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식물이 없어서 심심하시겠어요.”
저자가 식물세밀화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위로삼아 자주 건네는 말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이다. 겨울에도 싱싱한 상록수가 만산에 그득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낙엽수들은 겨울눈을 틔우기
때문에 ‘식물학 그림’을 그리기에는 겨울이 오히려 적기(適期)인 경우도 많다. 너무 추워서 산에 오를
수 없을 때는 온실을 찾아 필요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온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는 추위까지 피할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온실은 식물이 살아가는 데 적절한 온도‧습도‧광도 등 생육환경을 조절해주는 시설로서 인간이 자연
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곳이다. 살을 에는 혹한에도 온실에서는 선인장을 비롯한 열대식물이 싱싱하
게 자라고 있다. 반대로 열대나 아열대지방의 식물원에서는 한대지방에서 자라는 침엽수나 난과(蘭
科) 식물들을 1년 내내 볼 수 있는 정원이 따로 있다. 여기서 정원이란 온대나 한대지방의 온실과 같
은 목적과 형태로 지은 건물을 말하는데, 이 경우에는 온실이 아니라 한실(寒室)이라고 불러야 하나?
관다발식물 가운데 꽃과 씨앗 대신 포자를 뿌려서 번식하는 식물을 양치식물(羊齒植物)이라고 한다.
잎이 양(羊)의 이빨[齒]처럼 생겼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민꽃식물 또는 은화식물이라고도 부른다.
대부분의 식물도감에는 양치식물이 맨 앞에 나와 있다. 현존 식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종이기 때문이
다. 관다발식물이란 줄기에 관다발이 있어 이곳으로 물과 양분이 이동한다. 양치식물에는 솔잎란類‧
석송類‧속새類‧양치類 등이 있으며, 현재 1만 1천여 종이 등록되어 있다. 양치식물은 한대지방에서
열대지방까지 광범위하게 서식하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생장영역을 넓혀가면서 새로운 종이 생겨나
고 있다.
양치식물은 의외로 인기가 높아서 광릉수목원에는 직원들끼리 자발적으로 만든 양치식물 동아리도
있다. 저자도 그 동아리에 가입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양치식물 애호가가 되었다. 동아리는 정기적
으로 수목원 내에는 물론이고 전국의 양치식물 군락지를 찾아다니는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양치식물들을 글과 그림으로 엮어 도감을 펴내기도 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품종을 선호하기 때문에 심심찮게 새로운 품종을 찾아내기도 한다.
고사리는 양치식물의 대표주자다. 활짝 핀 고사리 잎을 보면 정말로 활짝 웃는 양의 이빨처럼 생겼
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저자는 고사리를 매우 불쌍하게 묘사해놓았다. ‘예쁜 꽃을 피우거나 맛있
는 열매를 맺지도 못하고, 약으로 이용할 수도 없는 식물’이라고 써놓은 것이다. 식물학자라 역사에
관심이 없어서일까? 고사리는 4억~3억 5천 년 전부터 지구상에 살아왔다. 오랜 세월에 걸쳐 생명주
기가 짧은 꽃과 열매를 포기한 대신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 포자번식 형태로 진화했다. 예쁜 꽃을
피울 수 없다는 대목도 동의할 수 없는 것이, 고사리가 피어날 때 돌돌 말린 새순은 어떤 꽃 못잖게
예쁘기 때문이다. 저자가 상굿도 미혼이라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실감해보지
못했나보다.
약으로 이용할 수 없다는 말도 사실과 다르다. 고사리는 『동의보감』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옛날부
터 여러 가지 약제로 활용되어왔다. 고사리에 함유되어 있는 칼륨은 나트륨 배출에 관여하여 고혈압
치료와 심혈관질환 예방에 효과가 높다. 염증을 완화시켜주기 때문에 관절염 치료제로 사용되어왔으
며, 비타민A가 풍부하여 시력 향상과 눈병 치료에도 효과가 높다. 그 밖에도 골다공증 예방, 빈혈 개
선, 항암효과, 불면증 완화 등 다양한 용도가 있다.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피부미용에도
활용된다. 또한 칼로리가 적은 대신 단백질과 섬유질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효
과가 탁월하다.
문제는 고사리에 함유되어 있는 발암물질(프닥킬로사이드)이다. 영국의 한 지역에에서 사육되는 소
들이 유독 암이 많이 발생하여 오랜 조사 끝에 발견되었는데, 어린 고사리에 가장 많이 들어 있다. 우
리나라에는 고비‧골고사리‧공작고사리‧낚시고사리‧큰지네고사리‧넉줄고사리‧속새 등 자생종 고사리
가 다양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고사리를 식용으로 애용해왔다. 게다가 우리가 먹는 고사리는 모두 어
린 새순을 채취하기 때문에 프닥킬로사이드가 가장 풍부할 때다. 그러나 조상님들의 지혜로 모두 익
혀서 먹었기 때문에 암환자가 다량으로 발생한 적은 없다. 프닥킬로사이드는 열을 가하면 분해되어
발암성을 상실한다.
양치식물을 번식시키는 포자는 균류의 일종이다. 곰팡이‧버섯‧이끼류 등도 포자로 번식한다. 양치식
물은 봄이면 뿌리에서 바로 잎이 돋아난다. 둥글게 말린 채 돋아난 잎은 연두색에서 점점 초록으로
짙어지면서 손가락을 활짝 편다. 장마가 끝나면 활짝 핀 잎이 진한 초록을 띠는데, 이때부터 잎 뒷면
에서 포자가 익기 시작한다. 양치식물의 포자는 잎 뒷면 전체에 다닥다닥 붙어 있기 때문에 번식의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지나치기 십상이다. 조그만 포자가 모여 있는 포자낭群은 양치식
물 종마다 모양과 색상이 다르다. 식물학자들도 현미경으로 자세히 관찰해야 종류를 구분할 수 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모천회귀(母川回歸), 연어 떼가 사력을 다하여 태어난 곳을 찾아 이동하는 것 처럼 사람에게도 이런 본능이 있어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인 고향에 대한 향수 입니다. 그러나 시대흐름에 따라 변해버린 자기 생활위주로 이제는 고향 보다는 해외여행을 가족과 함께 다녀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10일간의 이태리 여행을 마치고 오늘 저녁무렵에 귀국하는 손녀가 기다려 집니다. 추석명절 잘보내시고 즐거운 연휴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