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광릉수목원에 채용된 뒤 처음 2년 동안, 매주 2일은 70이 넘은 학자를 도와주는 일을 했다. 용
인자연농원과 농촌진흥청을 거쳐 광릉수목원에서 정년퇴임한 식물학 박사였다. 그가 하는 일은 평생
모아둔 식물사진 수만 장을 국가표본관에 기증하기 위해 분류하는 작업이었다. 저자에게는 평생 진
로를 결정하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행운의 기회이기도 했다. 박사는 수십 년에 걸쳐 국내외 출
장을 다니며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 현상한 상태로 보관해온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여 기증하려 했다.
국가적으로도 달리 구할 수 없는 소중한 자료다.
박사가 조성에 참여했다는 용인자연농원은 참으로 훌륭한 시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능한 원예
전문가들이 모두 모여 용인자연농원을 꾸밀 때 그곳은 허허벌판이었다. 우리나라 전문가들 가운데는
그처럼 광활한 농원을 구경해본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처럼 외진 곳에 누가 오겠느
냐며 회의적으로 얘기했지만, 다들 알다시피 용인자연농원은 문을 열자마자 주말마다 인산인해를 이
루었다. 나도 각각 다른 목적으로 세 번을 찾아갔었는데, 갈 때마다 목적에 참 잘 어울려 감탄했던 기
억이 있다. 그 좋은 용인자연농원을 에버랜드로 개명한 세태가 씁쓸하다.
박사는 매주 이틀 동안은 수목원에 출근하여 기증할 사진자료를 정리하고 나머지 5일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계속 식물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자는 대학에서 교수를 통해서보다 그 박
사로부터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의 도리와 자세를 배웠다. 모든 식물은 눈에 띄는 대로 기록해둬야 한
다, 현장의 모든 정보를 기록해둬야 본래의 가치를 발휘한다, 우리나라의 식물 연구 및 산업의 전망
은 이러이러하다, 식물과 관련된 데이터는 이렇게 저렇게 보관해야 한다, 박사는 작업 틈틈이 손주에
게 옛날얘기 들려주듯 계속 유익한 조언을 해주었다. 모두가 책에도 없고 강의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
는 알토란같은 내용이었다. 저자는 동료 가운데 자신이 가장 깔끔하게 연구의 뒷정리를 잘하게 된 것
도 모두 박사의 지도 덕분이라고 했다.
박사는 영국 큐 왕립식물원에 자주 가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1759년에 설립된 세계 최고(最
古) 식물원이다. 학계에서는 줄여서 큐 가든이라고 부른다. 세계에서 ‘식물학 그림’을 가장 먼저 도입
한 곳도 큐 가든이다. 물론 소장하고 있는 자료와 현재 재배하고 있는 품종도 세계 모든 식물원 가운
데 가장 많다. 분류학‧생태학‧원예학‧조경학을 연구하는 식물학자 가운데는 언젠가 큐에서 한 번 일해
보고 싶다는 사람이 매우 많다. 저자도 그 중 하나다. 큐 가든 출신 식물학자 가운데는 세계적인 권위
자도 쌔비맀다. 큐 가든은 권위와 실적뿐만 아니라 현재도 계속 첨단기술을 개발해내며 세계 식물학
계에서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흔히들 대영박물관을 약탈문화재 보관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큐 가든 또한 그에 못잖게 세게 각국
으로부터 거의 모든 종의 식물을 가져다 재배 및 개량하고 있다. 다만 문화재와 달리 자생지에서도
그 식물들이 계속 보존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영국이 수백 년 전부터 식물 연구에 이처럼 공을 들여
온 것은 지정학적 한계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 종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일찍부터 인식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국은 현재도 모든 대륙에 크고 작은 식민지
가 분포해 있기 때문에 종의 확보에도 매우 유리하다. 큐 가든은 해외식민지에도 각 분야의 전문 연
구원들을 상주시키며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세월이 흐른 만큼 숲과 나무가 잘조성 되어 더욱 풍성해진 용인자연농원 입니다. 미국손녀들도 다녀간 손꼽히는 관람지로 자리한 명소, 이뿐만 아니라 산 모두가 벌거숭이 에서 숲으로 죄다 뒤덮힌 초록은 나무심기운동으로 일구워낸 쾌거가 아닐수 없습니다. 계절 따라 아름다움을 주는 숲과 나무, 이 가을 보고 느끼는 고운단풍이 되리라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