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은 1980년대 중반 한국일보에 3년여 동안 연재된 칼럼 제목이다. 여걸로 불리던 장명수 부
장이 기획하고 김훈‧박래부 기자가 발품을 팔아 기사를 썼다. 연재가 끝난 뒤 책으로 펴낸 것이 「김
훈‧박래부의 문학기행」이다. 책을 펴낸 출판사의 편집자는 김훈을 ‘모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라고 소개해놓았는데, 지금까지 내가 읽어본 김훈의 소설 5권과 기행
문 2권을 종합해볼 때 편집자의 평가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골수 좌파인 김훈은 보수우파에 대
한 표현이 매우 거칠다. 이에 반해 박래부 기자는 사상적 편향이 적어 글발이 비교적 온건하다.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은 2권으로 되어 있다. 먼저 소개할 제1권에는 박경리의 「토지」를 필
두로 모두 25명의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 그리고 작품의 배경이 된 지역의 역사와 특성과 기행 당시
의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다. 제2권에는 시인 서정주를 필두로 역시 25명의 문인들 얘기가 기록되
어 있다. 1차로 제1권의 내용을 소개한 뒤 제2권은 한참 뒤에 소개하려 한다. 나는 연달아 다 읽을 작
정이지만, 문인들 얘기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읽는 사람들이 싫증을 느낄 듯해서다. 다만 두 권 다 재
미있는 작가의 내용만 골라서 소개하기로 한다.
김훈의 발길이 처음 닿은 곳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하소설인 「토지」의 고향이자 섬진강과 화개장터
로 유명한 경남 하동이다. 다행스럽게도 1970~80년대에 「토지」가 연재되던 월간 『현대문학』을
정기적으로 구독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일말의 사전지식을 가지고 김훈과 동행해보련다.
마침 2003년 익산에서 「광전자 20년사」를 집필할 때 하동을 찾아가 하룻밤 유숙한 적도 있어서 비
교적 호감을 가지고 「토지」 편을 읽을 수 있을 듯싶다.
하동에는 섬진강 벚꽃을 감상하러 찾아갔었는데, 쌍계사 입구의 흐드러진 벚꽃과 화엄사의 장엄한
매화보다 하동 주막 아낙의 융숭한 대접만 아련하다. 여관을 정해 차를 세워두고 대작이 가능한 대폿
집을 물으니, 여관 주인이 망설이지도 않고 소개해준 대폿집이었다. 주말인데도 다른 손님이 없어 초
저녁부터 시작하여 밤이 이슥하도록 어법 친숙하게 얘기를 나누며 대작할 수 있었다. 그날따라 주량
이 제법 도도하여 꽤 여러 병 비웠는데, 함께 마셨으니 술값은 놔두고 안주 값만 내라고 우겨서 한동
안 실랑이 끝에 셈을 마쳤던 기억이 흐뭇하다. 우리 집에도 빈 방이 있으니 다음에 오거든 여기서 자
라고 하여 그러마고 약속했지만, 다시는 인연이 닿지 않아 아쉽다. 그 시절엔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
도처에서 그런 고마운 분을 만나 상굿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김훈은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향해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나 용
이‧길상이‧봉순이가 타고 다니던 나룻배와 뗏목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800여Ha에 이르는 악양
면의 넓은 들판, 여기가 4대에 걸쳐 최참판댁 이야기가 펼쳐지는 평사리다. 그 당시에 비해 마을 규
모는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KBS 대하드라마 《토지》의 촬영현장을 지켜본
적이 있어 취재기자의 질문에 익숙하다. 그러나 막상 박경리는 먼발치에서 평사리를 쳐다보기만 했
을 뿐 마을에 들른 적은 없었다. 통영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자란 박경리는 언어의 한계 때문에 경상
도를 배경으로 작품을 쓰기로 작정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화여대 대학원에 다니는 딸의 탱화 수집 여
행에 동행했다가 평사리의 넓은 들판을 지나가면서 ‘아하, 바로 여기로구나!’ 하고 그 일대를 배경으
로 결정했다.
