 오던 밤
창가에 비치던 외롭던 눈빛
나는 평소 천경자 화백의 타히티 풍경 그림을 좋아한다. 특별히 꽃만 그린 노숙자 화가도 개성이 깊다고 생각한다. 인사동 화랑에 자주 들린 편이고, 여류화가를 신비스럽게 생각한 편이다. 나는 속초의 한 여류화가와 알고 지냈고, 그분이 척산온천 옆에서 음식점을 하고 있어서, 둘이 도시락 싸들고 3월 눈 쌓인 미시령 얼레지꽃과 화암사 계곡 애기붓꽃 사진 찍으러 다녔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이다. 얼레지꽃의 꽃말은 '질투' '바람난 여인'이다. 내가 노숙자 화가 이야길 꺼내자, 정색을 하고 반대하고 나섰다. 자기가 미시령 하얀 눈밭에 무리 지어 피어난 청초한 얼레지꽃을 그리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꽃 그림으로 이미 유명한 노숙자 씨를 초청하면 어쩌냐는 것이다. 화가들은 그림 소재로도 이렇게 다툰다. 결국 일은 얼레지꽃 꽃말 '질투'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꼭 만나고 싶던 서울 화가에겐 변명 전화로 아쉬운 인연 포기했고, 그 대신 그 분들 생각나는 <미시령의 노래>는 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