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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대교 건너 하남시가 보인다
계절의 여왕에 멤버는 고작 네 명?
5월, 참 좋은 계절입니다. 그래서 기념일도 많고 행사도 많습니다. 그런 탓인지 정작 정기산행 희망자는 적습니다. 알자지라 대장은 동기인 돼지엄마가 모처럼 참석 의사를 밝혔는데도 단골 멤버 네 명만 신청하니 힘이 빠지는 모양입니다.
게다가 의욕적으로 공룡능선 번개산행까지 패키지로 제안했는데, 아톰이 정기산행일에 공룡능선을 다녀오겠다며 빠지자 배신감을 억누르기 힘든 모양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돼지엄마가 막판에 못 가겠다고 선언하자 모두 허망해 어쩔 줄 모릅니다.
약속시간인 오전 8시에 맞춰 뚝섬역 1번 출구로 내려오니 피플러버 회장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흐뭇한 광경인데, 그것도 등산 배낭을 메고 독서삼매에 빠져 있으니 아름답게 보입니다. 마침 알 대장의 애마가 도착해 있습니다. 트렁크에 배낭을 싣고 차에 오르니 곧바로 출발합니다.
조망 포인트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대원들. 왼쪽부터 피플러버 회장, 희망과용기, 산바람.
끝나지 않은 출발지 교통편 논쟁
"산바람 아직 안 왔잖아!"(피 회장), "산바람 형은 강변역에서 만나기로 했어요"(알 대장), "그럴 거면 우리도 왕십리역에서 내리면 편한데, 그리로 데리러 오라고 할 걸"(희망과 용기), "그러게. 그럼 우리는 전철 안 갈아타고 5호선 한 번이면 되는데"(피 회장)
강변역에 도착하니 산바람이 아직 모습을 안 보입니다. 8시 15분에 만나기로 했다는데 3분 뒤에야 나타납니다. 뾰로통해진 회장께서 핀잔을 줍니다. "너 왜 3분이나 늦었어?", "늦긴 뭘 늦어요. 알 대장이 김밥 사오라고 해서 그거 사느라 지체한 건데. 자꾸 그러면 김밥 안 준다"(산바람), "나 김밥 안 먹을란다"(피 회장)
"근데 두 분은 전철 타고 팔당역으로 막바로 온다고 하지 않았나요?"(산바람), "너 단톡방 안 봤냐? 뚝섬역 8시로 다시 정리했잖아"(피 회장), "하도 올라온 게 많아 짜증 나서 자세히 안 봤지"(산바람)
전날 단톡방에서 길게 이어진 집결지 교통편 논쟁이 이어집니다. 저간의 사정이 궁금한 분은 단톡방을 더듬어보세요. 새삼 확인한 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 편향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겁니다.
등산로를 감싸고 있는 숲의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치매의 원인은 치맥?
팔당역 주차장에 차를 대고 행장을 꾸려 오전 9시에 산행을 시작합니다. "희망과용기 형! 올라가는 길 아시죠?"(알 대장), "그럼 2년 전 시산제 때도 이리로 갔잖아"(희망과 용기), "우리가 이리로 왔었나?"(피 회장), "올라가다가 마포나루도 만났잖아요"(희망과 용기), "아! 맞다. 그러고 보니 기억난다"(피 회장)
산바람이 옆에서 "뇌의 해마가 쪼그라들어서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희망과용기는 아직 해마가 괜찮나봐요"라고 말합니다. 2년 전 시산제 때 제가 산행기를 써서 더 잘 기억하는 겁니다.
제가 피 회장께 예전에 주워 들은 의학상식(?)을 풀어놓았습니다. "치매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밝혀졌다는데, 치킨과 맥주, 즉 치맥을 많이 먹으면 기역(기억)이 떨어져나가 치매가 된답니다." 그러자 피 회장은 "난 치맥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그러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알 대장에게 큰소리는 쳤지만 혹시 길을 잘못 들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2년 전과 달리 예봉산 등산로를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잘 띄도록 곳곳에 붙어 있어 알바 뛸 우려가 없더군요.
예봉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 왼쪽의 북한강과 위로 뻗은 남한강이 합류하고 있다.
예봉산과 검단산 가로질러 한강은 흐르고
본격적인 등산로에 막 접어드니 수십 명의 등산객이 우르르 한꺼번에 출발합니다. 중년도 있고 젊은이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단체로 온 모양입니다. 토요일 산에서 모임을 연다고 하니 입이 댓발 나온 직원이 많았을 듯합니다. 산바람이 잠시 기다렸다가 일행을 다 보낸 뒤 출발하자고 합니다.
