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의 장례/서*연
도미의 몸통이 눈부시다. 접시 바닥의 무늬가 그대로 내비칠 만큼 도미는 얇게 회 처져 있다. 드문드문 젓가락질이 오가며 도미의 살점이 한 점 한 점 사라져 간다. 비릿한 물방울을 사방으로 튕기며 파닥이던 도미의 꼬리는 점차 움직임이 느려진다. 그렁그렁, 연한 소금기를 머금고 껌뻑이던 도미의 눈알이 출렁, 하고 터진다. 검은 먹물이 도미의 망막을 시커멓게 뒤덮는다.
도미의 부레는 이미 부패를 시작했다. 혹처럼 부풀어 오른 부레에는 비상 같은 청록색 반점이 돋는다. 그러나 도미는 끝까지 목숨을 놓지 않으려 한다. 다물어지는 아가미를 필사적으로 뻐끔거리며 도미는 숨을 몰아쉰다. 숨 가쁜 도미는 사해의 부력으로 금방이라도 떠오를 것만 같다. 아가미는 산소를 넣고 금방이라도 눈부시게 일어날 것만 같다. 그러나 정작, 도미가 아가미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헛바람만 가득 찬 이 지상의 공기였다. 누군가 에어컨을 켠다. 도미의 머리맡에서 시들어가던 흰색 국화가 파르르 꽃잎을 떨어뜨린다. 국화꽃은 비로소 살아있는 기척을 한다.
세상의 모든 재혼은 기억상실 때문에 한다고 하지만, 나는 어쨌든 약속된 횟집에 나가 인형처럼 앉아 있었다. 내 스펙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건 내가 음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이고, 언제든 어디서든 피아노학원을 개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나는 이를테면 건반노동자였다. 세상에서 제일 우아한 짐승, 피아노 앞에 앉아 음표로 가득한 세상의 소리를 전달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아파트 상가면 어디에나 있는 음악학원에 입주하여 나는 당장이라도 밥벌이는 할 깜냥이었다. 그 사실은 안도감을 주면서도 재혼 시장에서는 상대방을 경계하게 되는 첫 번째 사유가 되기도 했다.
남자는 사별을 했다고 한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때때로 가슴이 시큰거린다고 말하며 웃었다. 나도 어정쩡하게 따라 웃으며 이 남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유가 어처구니가 없게도 웃을 때 보이는 그의 송곳니 때문이었다. 변명하자면,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눈부신 속도로 도미회를 집어 먹었으며, 남자는 약간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재혼 시장에서 3혼은 없다. 다 재혼이라고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혼했는지 혹은 3혼, 4혼을 했는지는 오직 호적등본만 알고 있을 뿐이다. 다들 번듯한 얼굴도 번듯하게 차려입고 나와 어떤 미남 배우의 미간 찌푸림도 살짝 흉내 내고 코끝을 긁는 최불암 씨 흉내도 슬쩍 낸다.(이건 신중하다는 느낌을 준다!)
그들이 창출하는 것은 어떤 실루엣, 그러니까 어디서 본 것 같은 표정이나 포즈를 취하며 약간 연기하는 듯한 혐의를 자신도 깨끗이 지우지 못한다. 여자들은 또 어떤가. 한 때,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이 유행하더니 이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명품 스타일의 위조품이다. 그러니 모두 모조품, 모두 가짜이다. 그리고 다들 말하지 않는다. 자폐를 앓고 있는 다섯 살짜리 딸을, 유별난 성정 탓에 기어이 아들 내외를 갈라놓은 어머니를, 자신의 바람기 때문에 아내에게 버림받은 이야기를 그들은 한사코 말하지 않는다.
“저에겐 상처가 있어요. 대학 때부터 생긴 건데. 여자를 만나서 제가 마음에 들면 여자는 앞에 놓인 음식을 먹지 않더군요. 그런데 제가 마음에 안 들면 꼭 음식을 다 먹더라구요. 지금은 어느 편이신가요?”
“화장실 갔다 오면서 제가 계산했어요. 그러니 편안히 드세요. 남기면 돈 아까우니까 열심히 드세요.”
남자는 별 이상한 여자 다 보겠다는 듯 젓가락을 접시 위에 두들겼다. 난 아무 의미도 없었다. 좋아하는 도미 회를 마음 편하게 먹어보고 싶어서였다.
언제까지 정장하고 마네킹처럼 앉아, 로켓이 우주에도 가는 이 시대에 오직 이 남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음대로 말하지도 못해야 하는가? 인생은 고작 남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마음에 들기 위해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저어, 사실은 직업을 채우는 칸에 과장이 좀 있었습니다.”
“부장이면 어떻고, 차장이면 어때요?”
나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그의 논리대로 하자면, 나는 그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의 양심 고백이 나온 것이다.
남녀를 떠나면 우리는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건 남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고, 그러자면 자신을 포장해야 하고, 그것이 도를 넘으면 사기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사기가 우리 사회에 횡행하는 것은 과장과 억측에 관대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승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박수까지 아낌없이 후한 사회의 분위기와 패자에게는 비정할 만큼 차갑고 쉽게 밟아버리는 사회, 또한 패자들의 자학과 부끄러움까지도 웃음의 소재로 삼는 우리 사회의 비정함이 이 괴기스러운 시대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래서 불필요한 과정을 없애고 비슷한 부류끼리 만나는 ‘맞선’이라는 절차가 필요했던 것일까?
횟집을 나오면서 주인에게 부탁했다. 도미회 접시에 흰 국화는 좀 빼달라고. 도미의 장례식 같아서 먹기에 불편했다고. 시간이 되시거든 손님에게 나가기 전, 깻잎으로 도미의 눈도 좀 가려달라고 했다.
“감성이 참 풍부하신 분인가 봐.”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말의 속뜻은 ‘당신도 한 번 이 세상이라는 곳에 살아봐. 퍼팅기는 억센 물고기 아가미를 한 번 잡아 봐. 그때도 그런 소리 나오나?’일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이었다. 그와 나는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 저녁 속으로 총총 사라졌다. 그것이 조문을 마친 선량한 시민의 의무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