최참판댁으로 알려져 있는 집은 「토지」의 독자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성지가 되었다. 1천 평이
넘는 대지에는 집은 다 헐어내고 누군가 밭으로 일구어 보리와 감자를 잘 가꿔놓았다. 폐허의 한쪽
구석에는 아담한 연못이 남아있어 옛 영화를 대변한다. 그러나 이 집 또한 박경리가 들린 적도 없고
참조한 적도 없다. 작품이 연재되고 있던 중에 누군가 조부자댁 사진이라며 보여주는데, 상상으로만
쓴 주인공의 집과 너무 흡사하여 박경리도 무척 놀랐다고 했다. 누가 봐도 4대에 걸쳐 온 가족이 경
성으로, 북간도로, 대륙으로 뿔뿔이 흩어진 사연이 깃든 집 같았다. ※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
이 출간된 뒤인 2010년 10월, 하동군청에서는 최참판댁을 옛 모습보다 훨씬 화려하게 복원해놓아 관
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영남의 노래 <화개장터>로 더 유명해진 화개장터는 「토지」의 주인공인 무당 딸 월선이가 삼거
리주막의 주모로 등장했다. 드라마 《토지》가 방영된 게 1987년이었으니, 내가 들렸던 대폿집의 아
낙도 월선이 얘기를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화개장터는 한때 영호남 물산의 집산지로서 구수한 사
투리가 흥정을 돋우었지만, 지금은 농촌의 쇠락과 함께 평범한 재래시장으로 전락했다. 조영남의 <
화개장터>가 한창 유행할 때는 반짝경기가 주민들의 흥분을 북돋우기도 했지만, 한 곡의 대중가요가
시절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었을 터.
2000년 ‘화개청년회’가 세운 <화개장터 노래비>에는 <화개장터>가 조영남 작사‧작곡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 작사가는 소설가 김한길이다. 마당발 김한길은 인기정상의 탤런트 최명길과 재혼하여
화제에 오르더니, 어느 날 정계에 뛰어들어 야당 대표까지 지내는 등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정계에서 바람처럼 사라진 요즘은 또 무슨 깜짝쇼를 준비하고 있는지. 조영남은 절친 김한길의 동의
도 받지 않고 처음부터 작사가를 본인으로 등록하여 지금까지 저작권료를 횡령하고 있다. 술이라도
한잔 샀는지. 인근에 있는 쌍계사와 화엄사도 「토지」에 등장하는 구천이‧우관선사‧혜관스님‧길상
이 등의 뿌리가 닿아 있는 곳이다.
각중에 드라마 《토지》에서 어린 서희 역을 열연했던 탤런트 안연홍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린 나이
에도 양반댁의 유일한 혈육으로서 똑 부러지게 위엄을 부리던 당찬 연기에 탄복이 절로 나왔었다. 몇
년 전 채널A에서 방영한 《웰컴 투 媤월드》에서 오랜만에 안연홍을 다시 봤다. 드라마를 자주 보지
않으니 채널을 돌리다가 언뜻언뜻 스친 것 외에 그녀의 모습을 자세히 지켜본 건 《토지》 이후 그때
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똑 부러지는 언변을 보였지만, 어느 일반인보다 더 순수한 면이 남아
있어 다시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착해빠진 안연홍이 작년에 이혼을 했다니, 그놈의 성격차이가
뭔지.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실시간의 온갖 뉴스가 핸드폰으로 전달되니 신문을 접할 기회가 점점 사라저 가고 있지만 눈 뜨자마자 배달신문을 집어오는 일상의 첫 일들이 추석연휴로 며칠째 두절 입니다. 3일간의 신문없는 날을 보내고 오늘 아침에야 받아보니 반갑기 까지 합니다. 미국 손녀 중학교에는 일찍부터 노트북으로 전교과를 대신하며 키보드로 쓰기를 한다니 점점 바뀌어 가는 세상 입니다. 연휴가 끝나는 날, 날씨 좋은 요즈음 걷기에도 안성맞춤 입니다. 좋은 하루 시작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