조금 올라서니 한강 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입니다. 맞은편 검단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옆에 멀리 롯데타워가 뽈대(폴)처럼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습니다. 오른편으로는 불암-수락산 줄기와 북한-도봉산 줄기가 펼쳐져 있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기온이 높아 더웠는데 오늘은 선선합니다. 구름이 햇빛을 막아주고 바람도 살랑살랑 부니 걷기 딱 좋습니다. 미세먼지도 걷혀 시계가 투명합니다. 엽록소가 충만해진 나뭇잎들은 신록을 넘어 짙은 녹음을 뽐내고 있습니다.
예봉산 정상석. 관측소 공사 때문에 주변이 어수선하다.
예봉산 조망 가로막은 관측소
두세 번의 고비를 지나며 가쁜 숨을 내쉰 끝에 정상에 다다르자 못 보던 모노레일이 깔려 있습니다. 재작년 우리가 시산제를 지내던 자리에 육중한 건물이 세워져 있네요. 기상관측소라는군요. 예봉산 정상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시야 한쪽을 가로막았습니다. 나라에서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세운 것이겠지만, 조금 옆으로 비켜선 자리에 세웠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과자를 집어먹으며 사방을 조망한 뒤 단체 인증샷을 찍으려 하자 우리보다 앞서 출발한 단체 등산객들이 왁자지껄하며 차례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어 포기하기로 합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점심 먹을 때는 안됐습니다.
예봉-적갑산 능선에서 만난 억새밭
아쉬워하는 산바람에게 "조금만 더 걸으면 활 만드는 공장이 있거든. 거기 가면 전망이 끝내줘서 밥 먹기 딱이야"라고 말하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다가 "아! 활공장"하며 웃습니다. 지난해 영월 별마로천문대에서 패러글라이딩 활공 모습을 함께 본 적이 있거든요.
"근데, 거기 사람 많지 않을까?"라고 걱정하기에 "예봉산 온 사람의 70% 이상은 다시 팔당역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한적할 거야"라고 자신았게 말합니다.
억새밭에서 산바람, 피플러버 회장, 알자지라 대장(왼쪽부터)이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능선길을 따라 내려서니 사람이 없어 한산합니다. 중간에 억새밭도 나타납니다. 정약용의 발자취가 어린 철문봉을 지나 활공장에 이르렀습니다. 가슴이 탁 트일 만큼 시원한 조망입니다. 어슴푸레하긴 하지만 여기서 삼각산 세 봉우리가 또렷하게 보이기는 실로 오랜만입니다.
철문봉에 얽힌 정약용의 일화를 설명해놓은 안내문.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멋진 스카이라인을 그려내고 있다.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에서 내려다본 한강.
활공장에서 오찬을 준비하다가 찰칵. 희망과용기는 카메라를 외면하고 있다.
활 만드는 공장에서 오찬
산바람이 김밥과 함께 남해군에서 사왔다는 떡을 꺼냅니다. 지난주 가족여행을 갔다가 들렀다는군요. 전국 3대 떡집 가운데 하나라는데 부드럽고 고소한 게 소문날 만합니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한 달이나 걸릴 만큼 인기라네요. 근데 3대 떡집이니 5대 짬뽕집이니 하는 건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요?
피 회장은 방울토마토와 피망, 빵을 갖고 왔습니다. 전 늘 갖고 다니는 과자통과 함께 맥주캔을 얼려 왔는데 기온이 선선해서 그런지 채 녹지 않았습니다. 맥주는 나중에 마시기로 하고 나머지로 배를 채운 뒤 다시 길을 나섭니다.
초록빛 숲 사이로 황톳빛 능선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강이 굽이쳐 흘러가며 서울을 적신 뒤 서해로 향하고 있다.
배낭을 둘러메며 제가 산바람에게 "너 혹시 오늘 산행기 쓸 생각 있어?"라고 묻자 "아니, 난 다음에 쓸래"라고 단호히 답합니다. 나머지는 지난해 12월 송년 산행기를 쓴 피 회장과 올 2월 시산제 산행기를 쓴 알 대장이어서 저밖에 없습니다. 돼지엄마가 안 온다고 할 때부터 어차피 각오는 하긴 했죠.
제가 산바람에게 한마디 건넵니다. "넌 지난해 수락산 갔을 때처럼 혹서기에 아주 짧게 산행할 때 쓰려고 그러지?" 속마음을 들킨 듯 당황한 어조로 말합니다. "응. 어떻게 알았어? 난 오늘처럼 산 여러 개 넘으면 기억을 못해서 산행기 못써" 별 핑계가 다 있네요. 으이구 내가 못살아 정말.
적갑산 정상석. 정상치곤 주변 조망이 별볼일없다.
적갑산 정상에서 단체 셀카. 뷰파인더에 얼굴을 들이밀려고 애쓰는 피 회장의 표정이 재미있다.
적갑산 정상석을 사이에 두고 산바람과 피 회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적갑산에서 셀카로 단체 인증샷을 찍고 운길산으로 향합니다. 비교적 수월한 능선길이 계속되다가 막판에 험한 된비알이 나타납니다. 다시 한번 비지땀을 쏟은 뒤 정상에 올랐습니다. 맥주 두 캔을 따서 나눠 마십니다. 맥주 CF의 모델이 내뱉는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캬! 그래. 바로 이 맛이쥐"
여기서 어떤 아저씨에게 네 명 인증샷을 부탁합니다. "산에 오면 남는 건 사진밖에 없죠"라며 익숙한 포즈로 사진을 찍어주기에 경험이 많은 것으로 여겼는데 나중에 보니 아저씨 손이 함께 찍혔더군요. 그래서 사진 부탁할 때 사람을 잘 골라야 하는데. 어쨌든 이것도 재미고 추억이죠.
운길산 정상석. 이제부터는 내려갈 일만 남았다.
운길산 정상 인증샷. 셔터를 눌러준 아저씨의 친절한 손길이 왼쪽 화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육회 접시 놓고 유쾌한 대화
피 회장의 중학교 동창 친구가 오후 4시 30분에 서울역에 도착한다고 해서 수종사는 들르지 않고 막바로 운길산역으로 내려갑니다. 2시 57분 기차는 빠듯할 것 같고 3시 33분 기차는 여유 있습니다. 서둘러 걷는다고 걸었는데 3시가 가까웠습니다. 운길산역에서 문산행 열차가 떠나는 게 먼 발치로 보입니다.
하산길에서 내려다본 두물머리 풍경.
에어건으로 신발과 바지의 먼지를 털고 화장실에서 세수도 한 뒤 열차에 오릅니다. 피 회장은 내처 서울로 가고 나머지 셋은 차를 세워둔 팔당역에 내립니다. 차를 타고 기와집순두부에 가서 수육 도토리묵 녹두전으로 배룰 채운 뒤 서울로 향합니다. 뚝섬역에 도착해서는 차를 모느라 술을 못 마신 알 대장을 위해 고깃집에 들렀습니다. 육회를 식탁에 놓고 육회(유쾌)한 대화를 주고받은 뒤 헤어졌습니다.
멤버가 얼마 되지 않으니 에피소드도 적고 산행기에 쓸 말도 많지 않네요. 무릇 모든 일에는 천 지 인 삼재가 잘 어우러져야 한다고 하죠. 이날 산행은 좋은 날씨에 좋은 풍광에 쟁쟁한 멤버(?)가 어우러진 명품 산행이었습니다. 안 오신 분들은 두고두고 후회할 겁니다.
맛집으로 소문난 기와집순두부에서 수육과 도토리묵에다 탁주 한 사발을 기울이고 있다.
첫댓글 독수리 4남매...
역시 산행기는 희망과용기야. 병원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확 날려버리네.조만간 냉면으로 보답하지요.
감읍할 지경입니다. 형님께서 병상에서 읽으신다는 걸 미리 떠올렸더라면 좀 더 길게 쓸 걸 그랬네요.
글도 좋고 사진도 좋고 중간제목도 좋고 잘 읽었다. 난 네 말대로 '여름 혹서 산행기 담당'을 맡으마. 단 1일1산 한다는 전제로.
초록물결 산 능선과 한강의 물줄기 사진은 언제 봐도 진리입니당. ^^ 글맛 나는 산행기,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예봉,운길산 종주는 만만치 않은데 별 어려움없이 끝났나보이.대단들 하네.
맛깔난 산행기 재미지게 잘 읽었어~~
빨리 쓰느라 왕 수고했다. 어쩐지 다니면서 사진을 열심히 찍더라니...출발 때부터 산행기 쓸 생각을 했구만. 재미있게 잘 읽었어~~ㅎㅎㅎ
와우, 재미난 산행기, 역쉬 희용형, 다음 산행때 뵈요
사진 찍을 때는 사람을 잘 골라야 한다는 대목에서 찔끔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 손가락 찍힌 사진이 수십 장도 넘을 겁니다ㅠㅠ
산에서 사진 찍어달라는 사람이 제일 무서워!
정말 좋은 날씨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산행하셨네요. 6월 산행부터는 필참하겠습니다. 6일 번개산행은 회사일정이 아직 미정이라 확정되면 참석여부 말씀드리겠습니다.